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님 문화’를 나무라지 말라
‘형님 문화’를 나무라지 말라
  • 송근종
  • 승인 2019.06.15 17: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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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하면 왠지 모르게 ‘군대 문화’ 내지는 ‘조폭 문화’처럼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 ‘형님 문화’의 긍정적인 면보다는 부정적인 면을 부각시켜 비판하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형님 문화’에 부정적인 면만 있을까?

필자의 경험을 잠깐 이야기하면 1980년대 말 냉천동 기숙사에서 지낼 때이다. 랜덤 방식으로 배정된 방에는 최소 1년에서 많게는 4~5년 선배들도 함께 방을 쓴다. 모두가 다 초면이다. 당연히 선배가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후배가 좋지 않은 자리에 위치하는 것이 보통 상식이다. 밥을 먹을 때도 당연히 선배가 앞서고 후배가 뒤에 먹는다. 무슨 일을 하든지 간에 선배가 먼저다. 이것이 일반적인 사회 공동체의 ‘형님 문화’이다. 그 속을 보면 대단히 형식적이고 깊이가 없다.

그런데 필자가 경험한 신학교 기숙사는 다르다. 선배는 이제 막 입학한 신입생에게 제일 좋은 자리를 내어 준다. 밥을 먹을 때도 후배를 앞세우고 가서 먼저 좋은 것을 취하게 한다. 무슨 일을 하든지 간에 선배들은 후배가 어떻게 하면 편안하고 즐겁게 지낼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 뿐만 아니라 주일 저녁이 되면 선배의 양손에는 냄새나는 검은 비닐봉지가 들려 있다. 교회 권사님들이 기숙사 생활을 하는 전도사님을 측은히 여겨 남은 음식을 싸준 것이다. 왠만한 사람이면 냄새나고 폼나지 않는 비닐봉지를 가져오다가 쓰레기통에 넣어버리고 말텐데, 선배는 굶고 있는 방 후배들 먹인다고 땀을 뻘뻘 흘리며 그것을 들고 온 것이다.

그런 선배를 보면서 후배 입에서 자연스럽게 튀어나오는 말이 “형님~~”이다. 누가 강요하지 않아도 마음속에서부터 자연스럽게 ‘형님’이 튀어나오는 것이다. 선배의 진실한 사랑과 마음 씀씀이, 넉넉한 인심과 착한 행실 등등의 모습을 보면서 후배는 존경과 사랑의 마음을 담아 선배를 ‘형님’이라 부르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선배의 모습이 졸업 후 목회 현장에서도 계속해서 이어지면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후배의 입에서는 자연스럽게 ‘형님’이란 말이 나온다. 후배를 좋은 목양지로 이끌어 주고, 때로는 자신도 어려우면서 후배를 먼저 생각해 주는 그런 선배가 멀리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목회 현장에서 ‘형님 문화’는 사회적 지위와 관계 단절의 벽을 무너뜨리고 서로를 경계하고 적대시하는 눈빛을 무장해제 시키며 하나로 묶어주는 역할을 한다. 그런 면에서 ‘형님 문화’는 부정적이기보다는 긍정적이다.

반면에 부정적인 ‘형님 문화’도 있다. ‘선배가 하라면 하는 거지, 후배가 무슨 말이 그렇게 많냐’, 내지는 ‘선배가 먼저지, 감히 후배가 선배를 넘어서’라는 생각들이 그렇다. 선후배 공동체에 아무런 기여도도 없으면서 때가 되었으니 슬쩍 숟가락만 올려놓는 선배의 모습 또한 부정적인 ‘형님 문화’이다.

‘요즘은 후배들이 무서운 세상이다’는 말이 빈말이 아니다. 후배들은 신학교 기숙사에서와 같은 신뢰와 양보, 사랑과 희생의 모습을 보이지 못하는 선배를 동문이란 이유로 무조건 ‘형님’이라 부르지 않는다. 그저 동문 선배일 뿐이다. 하지만 타신학교 선배라 할지라도 그런 멋진 모습을 보이는 선배라면 언제든지 ‘형님’으로 부를 용의가 있는 것이 요즘 후배들이다. 굳이 신앙적으로 표현하면 예수와 같은 삶을 살거나 또는 살고자 노력하는 이라면 그가 누구이든지 간에 ‘형님’으로 모신다는 말이다.

그런 면에서 아래 예수님의 말씀을 참조해 보면 먼저 된 이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조금은 알 수 있게 된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누가 내 어머니이며, 내 형제들이냐?"...누구든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 곧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다.”(막3:33,35, 새번역성경)

먼저 섬기고, 먼저 사랑하고, 먼저 희생하는 모습을 보이는 이가 진정한 선배요 ‘형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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