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이슈에 대한 목양적 솔루션
핫이슈에 대한 목양적 솔루션
  • 민돈원
  • 승인 2019.08.27 08: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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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지난 시절 공부할 때 어려운 문제를 풀다 모르면 누구에게 물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안 풀 수도 없을 때 시원하게 가르쳐 주는 정답서가 있었다. 그 솔루션의 과정을 설명하고서 정답을 기록한 바로 동아전과라는 책이었다. 답이 있는 문제야 이렇게 해답서가 있다면 문제가 될 리 없다

그런데 인생문제를 비롯하여 사람 사는 세상에는 크고 작은 문제들과 함께 실타래처럼 얽혀진 문제들의 연속이다. 이런 문제들 가운데는 특히 날카롭고 팽팽한 갈등과 대립을 보이는 매우 첨예한 이슈들이 발생한다.

최근 연일 논쟁의 핫이슈중의 하나가 교수직을 유지하며 권력의 중심에 서 있는 조:국이라는 인물에 대한 분분한 의견이다.

그를 지지하는 쪽에서는 그를 비난하는 이들을 향해 앞으로 사정의 칼날에 당할 후한이 두려워 그것을 사전에 피하려는 옹졸한 정치 게임이라는 것과 동시에 그의 과거 경력을 문제 삼아 비난하는 것은 낡은 구시대 연좌제 망령의 부활이다 라고 하는 등의 몇 가지 이유를 들어 역공세를 펴는 가운데 그를 옹호내지는 적극 지지하고 있다.

반대로 조:국을 거부하는 쪽의 주장은 이전에 폴리페서(polifessor,현실정치에 적극 참여 하면서 교수직 유지)를 본인 입으로 강력 반대하던 그가 이제 와서 정작 자신을 합리화하는 이중성, 법전문인으로서 가정의 자녀 대학 재학시 편법 장학금 수혜와 아내 소유 70억설의 재산 증식 등에서 드러난 비상식적 행동 등을 이유로 들고 있다.

이런 양측의 첨예한 주장과 대립은 극과 극의 두 프레임으로 나뉘어져 연일 논쟁의 도마위에 오르내리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정치권, 시민사회계는 물론 대학가 그리고 주변 가까운 목회자들마저도 이에 대한 서로의 주장은 그리 예사롭지가 않음을 본다.

이런 문제가 아니라도 누구나 나름대로 어떤 이슈이든지간에 그것에 대해 의사표현정도야 자유롭게 할 수 있다. 다만 사회 지도층 인사들의 경우 그의 도덕성에 대한 논란이 대두되었을 때는 그 해석과 주장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팩트가 전제되어야 할 것이고 그 팩트가 지닌 객관적 보편성과 타당성, 그리고 그의 신뢰성, 도덕성에 있어서 누가 보더라도 상식선에 있어야 할 것이다. 즉 그의 학문적인 이론에 대해 다른 학설과 주장으로 논박하는 것이 아님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어느 방면에 탁월하고 전문적인 인재 부족현상으로 어려움을 겪기보다는 그런 인재들은 어쩌면 줄을 서 있는데도 불구하고 우리가 안고 있는 총체적인 위기중의 하나는 기준이 무너져 버린 그 중심에 주로 지식인들 내지는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 비일비재하게 조장하는 도덕불감증이다. 이에 따라 절대선도 없고 절대 기준도 없으며 믿고 따를 본이 사라져 가는 사회라는데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한 시대 목회자로서 내가 우려하는 점은 바로 이 점이다. 이번 사건처럼 만약 세간에 드러난 문제점들이 팩트임에도 불구하고 이에 개의치 않고 장관직 임명을 기정사실화 할 때 이 사회에 앞으로 나타날 후유증은 또 다른 유형의 내로남불 현상들이 특히 머리 좋은 전문 지식인들의 전유물이 되어 기준이 무너져 버린 아노미 사회가 더욱 심화 고착화 되지 않을까 염려스럽다. 다른 때 같으면 대중을 휘어잡는 역대급 입담 좋은 인기스타들이 이런 때 말 한마디 없이 잠잠한 것 보면 구조적 불평등은 여전하여 어쩌면 과거 진보적 세력들이 권력 잡은 이후 이율배반적으로 행하기는 그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양심’도 없는 이가 ‘민심’을 얻을 리 만무하다. 그러자 ‘환심’과 ‘뚝심’으로 버티려한다. 그런 자들이 스스로의 불행은 물론 사회를 어지럽게 만든다. 양심만 가지고 살아도 통하는 세상이라야 좋은 세상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양심이 무딘 자들이 종종 민심을 저버리고 세도가(勢道家)의 환심을 산 나머지 뚝심으로 강공책을 고수한다.

이럴 때 목회자들이 중심을 잡아주고 방향제시가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할 일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다. 옛날 어려운 문제 풀려다 끙끙대고 있을 때 시원하게 솔루션과 정답까지 제시하는 동아전과 같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치우치지 않고 현실적인 진단과 함께 성경적인 통찰력을 가지고 기준은 잡아주어야 한다고 본다. 따라서 글로서나마 외치기도 하고 주어진 목회 현장에서 치우치지 않는 소리를 선명하게 낼 줄 아는 양심적 선언의 자세를 견지하여야 한다.

왜냐하면 세상의 얽힌 솔루션은 딱 부러진 해답으로 접근하기보다는 미래 우리 후손들에게 부끄러운 역사를 남겨주지 않으려면 올바른 가치기준에서 접근하고 풀어야 하기 때문이다.

좀 더 곁들인다면 ‘그의 임면권자를 지지함으로 그의 사람도 지지한다’ 라고 하는 식의 정치적 메카니즘에 장단 맞추는 목회자라면 이미 기본과 중심을 잃은 자이다. 목회자는 한쪽에 마음이 기울기보다 도리어 신중하되 냉정한 입장에서 문제 중심에 선 당사자에게 성숙한 시민의식의 눈을 두려워하게 해주고 더 바란다면 역사의 통치지이신 하나님 앞에 감히 설 수 있는가를 기탄없이 직고할 수 있는 진심어린 예언자적인 입이 필요할 때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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