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가운에 담긴 속정(情)의 목회현장
목사가운에 담긴 속정(情)의 목회현장
  • 민돈원
  • 승인 2019.07.30 07: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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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를 하면서 교인들과 겪는 희노애락의 다양한 에피소드는 목회자라면 누구든지 경험하게 되는 사실이다. 그중에 교인들이 자신이 섬기는 담임목사를 위해 따뜻한 선물로 마음을 훈훈하게 해주는 경우가 있다. 물론 교회 사이즈에 따라 그 크기의 질과 양이 다를 수 있겠으나 중요한 것은 섬세하게 관심을 보이는 교인들의 정성은 값으로 따질 수 없을 것이다.

최근 들어와서 일반 사회, 특히 정치계, 교육계, 공직 사회 윤리기강이 엄격해져서 법을 위반한 뇌물을 건네다 발각 되는 경우에는 그 해당 직위에서 심하면 생명이 끝나기도 할 만큼 단호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회 현장에서 교인들 자신이 받은 은혜가 커서 그 교회 목회자를 사심없이 섬기려는 인간적인 애정은 법의 잣대를 댄다고 자를 수 없는 것이고 더더욱 그렇게 자를 만큼 불의한 거래가 아니기에 잘못 적용하여 말릴 수 없다고 본다.

종종 지인 목사님들을 만나 이야기 하다 보면 이를 이해 못한 사람들의 눈에는 비난하고도 남을 그러나 내가 보기에는 얼마든지 좋은 미담들이 넘쳐나기도 한다. 예컨대 그 중 어떤 분은 ‘이번에 지방 감리사가 되고 보니 교인중에 기동력을 위해 신차로 자가용을 바꿔 주었다’는 이야기, 또 어떤 분은 ‘자기 교회 자매가 결혼 하려고 그동안 모아놓은 자금을 설교 말씀을 듣고 교회 건축한다고 하는 그 귀한 일에 감동이 되어 전액을 헌금 했다’는 가슴 뭉클한 미담, ‘매주 강단에 서는 헤어스타일을 셋팅해 준다’는 재능기부에 해당되는 섬김, 어떤 분은 ‘교회 외부 강사를 모시는 경우 그의 숙소를 미리 알아서 예약하여 전담하는 분이 있다’ 면서 목회자가 할 일을 미리 예측하여 부담을 덜어주는 등 그 외에도 크고 작은 교인들의 자랑을 들을 때면 그래도 은혜와 사랑이 넘치는 목회 현장에서 볼 수 있는 따뜻한 사랑과 존경과 섬김의 음식으로 따지면 맛깔스런 미담이 아니겠는가?

다만 위에서 말한 미담이 누구에게도 자랑이 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전제조건을 충족해야 할 것이다. 즉 전혀 생색내지 않는 자발적인 마음, 간혹 교회 내 의도된 자리 요구와는 무관한 사심 없는 호의, 그리고 만의 하나라도 목회자가 무리하게 부추기는 강요로 인한 억지춘향 식을 반드시 배제한다는 전제하에서 그렇다.

위에서 몇 가지 미담중에 마지막 미담은 내가 목회하던 어느 교회에서 있었던 속정(情, 속에 있는 진실한 정)이 깊은 교인의 이야기이다. 최근에는 어느 교인이 건넨 사랑의 선물로 목회자 가운을 맞출 수 있게 되었다. 이번 가운이 4번째쯤 되는 것 같다. 목사 안수 받은 이후 세 번째 가운까지는 그다지 질이 좋지를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저렴한 가격대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름에는 가운을 입고 설교 하다보면 재질 자체가 더웠다. 가운을 입지 않으면 되지 않느냐 하겠지만 사실 양복을 입은다 해도 넥타이와 와이셔츠가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다.

내 경우는 목회자 셔츠를 착용하는 경우가 많아 특별한 경우 아니고서는 넥타이 멜 일이 거의 없다. 그런 이유도 있겠지만 주일 낮 예배 때는 가운을 입고 예배를 인도한다. 이번에 맞춘 가운은 질감과 디자인도 비교적 마음에 흡족했다. 그리고 입어 보았더니 이전 것보다 더 시원한 편이다. 좀 더 가격대가 높기에 그런 것도 있었다. 1-2년 입을 옷이 아닌 매주 이 가운을 입을 때마다 선물 해 주신 그 분을 위해 잠시라도 기도하게 된다. 그 고마움을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성도와의 좋은 교감은 메시지와 메신저 사이의 매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메시지가 귀에 거슬리는 경우중의 하나는 성도와 목회자 사이의 교감단절 내지는 불통이 원인이다. 따라서 좋은 교감은 메시지를 풍성하고 능력있게 할 수 있는 근거가 될 것이다.

이런 오가는 사랑이 성도와 목회자의 따뜻한 인간애요 하나님 사랑이요 그 은혜 안에 사는 우리들의 자랑스런 모습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어찌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이건 이런 것이고 저건 저런 것이다. 라고 칼로 무 자르듯이 재단 할 거리로 해석이 되겠는가? 중요한 개념인 것은 틀림없는 인권, 차별, 갑질 등의 용어처럼 너무 세상 잣대를 들이대는 갈등과 대립프레임으로 규정해 놓은 것으로는 살아가는 맛을 잃는다.

이에 부정적인 이미지까지 등장하면서 베푸는 것마저 상대적으로 약화되거나 비난받는 것처럼 보여지고, 주고받는 속정(情)마저 메말라 가는 삭막한 이 시대에 바라기는 이런 아기자기한 훈훈한 사랑과 은혜의 미담들이 사막에 샘이 넘쳐나듯이 교회마다 넘쳐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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