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더 사랑하고, 그래서 더 감사한
그래서 더 사랑하고, 그래서 더 감사한
  • 윤미애
  • 승인 2019.07.30 20: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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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시절에 뵌 교수님들의 성함과 얼굴도 가물가물해질 만큼 세월이 많이 지났습니다. 특별한 친절과 사랑을 주시던 몇몇 교수님들과의 에피소드만 이따금 기억날 뿐이지요. 같이 공부한 선후배 혹은 동기들도 친했던 몇을 제외하고는 기억이 잘 나지 않아요. 사람을 잘 기억하는 편인데도 이런 것을 보면 시간은 힘이 센가봅니다.

그런데 컷의 주변은 선명하지 않지만 기억나는 한 컷이 있어요. 왜 그 교수님 연구실에 갔는지도 모르겠어요. 기억나는 그림은 연구실을 나서는 순간입니다. 교수님께서 문 앞까지 나와서 배웅을 해주셨거든요. 성품이 좋으셨던 것으로 기억되는 노교수님의 태도와 그 장면이 인상 깊었나봅니다.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아있는 것을 보면요.

남편은 외출을 할 때 “나, 가요.”라고 인사하곤 합니다. 하지만 나는 그 말을 싫어합니다. 그래서 정정을 하죠. 그러면 남편이 말을 바꿉니다. “나, 다녀와요.”라고요. 나는 헤어질 때 좋은 말로, 좋은 느낌으로 헤어지려고 합니다. 이건 살짝 병적인 부분도 있어요. 어디에서 이 병이 시작되었을까를 더듬어보니 중학교 때 있었던 일이 생각이 납니다.

이 또한 오래된 일이어서 그림의 주변부는 기억이 잘 나지 않아요. 중요한 장면들만 생각이 날 뿐이지요. 작은 일에도 까르르 웃는 소란스러운 여느 중학교 아이들의 하교 장면과 비슷했겠지요. 친구들과의 즐거운 하굣길, 재잘거리며 떠들다가 한 친구와 헤어지며 내가 한 말,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그랬을까 싶은 의구심도 살짝 생길만한 그런 말을 합니다. “죽어라.” 물론 그 나이의 아이들이 하는 그냥 평범한 말이었겠지요. 그런데 그 말을 한 후 “죽지 말고 살아 와라.”라는 말을 더했습니다.

여기까지는 그냥 있을 법한 이야기입니다. 여기부터가 진짜 중요하죠. 다음날 친구를 만났습니다. 친구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깜짝 놀랐어요. 연탄가스로 사고가 나는 것이 아주 흔하던 시절, 친구가 연탄가스로 죽을 뻔했다는 겁니다. 그 어린 나이에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도 많이 놀란 거죠.

그 사건이 제 병의 진짜 이유인지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이 병은 어쩌면 언제가 헤어질 연약한 존재인 우리를 기억함에서 시작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세상을 약간 불안한 눈으로 바라보는 성격에서 기인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유가 뭐든 헤어질 때는 좋은 모습을 하려고 하는 것은 확실합니다. 그 병이 주는 유익도 있습니다. 가족들과 다툼이 있어도 그 다툼을 오래 가지고 가지 못합니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도, 집을 나설 때도 좋게 헤어져야 하니까요. 가족들은 조금 피곤할까요?

그런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사람들과 세상에서 헤어지는 순간이 하나님과 만나는 순간인데 거기에는 너무 무심했다는 생각이요. 하나님과는 첫 만남인데, 하나님이 나를 맞으시며 “어떻게 살다가 왔니? 뭐하다 왔니?”라고 물으실 수도 있잖아요. 부르시는 순간이 불평하는 순간이면 어떻게 하죠? 감사하는 마음 없이 징징거리는 순간이면 어떻게 하죠?

누가복음 12장에는 한 부자가 등장합니다. 예수님이 들려주는 비유의 주인공이지요. 곡식을 쌓아 둘 곳이 없이 소출이 풍성하자 부자는 생각합니다.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거기 쌓아 두어야지. 내 영혼아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그런 그에게 주어지는 질문이 허를 찌릅니다.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저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우리가 헤어질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기억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더 사랑하며 살 이유가 거기 있으니까요. 우리가 하나님과 만날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기억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더 감사하며 살아야 할 이유가 거기 있으니까요. 곁에 있는 사람조차 부담스러운 뜨거운 여름입니다. 하지만 깨어 있으라는 예수님의 명령을 기억하며 더 사랑하며, 더 감사하며 오늘을 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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