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지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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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미애
  • 승인 2019.07.03 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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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뭉쳐야 찬다’라는 예능프로그램을 아세요? 요즘 아주 재미있게 챙겨보는데, 스포츠의 각 분야에서 최고의 영웅으로 혹은 전설로 일컬어지는 사람들이 모여서 축구를 하는 프로그램입니다. 스포츠맨으로서의 승부근성은 있지만 축구에 대해 잘 모르는데다 예전 같지 않은 체력은 엉뚱한 장면들을 만들어냅니다. 그걸 바라보는 감독의 한숨이 빚어내는 장면들이 무척이나 재미있어요. 감독이지만 선배인 선수들 앞에서 어쩌지 못하는 모습이 웃음의 한 포인트가 되곤 하거든요. 그들은 모두 위계질서가 확실하던 시대를 겪은 스포츠맨들이니까요.

얼마 전 방송에서는 그들이 두 번째 경기를 했어요. 경기 시작 전, 감독은 각자의 포지션에 대해 설명을 했습니다. 그들은 알아들은 척 고개를 끄덕였지만 축구를 모르니 설명이 이해가 되지 않았고, 안다고 하더라도 감독의 말대로 경기를 뛰지는 못했죠. 전반전이 끝나고 감독이 다시 포지션을 알려 주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해주면서요. 비록 엄청난 점수 차로 지기는 했지만 후반전에는 조금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더군요. 포지션을 염두에 두고 몸으로 부딪치며 경기를 하니 조금씩 나아지더라고요. 멋진 팀이 되기 위해서 각자의 포지션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축구를 잘 모르는 나도 함께 배워갑니다. 최고의 스타플레이어들이니 지금은 배꼽을 잡고 웃게 하지만 곧 엄청난 변화가 있겠죠?

축구에서 포지션은 말해주는 바가 큽니다. 경기를 하면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를 알려줍니다. 어떤 방향으로 뛰어야 하는지를 말해 줍니다. 나의 포지션을 아는 것도 그와 비슷하지 않을까요? 나의 포지션이 무엇이고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지를 안다면 삶이 좀 가벼워질 것 같습니다.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에 대해 덜 헷갈릴 것 같습니다. 갈등이 줄어들고, 방향은 분명해질 것 같아요.

자신의 포지션을 정확히 알고 그대로 살았던 사람, 이 대목에서 세례요한이 떠오르는 것은 그가 그렇게 살았기 때문일 겁니다. 유대인들이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세례 요한에게 보내어 “네가 누구냐?”고 묻습니다. 세례요한의 대답은 이러합니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 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다.”

세례요한은 자신에 대해 잘 알았습니다. 그에 맞게 위치를 잡습니다. 그리스도가 아닌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외치는 소리’가 그의 포지션이었던 거죠. 스스로의 위치를 그렇게 정하니 자신의 역할이 분명해집니다. 갈등이 사라집니다. 자신을 따르던 제자들이 예수님에게 가버려도, 군중들이 다 등을 돌리고 떠나도 상관이 없습니다. 인간적인 서운함을 혹여 느꼈을까요? 나라면 그랬겠지만 그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신랑은 아니어도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기뻐하듯, 그러한 기쁨으로 충만하다고 합니다. 아니 오히려 강조합니다. 예수님은 흥하여야 하고 본인은 쇠하여야 한다고 말입니다.

나의 포지션에 대해 잠시 생각해 봅니다. 얼마 전 남편이 보여주었던 사진 한 장이 떠오르는군요.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과 한 여성이 팔짱을 낀 채 걷는 모습입니다. 환하게 웃으며 당당히 걷고 있는 여성의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남편이 곧 이어 다른 사진을 보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전거에 손녀를 태우고 들녘을 달리는 모습입니다. 그 아이군요. 그 아이가 그렇게 훌쩍 커버렸네요. 가슴이 뭉클합니다. 그 아이의 표정과 태도가 무척 인상적입니다. 환해 보입니다. 거침이 없어 보입니다. 할아버지 서거 10주기 추도식의 분위기를 대변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나의 포지션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봅니다. 살아가면서 내게 주어진 혹은 성취한 여러 포지션, 그 하나하나를 짚어봅니다. 오늘은 특히 하나님의 딸이라는 포지션을 나에게 상기시켜주고 싶습니다. 그 소녀가 손녀딸이라는 이유만으로 당당하듯, 이 세상을 좀 당당하게 살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자꾸 쭈그러들지 말라고 등을 토닥여주고 싶어요.

포지션에 대한 이해가 커질수록 삶에 대한 이해도 커지지 않을까 싶어 여쭤봅니다. 당신의 포지션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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