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좋은 날
참 좋은 날
  • 윤미애
  • 승인 2019.06.19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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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치 못한 비가 내립니다. 그것도 많이. 일기예보에 의하면 태풍 같은 바람이 불거라고 합니다. 비 걱정을 하며 카톡을 보내는 친구들의 마음에서 머뭇거림이 살짝 느껴집니다. 내일 만나기로 했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이 됩니다. 그때 한 친구의 카톡이 갈등하는 마음들을 정리합니다. ‘우비’라는 두 글자를 적어 보냈거든요. 밤새 비가 매섭게 내립니다. 바람까지 세차게 불어댑니다. 하지만 만나기로 했으니 어쩔 도리가 없지요. 비와 바람이 잦아들기만을 바랄 수밖에요.

드디어 아침입니다. 비가 제법 내리기는 하는데 바람은 불지 않습니다. 인천 쪽에서 출발하는 친구는 비가 그쳤다고 합니다. 모이기로 한 곳을 향해 출발하니 비가 서서히 그칩니다. 가는 길이 무척이나 상쾌합니다. 비가 내린 후라서 풍경이 아주 선명합니다. 기분이 아주 좋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식사를 합니다. TV에 나왔다고 다 믿지는 말자는 결론을 내리게 만들었지만 친구들과 함께하니 그저 좋습니다. 드라마나 광고의 배경으로 나올 정도로 유명하다는 식물원에 갔습니다. 작지만 아기자기하고 예쁜 곳입니다. 어디를 배경으로 찍어도 상관없습니다. 비가 내린 뒤라 말 그대로 그림이 되고 작품이 됩니다. 모이면 사진을 잘 찍지 않던 우리인데 연신 사진을 찍으며 그저 감탄합니다. 친구들 기차 시간이 촉박하지만 눈여겨보았던 빵공장엘 갑니다. 친구들 품에 빵 한 덩어리씩 안겨주고 싶어 하는 총무의 간절함 때문이지요.

친구들을 기차역에 내려주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흐뭇함이 가라앉지를 않습니다. 주로 기사(남편 기사) 달린 차를 타고 다니다가 기사 노릇을 하느라 몸이 좀 고단하지만 좋은 마음이 고단함을 너끈히 이깁니다.

친구들을 만나 이런 행복감을 느끼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요? 곰곰이 생각해보니 시간, 공간 그리고 인간이 아주 잘 맞아떨어졌다는 생각을 하게 되네요. 비온 후 청명한 풍경을 보여준 아름다운 공간에서, 대학 때부터 시작되어 지금까지 이어지는 소중한 친구들과 함께 하니 그 시간이 엄청난 의미를 갖게 된 것이죠.

내가 관계하는 공간과 인간과 시간을 들여다봅니다. 동계 올림픽을 계기로 생긴 KTX는 삶의 공간을 넓혀주었습니다. 자주는 아니지만 비행기를 타고 떠나게 되면 공간이 더 많이 확장되지요. 가끔씩 새로운 공간을 만난다는 것이 삶에 활기를 줍니다. 그렇게 넓혀진 공간도 참 좋기는 합니다만 일상을 살아가는 곳이 가장 중요한 것 같네요. 그러니 머무는 공간이 나에게 행복감을 주는 공간이 되도록 해야겠어요. 집, 방 아니 책상이라도 일단 정돈하고 행복을 주는 작은 것들로 채워가면서요.

사람들에 대해서도 생각해 봅니다. 중요한 순간에 전화할 수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헤아려 봅니다. 아, 사람과의 관계도 정돈할 필요가 있군요. 나에게 힘을 주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분류해 봅니다. 모두와 잘 지내겠다는 욕심을 버리고 소중한 사람들과 잘 지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특히 너무 가까워서 때론 소중함을 모르는 남편과 더 잘 지내야겠습니다.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는지를 들여다봅니다. 무의미하게 흘려보내는 시간들을 점검하며 정돈합니다. 나에게 행복감을 주는 일들로 채워야겠어요. 지금 당장이 아니라 한 시간 후에 돌아봐도, 며칠 후, 몇 달 후 혹은 몇 년 후에 돌아봐도 행복할 일들을 해야겠어요. 물론 지금의 행복을 포기하겠다는 것은 아닙니다.

한 친구가 라디오에서 들은 이야기를 전했어요. 이런 날 만나는 사람은 진짜 소중한 사람이라고요. 예, 그렇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만나며, 기쁨을 주는 공간을 만들어가며, 맘 뿌듯한 일을 하며 살아야겠어요. 시간과 공간과 인간관계를 정돈하고 때론 변화를 줘야겠어요. 그러면 삶이 좀 더 신날 것 같아요. 그렇게 살아갈 오늘, 참 좋은 날이 될 거라는 기대에 설렘이 마중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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