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곡의 눈물샘
통곡의 눈물샘
  • 민돈원
  • 승인 2019.10.08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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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복 시인이 쓴 ‘옹달샘과 눈물샘’이란 시 끝부분에 보면 “...옹달샘이 없는 산 죽은 산이다. 눈물샘이 마른 삶 죽은 삶이다.”라는 시구(詩句)가 나온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눈물샘에 대해 시84:6에서 일찍이 언급하고 있다. “그들이 눈물 골짜기로 지나갈 때에 그곳에 많은 샘이 있을 것이며 이른 비가 복을 채워 주나이다.”라는 말씀 속에 눈물샘을 기록하고 있다. 여기서 그들은 그 앞 절에 나오는 주의 집에 거하는 사람들, 주께 힘을 얻고 마음에 시온의 대로를 얻은 사람들을 일컫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성경에는 개인적으로 통곡했던 믿음의 사람들이 등장하고 있다. 그 첫째 사람이 사무엘을 낳기 전 하나님께 나아가 통곡한 한나의 경우이다. 두 번째는 유다의 종교개혁, 즉 성전에 세워두고 섬기던 더러운 이방 우상을 불사르고 성전예배를 회복한 요시야 왕이 여선지자 훌다의 충고를 듣고 통곡한 예이다. 그 외에도 사촌간이지만 에스더를 딸같이 양육하여 함께 유다를 구한 모르드개의 통곡이요, 그리고 이사야 선지자 경고를 듣고 통곡한 유대 왕 히스기야이다.

한편 신약에는 베드로가 예수님 앞에 자신의 장담했던 말이 여지없이 무너지고 주님을 부인하리라는 말씀이 닭 울음소리와 함께 생각나서 통곡한 경우이고, 무엇보다 우리 주님이 우리를 향하신 통곡 등이다.

지난 주 금요일부터 주일 밤까지 내가 담임하는 교회에서 1년에 한 차례 거행하는 부흥성회가 있었다. 이번 성회의 특이한 점은 금요 밤부터 매 새벽 오전 저녁까지 7번에 걸친 시간동안 강사목사님의 간곡한 요청에 따라 단 한 차례도 식사를 같이 하지 못했다. 따라서 대화를 나눌 시간도 없었고 그러기에 우리 교회에 대한 전이해도 있을 리 만무했다. 그것은 마지막 마치고 떠나실 때까지 그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교회 현주소를 정확히 진단해주신 종합검진의 시간이자 개인적으로 예수 믿고도 새 나가는 구멍의 이유, 무언가 열심히 사는 것 같은데 안 되는 이유에 대한 분명한 경고요 처방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강사님에게 교회 사정 이야기를 했다면야 말하기 좋아하는 자들이 하는 입버릇처럼 ‘그러면 그렇지, 목사님이 일러 바쳤구만!...’하고 그래도 그렇게 하면 안 되지만 이런 말을 했다면 더더구나 쑥덕거릴 수 있었을 것이다.

이번 강사님은 제목을 ‘그릇’(딤후2:20-21)에 대해 전하면서 그 그릇이 되려면 그 새 나가는 곳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려면 세 가지를 돌려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 세 가지란 십일조, 성물, 그리고 직분이었다. 이에대한 성경적인 근거를 분명히 제시하면서 각각의 실제 증거가 될 만한 사람들을 생생하게 이름까지 거론하며 무딘 우리 마음을 두드리는 것만 같았다.

마지막 날 낮 시간이었다. 강사님이 지금까지 주일에 세 번이나 부흥회 한 곳은 우리교회가 처음이라고 하면서, 또 하나 안타까운 말씀은 그런데 제자리에 돌려놓는 사람이 한사람도 없는 것도 기적이라고 하는 말씀을 던지고 오늘 저녁 시간에 보자고 하며 오후 시간을 끝냈다. 그 이후 내가 마이크를 잡고 통성으로 기도하다 그만 기도를 더 이어가지 못하고 주저앉은 채 통곡의 눈물이 솟구쳐 흘렀다. 그 눈물을 주체할 수 없고 억제할 수 없을 정도였다. 기도방석에서 무릎 끓고 대성통곡하였다. 이곳에 와서 이렇게 통곡한 적이 이번이 처음이다. 나에 대한 자책감과 함께 그런 성도들(집사, 권사, 장로 포함)이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절여오면서 새 나가는 진단을 해주고 처방까지 해 주었는데도 제자리로 돌려놓지 못하는데 대한 불순종의 아픔이 나에게 그대로 전달되는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손수건이 적셔지고 휴지에 콧물 눈물범벅이 되었다. 아마도 20여분이상 지나지 않았나 싶다. 엉엉 울다 목소리마저 막혀 버렸다.

마지막 시간 강사는 이런 말씀 한마디를 다시 분명히 했다. ‘교회 역사가 100년이 넘어 오래된 교회이다. 건축할 기회가 있었는데 잃어 버렸다. 그러니 이제라도 새는 구멍 막고 지금 교회가 할 일이 무엇인지를 찾으라.’ 는 말씀이다. 이에 학개서 1장에 말씀하고 있는 자기 집 짓는 일에 빨랐다는 등의 말씀도 제시했다.

사실 내가 맨 처음 현재 교회 부임 했을 때부터 이 문제는 기획위원들에게 몇 번씩 강조하고 그 이유에 대해서도 여러 차례 제시한 바 있다.

앞서 성경에 나오는 개인적인 통곡을 한 경우 놀라운 사실은 그 개인도 살고 모두 그 나라가 회복되고 평안하게 되었다. 더 놀라운 것은 에스라가 하나님 전에 울며 기도하되 죄를 자백하자 이에 많은 백성들이 통곡하며 남녀노소 큰 무리들이 모여 잘못된 이방인 맞아 결혼한 아내들을 내 보내는 등 스스로 죄로부터 돌이키고 결단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결국 개인적인 통곡과 모든 성도들의 애통하는 통곡이 일어날 때 불임이 해결되고, 죽을 병이 떠나고, 멸망할 나라가 회복되었으며, 원수들이 스스로 진멸하였다. 그리고 내적으로는 평안과 기쁨과 나라의 안정과 영적부흥과 구원의 역사들이 일어났음을 알 수 있다.

마르지 않은 통곡의 눈물샘이 내게 있었던 부흥성회, 단지 내가 목회하는 교회만이 아니라 우리 한국교회가 다시 사는 길은 이런 거룩한 집단적인 통곡의 눈물샘이 이 땅에 강물처럼 흐르는 때, 그 날 그 시점으로부터 다시 오리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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