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편적 가치와 충돌하는 목회 현장
보편적 가치와 충돌하는 목회 현장
  • 민돈원
  • 승인 2019.06.04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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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현장에서 일어나는 고민스런 일중의 하나는 어느 두 가지 상반된 가치가 충돌하여 겪는 갈등이 있을 때 신앙적 가이드라인을 제시해 주어야 할 경우이다. 즉 신앙적 기준과 보편적 가치가 충돌하여 그 자리에서 미룰 수 없는 결단을 내 안에 있는 양심이 요구할 때이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그런 단적인 예를 보게 되었다. 모 당 대표가 어느 종교 행사에 참여하여 그 곳 예법에 따르지 않았다고 국민들의 감정을 자극하고 조장하는 영상과 글들을 보면서 언론, 방송이 형평성을 잃어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특히 그 당 대표의 기독교인 부정적 이미지를 크게 부각시켜 이 땅에 기독교인들을 싸잡아 비난하는 반기독교적인 정서로 몰아가는 편파 보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기 때문에도 더욱 그리하다.

그 내용의 골자를 살펴보면 너무 황당하기까지 하다. 그의 행위가 그가 참여한 사찰예식에 위해요소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단지 그 대표를 비난한 주요 이유는 합장을 하지 않고 서 있었다는 것이 전부이다. 그리고 그는 독실한 기독교인이라고 덧붙였다. 바로 그 점이다. 행사에 참여한 것만으로도 예의를 갖추었다고 왜 고운 시선을 보내주지 못할까? 독실한 기독교인이기에 그의 개인적 소신과 정체성을 인정해 주는 사회가 품격과 건강한 정신이 깃든 사회이다. 그런데 그의 종교적 양심을 인정해주기는 커녕 도리어 함께 참석한 인사들과의 일률적인 행동을 하지 않았다는 데 트집을 잡아 반 기독교적인 정서를 조장하는 것은 차후 그를 겨냥한 정치적인 속셈이 훤히 들여다 보인다. 결코 어느 정치인을 옹호하고 싶은 마음에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최소한 목회자로서 일말의 양심을 가진 눈으로 볼 때 갈수록 이런 비난성 보도를 일삼는 행위는 종교간의 불신과 반목을 부추기는 선동보도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지금 이 시대가 이런 뉴스에 길들여지고 국민들 간의 정서가 사나와지고 대결구조로 만들어 싸움닭 구경하면서 한편에서는 즐기고 있는 듯한 비정한 사회로 내몰아간다는 위험성을 잊고 있는 것 같아 묵과하기가 어렵다. 목회자는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이런 목회 현실을 외면하지 않도록 외치라고 부름 받은 자들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정치인일지라도 동시에 자신이 가지고 있는 종교적 양심에 따라 행동할 수 있는 정체성을 인정해주어야 한다는 것을 방송과 언론은 일방적으로 흠집을 낸 나머지 들쑤시고 있다.

나아가 인권침해라는 마치 만능의 잣대와 같은 미명하에 기독학원의 건학 이념까지 송두리째 지우려는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속속들이 연출되고 있다. 예컨대 지난해 숭실대와 한동대를 비롯한 대다수 미션 스쿨을 겨누어 옥죄는 일들이 그 반증이다.

그렇다면 이 질문에 답해 보라. 최근들어 정통성에서 벗어난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의 병역의무를 위반한 일명 양심적 병역거부는 왜 법으로서 보호할 만큼 너그러워 무죄 판결을 내리면서 국가 행사도 아니고 의무조항도 아닌 예법에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로만으로 사찰의 입장을 대변 하듯 비난하는 그 저의가 무언지 되묻고 싶다.

또한 기독교인이 제사상 차려놓은 초상집이나 제사집에 가서 마음에 거리끼는 절을 하지 않았다고 비난 받아야 하는가? 그렇게도 소수자 인권 노래 부르는 자들이 왜 기독교인들 인사들만 나오면 그들에게는 가차 없이 잣대를 들이대고 국민들을 선동하려 하는지 의문이 증폭되어갈 뿐이다. 이 밖에 이슬람교도들이 타종교 행사에 참석하여 그들이 지키는 할랄 음식 기준에 맞지 않은 것을 먹지 않는다고 비난할 수 있겠는가?

다시 역으로 생각해 보자!

타종교 정치인이 기독교 주요 절기 행사나 예배에 참석하여 ‘다같이 사도신경 합시다’ 했는데 친절하게 자막에 띄운 그 내용을 같이 따라 하지 않고 혼자 입 다물고 있다고 해서 그를 비난할 수 있겠는가? 예배 의식에 따르려면 찬송도 같이 해야 할 것이고, 신앙고백도 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야 기독교 예법에 어긋난 행위가 아니지 않겠는가? 그러나 기독교 주요 예배가 드려지는 그런 행사 때 이것 때문에 문제 삼는걸 보지 못했다. 더욱이 그런 장면을 포착하여 언론 방송에 공공연히 퍼트려 비난하는 일은 지금까지 어느 역사에도 없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만 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님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기도 한다. 그런데 어느 행사에 역시 언론사들이 특정인에게 카메라를 들이대고 부르지 않은 장면을 포착하여 의도적으로 지탄의 대상으로 부각시키는 모습을 보아왔다. 정치적인 견해가 다를 수 있음을 수없이 주장하면서 어느 특정인에게는 개인적인 소신과 철학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합리적 근거를 잃은 억지이다.

그러기 전에 공공장소에서 음란문화를 공식행사로 즐기면서 다수의 시민들은 물론 감수성이 예민한 우리 청소년들과 어린이들에게 시선 강요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아무런 법적 제지를 받지 않는 사회가 선진국이고 인권이 보장하는 사회라고 정부가 권장하는 것부터 형평에 맞는 설득력 있는 논리인지 진정성 있게 다루어 보라.

적어도 이쯤에 이르렀다면 이제는 교계 지도자들과 기독지성인들의 합일된 반론과 책임적 대안이 제시되어야 하지 않겠는가이다.

그런 기대감을 가지고 일부 몇몇 지도자들이 중심한 노력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나 그들 역시 공신력을 얻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이러니한 딜레마이고 사실 큰 문제의 함정이기도 하다. 세간에 그리스도인들이라고 내 놓은 통계는 적지 않은데 힘입어 심지어 지난 몇 해 전 막상 신중하지 못한 처사로 기독당을 창당해 목소리를 내려 했지만 한 의석도 얻지 못할 만큼 그마저도 둘로 나뉘어 표가 사분오열된 창피한 모습으로 도리어 역효과만 냄으로써 이런 부정적 사회 현상을 풀기 어려운 것보다 더 우리 마음을 무겁게 만든 셈이다.

따라서 진정으로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이 확실한 복음의 능력과 깨어있는 그리스도인의 의식을 가지고 해체되고 이합집산의 마음들을 다시 결집할 수 있는 새로운 프레임을 지닌 구조적 변화에 주력할 때이다. 그리하여 영적으로 소돔과 애굽화되어 가는 세상이 아닌 영광스런 몸과 하나님의 통치가 이뤄지게 하는 이 일에 있어서만큼은 한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책임있는 영적지도자들이 몸 사리지 않고 누구보다 나서서 풀어야 할 과제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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