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래잡기
술래잡기
  • 윤미애
  • 승인 2019.05.08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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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좋아하는 놀이 가운데 하나가 술래잡기입니다. 술래가 되면 숨어 있는 친구들을 찾기 위해 여기저기 뛰어다니지요. 숨는 아이는 머리카락마저도 보이지 않도록 꼭꼭 숨어야 해요. 술래가 다가오는 소리가 들리면 심장은 요란하게 뜁니다. 저절로 숨죽이게 되지요. 들키면 술래가 되어야 하거든요.

어린 아이와 술래잡기를 하며 놀아줄 때는 적절한 요령이 필요합니다. 술래가 되면 보고도 못 본 척 넘어가야 하고, 숨을 때는 쉽게 찾을 수 있도록 흔적을 남겨야 해요.

어려움을 당한 어느 부부를 위해 중보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들이 문제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과 더 가까워지기를 소망하면서요.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아~ 우리는 평생 하나님과 술래잡기를 하고 있구나. 그것도 역할이 변하지 않는 술래잡기를.’

그렇다면 변하지 않는 우리의 역할은 과연 뭘까요? ‘못 찾겠다 꾀꼬리’라는 대중가요를 아시나요? 그 노래를 흥얼거리다 보면 답이 나와요. 아셨나요? 예, 우리의 역할은 오늘도 술래이고 언제나 술래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도 비슷한 생각을 했나 봐요. 이렇게 말하거든요.

“구원자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진실로 주는 스스로 숨어 계시는 하나님이십니다.”(사45:15)

지난 사순절에 만난 이블린 언더힐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성령의 창조적인 활동은 삶 전체를 꿰뚫으며 우리로 하여금 온갖 종류의 방식으로 이를 느끼게 합니다. 우리는 좁게 생각하는 탓에 눈에 보이는 우리의 일상적인 필요와 계기들에서 활동하시는 하나님의 창조행위를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말한 스스로 숨어 계시는 하나님을, 이블린 언더힐이 말한 삶 전체를 꿰뚫는 하나님의 창조행위를 찾아내고 발견해가는 것이 신앙의 여정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일속에 숨어 계신 하나님을, 만나는 모든 사람 속에 숨어 계신 하나님을 찾아가는 과정인 거죠.

때론 하나님이 쉽게 찾아지지 않아 울기도 합니다. 어린아이처럼 하나님을 찾고 기뻐할 때도 있습니다. 사실 술래인 것을 잊어버릴 때도 많습니다.

어떠하든, 어떤 하나님을 찾든 우리는 우리의 역할로 돌아가야 하지요. 그리고는 다시 술래가 되어 하나님과의 술래잡기를 계속 이어가야 합니다. 언제까지요?

여섯 살 난 조카가 친척 언니들과 만나 놀다가 헤어지기 싫다며 울어요. 아이를 달래며 말합니다. 아홉 밤을 자고 다시 만나자고. 왜 그때 만나냐는 아이의 질문에 아빠의 할머니가 돌아가신 날이라고 말해줍니다. 아이가 다시 묻습니다. 어디로 돌아갔냐고. 뭐라 설명해야할지 몰라 머뭇거릴 때 아이의 엄마가 말해줍니다. 천국에 가신 거라고.

어릴 때 술래잡기를 하던 기억을 떠올려봅니다. 놀이가 끝나는 경우는 둘입니다. 숨은 친구들을 다 찾거나 어두워져 엄마가 부르시거나. 그래요. 우리의 술래잡기는 하나님이 부르셔야 그제야 끝이 납니다. 날이 저물어 부르실 그때 하나님께서 이렇게 물으실 지도 모르겠어요. “숨어있는 나를 얼마나 많이 찾았니?”라고요.

앞으로는 술래잡기에 더욱 집중해야겠어요. 삶 전체에 숨어계신 하나님을 더 많이 찾기 위해서요. 들킬까봐 숨죽이고 있는 아이와 달리 하나님은 찾아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계실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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