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리지 않는 설교로 시간고문(?)한 목사
들리지 않는 설교로 시간고문(?)한 목사
  • 민돈원
  • 승인 2019.05.07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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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노동’이란 단어는 백과사전에 정식으로 등장하는 용어이다. 이것은 직업상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고 정해진 감정만을 표현할 때 일컫는 용어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시간노동도 있을 수 있겠다 하는 생각을 최근 한 성도의 가정 심방을 통해 대화하던 가운데 잠시 해 보았다.

一刻如三秋(일각여삼추)란 일각(15분)의 시간이 마치 3년과도 같이 지루함을 의미한다. 좀 격하게 표현한다면 피할 수 없는 어느 일정 시간을 억지로 참아야만 하는 시간고문 당하는 것과 같은 시간을 보내야 할 때 적용할 수 있는 말이다.

목회자가 매주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설교를 준비하는 것은 사실 보통 쉬운 일이 아니다. 어쩌면 해산의 수고라고 해야 할 만큼 늘 부담스럽지만 온 열정을 쏟아내야만 하는 일이다.

매번 영감을 받아 전한다 해도 성도들이 듣지 않으면 허공에 외치는 메아리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씀을 청종하고자 하는 분들로 인해 설교자는 보람을 찾고 힘을 얻는다.

지난 주 어느 권사님 댁 대심방하면서 알았던 사실이다. 주일 낮 설교 때 무슨 말씀했는지 끝나는 시간 내내 도무지 들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니 ‘일각여삼추’란 말이 이럴 때를 두고 하는 말일게다. 이유인즉슨 연세가 80가까운 분으로 보청기를 끼고 들어야만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분이기 때문이다. 권사님의 기억으로 오래전 군 직무 수행 때 가까이서 비행기 등 큰 굉음소리 나는 곳에서 근무하다보니 청각이 그런 것 같다는 말씀이었다. 하지만 반드시 매주 주일을 예배하는 시간만큼은 어려운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철저히 드리는 분이다. 세상적으로 볼 때 육사를 거쳐 부사단장(대령 예편)까지 역임하신 지휘관이셨고 당시 국가 안보에 크게 공헌한 족적(足跡)을 남긴 분이다. 더욱이 그날 가서 새삼스럽게 안 것은 영어로 성경을 보시고 영어스피치가 가능할 정도로 지성과 영성을 두루 갖춘 인텔리이다.

그런데 그 이전까지는 그렇지 않았는데 지난 주간 주일 낮에 소리가 들리지 않아 예배가 너무 힘들고 고통스러웠다고 그 당시의 심정을 털어놓으셨다. 이 이야기를 듣고 들리지 않은 설교를 끝날 때까지 듣느라 마음고생하게 한 내가 고통의 가해자같이 자책이 들었다. 힘들게 참석한 예배인데 그나마 설교가 들리지 않았다고 하니 방송 장비를 탓하기 전에 설교자로서 무거운 책임감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에 그날 가정에서 드린 심방설교라도 온 힘과 마음을 다하여 또박또박 최대한 명료하게 그리고 큰 목소리로 주일 낮 못들은 것을 배상이나 해 드리듯이 전했다. 끝나고 나자 권사님은 너무 마음이 시원하고 풍성해졌다고 흡족해 하셨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서 지난 주 못 들으셨다는 설교 원고도 스마트 폰으로 전송해 드렸다. 그랬더니 이렇게 답신을 보내 주셨다.

‘보내주신 설교원고 은혜롭게 잘 읽었습니다. 오늘 심방 오셔서 주신 큰 믿음에 관한 말씀 감사히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이 권사님을 1년 반 전부터 처음 만난 이후 지금까지 뵈면서 이번 기회에 칭찬하며 알리고 싶어 생각나는 대로 열거해서 독자들과 나눠보고자 한다.

목회자에게나 성도들에게도 겸손하다. 매주 예배시간에 거의 약 한 시간 전에 가장 일찍 도착한다. 오랜 군 지휘관 출신임에도 주장하는 자세가 전혀 없다. 나중에 참모총장까지 된 분들의 장군들을 많이 모셔서 그러신지 목회자를 매우 존중하는 자세를 견지한다. 하나님 말씀을 사모한다. 성경을 매년 여러 번 완독한다. 지금도 물질에 대한 욕심이 없다. 암기력이 뛰어나다. 매우 젠틀한 인품을 지녔다. 복음에 대해 확실하고 체험적인 믿음으로 변함이 없다. 연세를 뛰어넘는 열정이 넘친다. ...

그러면서 이런 궁금한 질문을 드려 보았다. ‘군에 계실 때 좀 타협도 하시고 술자리도 하시고 했으면 별도 달수 있는 장군의 기회가 있지 않으셨을까요?’

그러자 권사님은 불평이나 다른 장황한 설명을 할 수 있을텐데 이렇게 답변하셨다. ‘아닙니다. 그 자리(대령예편) 있게 된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잘 들리는 육체적 청각을 가진 분보다 훨씬 더 따뜻한 마음, 건강한 마음의 귀를 가지고 사시는 권사님은 소박하게 과수농사를 지으면서 영혼의 말씀과 이마에 땀을 흘리는 노동을 게을리 하지 않는 규모 있고 성실의 본이 되는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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