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에 의미를 담은 기증식
가치에 의미를 담은 기증식
  • 민돈원
  • 승인 2019.06.18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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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실대에 기증한 '평화' 서예
숭실대에 기증한 '평화' 서예

사람들 중에는 한 때 인기 있는 대중 스타와는 달리 역사적으로 길이길이 모두에게 귀감이 되는 인물이 있다. 음식중에도 나이, 성별, 민족을 초월하여 시간이 흘러도 모두가 선호하는 메뉴가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이를테면 김치를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구촌에 사는 사람들에게 가장 원하는 가치있는 단어 하나를 고르라고 할 때 어떤 단어가 뽑힐까? 아마도 분단된 대한민국 사람에게는 물론이거니와 국경을 초월해서 가장 필요로 하는 단어, 그것은 ‘평화’가 아닌가 싶다.

이번 주 17일(월) 이런 가치를 가진 의미있는 기증식이 있었다. 내가 공부했던 동문들 목사님으로 구성된 ‘숭목회’에서 모교인 통일에 앞장서고 있는 숭실대 총장을 찾아 바로 ‘평화’라는 3m짜리 서예품(사진)을 족자에 담아 기증하는 행사였다. 이 작품은 전북임실 치즈마을 선구자중에 한 분으로 농촌 발전에 기여하시고 지금도 그곳에 거주하는 원로동문 심상봉 목사님(철학‘64)이 손수 정성들여 쓰신 작품이다. 몇 주 전 목사님으로부터 인수하여 우리 숭목회에서 북한에서 시작된 최초의 대학으로 분단된 조국의 평화적인 복음통일을 원하는 통일대학으로서의 뜻을 구현하고 있는 모교측에 전달하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몇 년 전부터 이 숭목회에 관심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까닭은 최근 기독교 학교들의 내, 외부강압 등으로 정체성위기를 맞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미력이나마 시간과 물질로 즐겁게 섬기고 있다. 모교는 평양에서 처음 출발할 때 합성숭실이란 이름과 같이 초교파적인 학교였다. 따라서 숭목회 역시 그 취지를 살려 지난 6년 전부터 나의 제안이 정기총회에서 전임 회장이신 조성기 목사님이 수용함으로써 장로교, 감리회, 성결교, 침례교, 나사렛 교단 등 활동하는 동문목회자들이 다양하게 활동하고 있음을 고려하여 현재 그렇게 조직 운영되고 있다.

이에 이번 기증식에는 숭목회 대표회장이신 임승안 총장(나사렛 대학)을 비롯하여 내가 속한 감리회를 비롯한 몇명 교단 공동회장(장로교, 감리회, 성결교, 기독교학대학원)들이 함께 총장실을 방문하여 전달하게 된 것이다.

그러면서 평화에 대해 다시 개인적으로 새롭게 음미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예컨대 평화 없는 세상 이전에 마음에 내적 평화 없는 개인을 보자! 생각만 해도 살 힘을 잃는다. 평화 없는 가정은 어떤가? 집은 될지 모르나 행복이 없는 아픈 가정이 되고 만다. 이렇듯 평화 없는 교회는 또...? 아무리 성도들이 북적댄들, 매주 예배를 드리며 진심어린 교류가 없는 평화가 실종된 교회공동체로 전락한다면 오히려 그런 의식들이 고통스러울 뿐이고 사람을 만남이 어떤 힘든 일보다 더 힘들뿐이다. 더 나아가 평화 없는 나라는 지금 우리 대한민국이 경험하는 그대로이다.

이처럼 사람이 사는 세상에 진정한 평화무드가 사라지게 되고 어느 샌가 불가피하게 서로 완력과 주도권 경쟁이 심해지게 되면서 극한 대립과 반목이 드러나기도 하고 설사 드러나지 않는다 해도 속으로 곪아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처럼 쌓여가기도 한다.

그러나 평화는 이런 모든 가공할 힘이나 위험요소들을 단숨에 무장 해제 시켜 버린다. 이것이 평화의 능력이다. 평화는 권력가진 자의 지배 이데올로기가 가져다주지 않는다는 것을 역사를 통해 배웠다. 바로 1세기 ‘팍스(Pax,평화)로마나’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집단 이기주의자들이나 소수 인권주창자들이 외치는 곳에도 그들만의 평화는 있을지 모르나 진정한 평화와는 거리가 멀다.

즉 세상 프레임과 자기 도그마에 갇혀지고 얽혀진 역학구조안에 내재 되어 있는 반목과 질시 미묘한 힘겨루기 속에서 주장하는 평화는 그 어떤 근사한 것일지라도 진정한 평화를 충족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진정한 평화가 힘과 권력으로 압제해서 오는 것이 아님을 가장 잘 증명하고 있는 인류 역사의 해답을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그것은 허리에 창이 찔리고 십자가에 못박혀 피흘림으로써 무력하게 패배한 것 같은 예수그리스도에게서 찾을 수 있다. 따라서 찬송가의 가사처럼 ‘평화 평화로다 하늘위에서 내려오네 ...’라고 선포하는 것이다. ‘자유는 공짜가 없다.’라는 말을 안다면 평화야말로 예수 그리스도가 지불하신 우주적 희생의 댓가로 화목하게 되는 길이 열렸음을 인식하고 이를 모든 사회 이념과 삶의 철학으로 삼을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이번에 기증한 이 ‘평화’의 작품속에 저자의 그런 의도가 담겨 있다. 즉 ‘평’자의 가운데 두 획이 십자가에 못 박힌 손의 자국이고 ‘화’의 우변 입 구(口)가 좌변 벼 화(禾)에 내리친 획은 예수님 옆구리를 찌른 형상이라는 의미로 설명하고 있다. 평화라는 한문이 예수 그리스도가 평화의 왕이라고 부르는 이유를 대변해주고 있다.

지금이야말로 경제, 일자리, 최저임금제 실시, 교육개혁보다 더 시급한 과제요 회복되어야 할 가치가 이 평화의 실현조성이다. 이 평화의 가치는 국가권력이 완력으로 밀어붙이는 정치공학이 아닌 평화의 철학으로 살아 온 철인들의 깊은 지혜를 귀담아 들을 줄 아는 마음의 눈과 영적 눈을 가진 지도자들이 정계 위정자들은 물론 기독계, 교육계, 재계 등 사회 곳곳에 절실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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