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원과 욕심
소원과 욕심
  • 이구영
  • 승인 2019.10.18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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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예수님께서 베데스다 연못가를 지나시게 됩니다.

그곳을 지나다 보시니까 온통 불쌍한 사람들뿐입니다. 다리를 저는 사람, 눈이 안 보이는 사람, 몸이 헐어서 고름이 나는 사람, 상처로 피를 흘리는 사람 등 수 많은 사람이 있는데 그중에서도 제일 불쌍하게 보여 졌던 사람이 바로 38년 동안이나 같은 병으로 고생하던 어떤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곁을 지나시다가 문득 그에게 물으십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낫고 싶으니까 거기에 있었을 텐데도 주님은 물으셨습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이 말씀을 들은 병자는 한숨을 쉬며 울먹이며 말했겠지요. 예 제가 낫고 싶습니다.

너무나 간절하게 이 병에서 놓임 받고 싶습니다.

그런데 저 물이 끓어오를 때 내가 저곳에 아무리 부지런히 달려가도 나보다 더 빠른 사람들이 항상 있어서 아직도 이렇게 있습니다.

그렇지만 언젠가 또 물이 움직일 때 다시 들어가려고 지금도 대기 중 입니다.

병자의 말을 들으신 예수님께서는 한 없이 긍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말씀하셨습니다.

“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

그러자 그 사람은 전혀 의심하지 않고 누웠던 돗자리를 들고 걷기 시작했습니다.

진짜로 일어나 걷게 되었습니다.

이 놀라운 기적은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고 그대로 사실입니다.

요즈음 자꾸만 그날 그 환자에게 하셨던 예수님의 질문이 생각납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주님은 38년 된 환자, 이제는 포기했음직한 그 환자에게 물으십니다.

아직도 포기하지 않았느냐고? 소원이 있느냐고?

경쟁에서 뒤처지고, 이길 가능성도 거의 없고,

내가 저 밑까지 제일 먼저 도착할 가능성이라고는 전혀 없는 사람이지만 포기하지 않고 간절한 소원을 품고 그 무리지어 있는 경쟁자들 속에 한 자리를 틀고 앉아 버티어내는 그 사람을 찾아 물으십니다.

“아직도 포기하지 않았습니까? 아직도 낫고자 하는 마음이 있습니까?”

빌립보서 2장에 13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빌 2:13]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내가 예수님을 내 인생의 주인님으로 모시고 고백하고 인정하고 살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나를 움직여주시는데, 움직이시는 방법 중에 하나가 내 안에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소원을 품게 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내 욕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싶어지는 소원!!

욕심은 내 이기심을 채워주는 것이지만, 소원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사람들에게 꼭 있어야 하는 감사 중에 하나가 소원을 주신 것에 대한 감사입니다. 소원이 없었다면, 오늘의 내가 있었을까요?

아니면 하나님께서 주시려는 더 큰 소원을 품었다면 내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었을까요?

소원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더 잘 살아가도록 이끄시는 영양제입니다.

소원은 우리들에게 더 큰 사명을 감당하도록 이끄시는 도구가 됩니다.

요셉도, 다윗도 이 소원을 품은 사람들입니다.

포기하고 싶은 일도 많지만,

여기서 멈추고 싶을 때도 많지만 그때마다 늘 이 말씀을 생각합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아직 포기하지 않았느냐고 물으시는 예수님을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에게 소원을 주시는 하나님께서는 소원을 품고 이루려 성령님 의지하며 달려가는 이들에게 약속하셨습니다.

[시 103:5]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하게 하사 네 청춘을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

[시 37:4]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

2019년이 다 가기 전에 분명한 소원을 품으시기 바랍니다.

소원을 주시고 이루어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며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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