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과 의지가 싸울 때
감정과 의지가 싸울 때
  • 윤미애
  • 승인 2019.05.22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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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을 겁니다. 아마 나도 그랬을 겁니다. 되돌아보면 그게 당연합니다. 아이 나이 즈음의 나를 생각해보면 말이에요. 딸아이, 원하는 대학에 가고 싶은 마음과 공부하기 싫은 마음이 싸움을 합니다. 가끔, 아주 가끔 잔소리를 합니다. “감정을 따르지 말고 공부를 믿고 그냥 의지로 하는 거야.”라고요. 물론 아이의 귀에 들릴 리 없겠지만요. 그리고 독백이 이어집니다. ‘그 말이 들리겠나? 나이 먹은 나도 잘 되지 않는데.’

나이가 많아진다고 해도 별로 달라지지 않는 것 같아요. 단지 주제만 바뀔 뿐이지요. 많은 순간 감정과 의지가 다툼을 벌이고 있는 것을 경험하곤 하죠. 감정 그 자체도 중요하고 의지 그 자체도 중요한데 둘이 싸울 땐, 의지가 이겨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경우가 많이 있어요. 나를 위해서도 그렇고, 일의 성취를 위해서도 그렇고, 사람들과의 관계를 위해서도 그렇고요. 좋은 부부관계를 위해서는 더욱 그렇지요.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한 지인의 이야기입니다. 아이에게도 자신에게도 무관심한 남편과 갈등이 심해요. 그런데 아이가 좀 아프고 가정에 문제가 생기자 남편이 조금씩 변합니다. 듣지 않아도 자꾸 말하려고 한대요.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갈 때도 동행해준다고 합니다. 그런데 화가 많이 난 상태여서 남편의 변화가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답니다. 그래서 묻습니다. 원하는 것이 뭐냐고요. 행복한 가족을 만들고 싶다고 합니다. 그래서 말해줍니다. 식상하게 들리겠지만 그게 목표면 그에 맞게 노력하라고 말입니다. 머리로는 알겠는데 너무 미워서 쉽지 않다고 하네요. 그래서 한 마디를 더합니다. 사랑은 감정이 아니고 의지라는 말을.

되돌아보면 그 지인의 마음이 아주 잘 이해가 됩니다. 결혼 초에는 부부싸움을 하면 어떻게 상처를 줄까에 초점을 맞춥니다. 화해를 위한 노력은 뒷전이지요. 어떤 말로 싸움에서 승기를 잡을까가 주된 관심이고, 나의 상한 마음을 어떻게든 보상해주고 싶어요. 하지만, 철이라는 것이 들고 조금씩 성숙해지면 의지라는 것이 힘을 발휘하기 시작하지요. 자존심이 상해 사과하기가 죽도록 싫어도 의지적으로 사과를 합니다. 살짝 굽히고 들어오는 상대를 모른 척 받아주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부부관계가 서서히 좋아지게 되지요.

기독교 변증가라 불리는 루이스(C. S. Lewis)는 유명한 그의 책 『순전한 기독교』에서 기독교적 의미의 사랑을 설명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기독교적 의미의 사랑은 감정이 아닙니다. 그것은 감정의 상태가 아니라 의지의 상태입니다. 자신이 이웃을 사랑하나 사랑하지 않나 고민하느라 시간을 낭비하지 마십시오. 그냥 그를 사랑한다 치고 행동하십시오. 어떤 사람을 사랑한다 치고 행동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진짜로 그를 사랑하게 된다는 비밀을 발견할 것입니다.”

사랑한다 치고 일단 행동하라는 루이스의 말에도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이처럼 감정이 아닌 의지를 따라 살 수 있는 또 다른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요? 저는 습관에서 그 답을 찾아보려고 합니다.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따라 감람 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따라갔더니.”(눅 22:39)

예수님이 잡혀가시기 바로 전 장면입니다. 곧 잡혀가실 것을 아는 예수님이 하신 일, 바로 기도하는 일이었습니다. 고난을 이길 힘을 준 것은 기도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순전히 제 생각입니다만, 그런 기도를 가능하게 했던 것은 습관의 힘은 아니었을까요?

21일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지요. 습관을 형성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21일이라는 연구결과에서 나온 말입니다. 사실 뇌에 습관을 각인시키는 데 걸리는 시간이 그렇고, 몸에 배기까지는 12주가 걸린다고 해요.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닙니다. 그래서 어쩌면 작심삼일, 아니 작심일일이 되더라도 새롭게 결심하는 것이 필요한지도 모르겠어요. 좋은 습관은 감정을 넘어서 의지가 이기도록 해 줄 테니 말이에요. 다음의 말은 오늘의 이야기를 맺기에 딱 들어맞는 말인 듯합니다. 전 영국 총리였던 마가렛 대처의 말입니다.

“습관을 조심하라. 운명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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