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명 다해 낡은 신발들을 보며...
수명 다해 낡은 신발들을 보며...
  • 민돈원
  • 승인 2019.09.17 09: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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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사람들이 외출할 때 한번 쯤 신경쓰는 것은 주로 의상, 즉 옷차림일 것이고 그 다음으로 헤어스타일, 그리고 아마도 신발이 아닐까 싶다. 특히 격식 있는 자리인 경우는 더 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의상과 헤어스타일 그리고 신발은 어떤 자리,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 그 스타일도 달리 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라를 대표하는 최고 지도자급의 인물들이나, 대중들 앞에 서는 인기스타들의 경우에는 그들의 품위관리나 인기관리에 적잖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그 때 그 때 맞는 전문 디자이너들의 코디에 따라 이러한 것들을 연출해 낸다.

이에 일반 사람들은 이런 패션이 유행이 되기도 하고 그렇게 따라가기도 한다.

목회자가 되고 보니 어떤 측면에서는 의상이나 헤어스타일에 대해서 소홀하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적어도 매주 아니 매일 성도들 앞에 서서 보여야 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매일 보는 성도들에게 시선이 지루해서는 안 되도록 하는 것도 살찐 꼴 먹여야 할 목양 이외에 목회자가 지녀야 할 좋은 이미지 측면에서이다. 마음이야 늘 그렇게 가지면서도 실제로는 그렇게 되지 않는 게 현실이다. 하지만 여유가 된다면 사치하지 않는 범위안에서 성도들의 눈에 멋있는 이미지와 패션으로 설교함으로써 설교 내용은 말할 것도 없지만 한편으로 이런 패션으로 성도들에게 신선하게 시선을 끌 수 있다는 점에서 권장하고 싶고 내게도 그럴 여유만 있다면 그리 하고 싶은 마음이 없지 않다. 초라함보다야 훨씬 낫지 않겠는가?

그 다음으로 신발도 신경이 쓰여지는 부분이다. 상천교회는 강단을 오를 때 신발을 벗고 오르도록 되어 있다. 따라서 늘 신발이 성도들의 눈에 띈다. 특히 이곳 성도들은 교회 어디서든지 벗어놓은 신발을 출입한 경우에는 항상 그 신발의 방향을 바꾸어 놓는 섬김이 몸에 배어 있다. 그러기에 늘 내 신발상태를 자연스럽게 볼 수밖에 없다. 최근에 문득 내 신발 3-4켤레의 단화와 캐쥬얼화를 보게 되었다. 그 중에 1켤레만 제외하고 바닥이 심하게 갈라져 모두 물이 세고 심지어 뒷굽이 떨어져 나간 줄도 모르고 주일낮 예배 때 신고 다녔나 보다. 양복도 그렇고 신발도 그렇고 언제 구입하고 선물 받았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이니 상당한 세월이 흐른 것만은 분명하다.

즉 내 몸에 걸치기 위해 투자한 경우가 직장 다닐 때를 제외하고는 신학교 입학이후부터 지금까지 거의 30여년은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인색하게 살아왔던 것 같다. 반면에 내가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수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살아온 것 같다. 그렇다고 살 수 있을만한 돈이 결코 없어서가 아니다. 실제로 내 몸을 치장하는 곳에는 지독하리만치 절약했고 그 대신 하늘에 쌓는 것에 대부분 우선했던 까닭이다. 그런데 신발을 보니 너무 상태가 심할 정도로 수명이 다 되었다. 외관 한쪽은 닳지 않은 것 같지만 바닥은 다 갈라진 신발이 되어 있었다. 사실 이 신발도 주로 예배 때만 신기 위해 아껴 둔 신발이었다. 그런데 이제 당장 예배 때 신고 나갈 누추하지 않은 신발이 필요하다.

목사가 된 이후 갈수록 나는 여전히 가급적 스스로 다운사이징 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 그것은 내가 살아가는 분명한 모토가 있기 때문이다. 그 모토는

‘내게는 인색하되 주님 섬기는 일에는 풍성하고 너그럽게’이다.

이에 몇 년 전부터 주님께 드리는 감사의 예물 단위 색을 매주 바꾸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바꾸기 전보다 형편이 더 나아졌다는 사실이다.

나 자신을 위해 마음껏 즐기고 쓰는 것을 자랑하는 것에는 그다지 내세울 것 없을지 모른다. 어떤 점에서 이처럼 아무 대책없는 것 같이 살아가는 그런 나를 두고 연세 많으신 부친께서 심히 염려스런 마음으로 늦둥이 까지 둔 내게 종종 건네시는 말씀이 있다.

‘ 저축해 놓은 것도 없이 애들을 어떻게 키우려고 그러느냐?...’

또한 지난 주 한 교회 35년을 목회하시다 금년 은퇴하신 어느 원로목사님 역시도 이곳 예배에 참석하신 후 담소 중에 내게 하시는 말씀이 같은 맥락이다.

‘목사님도 은퇴하기 전 미리 준비해야 할 겁니다.’

인생을 미리 살아 본 분들의 말씀인지라 객관적 근거가 있는 분명히 맞는 말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두 가지, 후대에게 전하여 물려주고 싶은 그것은 인간의 이성으로 계산되지 않는 주님의 사람은 그에게 필요한 것을 마지막까지 공급하신 주 되신 분임을 철저히 믿음으로 고백할 수 있고, 내 노후를 위해 쌓아 둔 물질의 안정과 스펙쌓기에 열중하기보다 자신을 드려 주위와 사회에 기여하는데 쌓아 둔 삶으로써 주님 이름을 높이며 살았다. 라고 전해지는 그런 그리스도인, 그런 목회자로 남고 싶은 그 이유 때문에 당연한 길로 여기며 기쁨으로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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