기도공명((祈禱共鳴)이 일어나는 기도회
기도공명((祈禱共鳴)이 일어나는 기도회
  • 민돈원
  • 승인 2019.10.22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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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년 3월부터 학부출신 모교에서 매월 한 차례 열리는 월례기도회에 동문 출신 목회자들로 구성된 숭목회가 있다. 여기에 감리회 모교동문 교단별 공동회장을 맡고 있는 나로서는 책임도 있기에 매달 꾸준히 참석해 오고 있다. 이유는 단 한 가지에서다. 최근 대학만이 아니라 기독교계 학교 정체성이 내부는 물론 외부로부터 심한 도전을 받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서다.

이에 현실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동문의 한 사람으로서 또한 기독교 학교 건학 이념이 결코 외압에 의해 굽혀져서는 안 된다.라는 한결같은 인식하에 학교측의 안타까운 소식을 들은 뜻있는 동문 목회자들이 각 단과대학 교수들 중심으로 주관하는 그 기도회에 참석하고 있다. 사실 모교까지 가려면 적지않은 시간을 들여야 한다. 서울 시내 교통 체증을 고려해 지하철을 이용하다보니 새벽 기도회를 마치고 경춘선 첫차 시간인 5시35분 전철에 맞춰야 한다.

왜냐하면 기도회 시간이 오전 7시이기 때문이다. 1시간 35분 소요시간이라고 하지만 집에서 나온 시간까지 합치면 왕복 4시간이상 걸려야 만이 기도회에 참석할 수 있다. 그런 전체 예배 시간은 약 50분-1시간 내외, 그런데 정작 기도하는 시간은 많아야 5분도 채 안 된다. 기도회라고 붙여진 이름에 대개 3가지 기도제목을 인도자가 제시하면 그 제목을 가지고 때로는 조목조목 할 때도 있고 아니면 한 번에 마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러다 보니 5분도 채 되지 않는다.

따라서 늘 갈 때마다 녹록치 않은 현실적인 상황에 처한 중한 문제를 인식한다면 좀 더 간절하고도 마음을 토하는 진정성을 가지고 기도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없지 않다. 기도회 끝나고 조식을 함께 하는 시간이니 식사하며 담소하는 시간을 조금 줄이더라도 기도회니까 이 부분에 더 열망을 가지고 기도할 수 없을까 하는 안타까운 마음에서다.

요즘 유행하는 말이 언제부터인가 “예배를 짧게 드립시다...” 그러다 보니 “기도도 짧게 하고 찬송가도 3, 4절이면 1절만 부릅시다.” 라고 요구하는 일들이 흔히 등장하는 현상들이다. 특히 학자들 모인 격이 있는 강연회라든가 아니면 심포지움 등에서 두드러진다. 그런 후 나머지 몇 시간씩 대화를 나누곤 하는 아이러니한 일들이 심지어 교회 안에서도 종종 보게 된다.

이럴 때면 우리들의 현재 지니고 있는 그런 마음들의 상태가 예배라는 진정성과 예배나 기도회라고 붙여진 용어에 대한 개념이 무색케 되는 것은 아닌가 자문하면서 기독교의 퇴락과 무관하게 보여 지지는 않아 자못 우려스럽기도 하다.

닭이 운다고 해서 계명(鷄鳴), 호랑이가 운다 해서 호명(虎鳴)이라는 말이 있듯이 마찬가지로 사슴이 운다고 해서 녹명(鹿鳴)이라는 말이 있다. 중국 최초의 시가집이라고 불리우는 <시경 소아(詩經小雅)>에 이 녹명(사슴의 울음소리)이라는 시구가 들어있는데 그 시는 이렇게 시작한다. 呦呦鹿鳴 食野之( 사슴이 유유 소리 내어 울면서 들판의 쑥을 먹는다...)

사슴은 본디 맛있는 풀을 발견하면 먼저 소리를 내어(유유:의성어) 울면서 동료들에게 알림으로써 같이 먹자는 사슴의 전달언어라고 한다.

여기에서 나눠먹고 함께 쓰자는 뜻이란 의미로 녹명(鹿鳴)이란 말이 흔히 인용되어 왔다. 비록 자신이 지치고 고프게 살아왔을지라도 먹을거리를 보면 혼자 숨소리 죽여 자신의 배만 채우지 않고 내 주위사람과 기꺼이 나누려는 마음은 현대인의 정서 즉 개인내지는 집단 이기주의에 병들어 가는 사회를 치유하는 교훈으로 들려진다. 물질만이 아니다. 바로 기도가 그렇지 않을까?

나만을 위한 기도에서 나아가 우리가 속한 교회안의 믿음의 공동체 형제들을 위해, 그리고 내가 거쳐 온 모교가 기독교 정체성의 위기를 맞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동질성을 가진 숭목회 목회자들이 아무 사심없이 모교를 위해 마음에서 울려나는 자발적 자명종 소리에 함께 참여하는 기도하는 모임이야말로 사슴이 먹이를 찾자 우는 소리로 그의 동료들을 불러 같이 먹고 살자. 라는 그 애틋한 마음을 연상케 한다.

이런 따뜻함이 있다면 비록 현재 우리 사회에 갈수록 심화되어 가는 현상, 즉 양편으로 갈라져 버린 오늘 우리 사회분열 형국도 얼마든지 봉합하고 치유할 수 있다고 본다. 나는 이러한 대안으로 일명 ‘기도공명((祈禱共鳴)’이라는 단어로 제시하여 부르고 싶다. 다시 말해 기도로 울면 그 울음이 다른 사람에게 영적 생명의 파장이 전달되어 서로 사는 길을 보게 될 거라는 뜻에서이다.

기도의 성자라 일컫는 E. M. 바운즈는 『기도하지 않으면 죽는다(규장)』.라는 기도시리즈 책속에서 “하나님의 자녀임을 나타내는 가장 확실하고 분명한 특징은 바로 기도이다.” 라고 했다. 어느 때든 기도하지 않을 수 없을 때가 있었으리요? 마는 더욱이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시대야말로 교회나 세상에서 열리는 경축행사나 세미나 한 순서에 덧붙여진 기도가 아닌 기도의 울음소리, 즉 기도공명이 절실하게 이 산하에 울려 퍼져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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