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의 하나님!
성전의 하나님!
  • 이구영
  • 승인 2019.05.03 08: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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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은 왕이 된 후에 7년간에 걸쳐서 대공사를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을 모시기 위한 성전을 지었습니다. 드디어 그 성전이 다 완공이 되던 날 솔로몬은 많은 백성을 모아 놓고 큰 소리로 간절한 기도를 드리게 됩니다. 성전으로 하나님을 초대하는 기도이며 동시에 응답해 주시기를 청원하는 기도입니다. 그 기도는 대략 이런 것 이었습니다.

- 죄 용서를 구하는 사람이 있으면 용서해주세요.
- 억울한 자가 와서 기도하면 의로운 대로 갚아주세요.
- 전쟁에서 져서 포로로 잡혀가게 된 자들이 이 성전에서 기도할 때 잡혀가지 않게 해 주세요.
- 포로로 잡혀간 자들이 이곳을 향하여 기도만 해도 돌아오도록 도와주세요.
- 비가 내리지 않을 때 이곳에서 기도하면 비를 내려주세요.
- 전염병에 황당할 때 이곳에서 기도하면 고쳐주세요.
- 이방인들이라 할지라도 이곳에서 기도하면 그들의 소원을 들어주세요.

예물도 엄청나게 많이 드리며 예배를 드렸습니다. 지금 우리들이 드리는 예물의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대하 7:5]
“ 솔로몬 왕이 드린 제물이 소가 이만 이천 마리요 양이 십이만 마리라 이와 같이 왕과 모든 백성이 하나님의 전의 낙성식을 행하니라 “

소가 이만 이천 마리입니다. 한 마리에 900만원씩 22000마리.. 1980억원입니다. 양이 12만마리. 한 마리에 100만원씩만 계산해도 1200억원입니다. 엄청난 예물을 드리면서 마치 하나님을 자신이 독점한 것처럼, 자신이 지은 성전에서 예배를 드려야만 참 예배이고, 이곳에서 드려진 기도만이 응답되는 것처럼 그는 엄청난 홍보와 함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날 밤 기도를 마치고 잠을 자는 솔로몬의 꿈에 하나님께서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는 이런 말씀을 주셨습니다.
[대하 7:16]
“ 이는 내가 이미 이 성전을 택하고 거룩하게 하여 내 이름을 여기에 영원히 있게 하였음이라 내 눈과 내 마음이 항상 여기에 있으리라 “

무슨 이유에서 인지 하나님께서는 몇 가지 조건을 내세우시면서, 내가 너의 간구를 들어서 이 성전에서 기도하는 것에 대하여 응답하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이 사건 후에 사람들의 마음속에 하나님은 성전의 하나님이 되셨습니다.

기도하려면 성전에 와야 했습니다. 예배드리려면 성전에 와야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예배가 너무 힘들었습니다. 100키로 미터를 걸어서 예배를 드리러 가야 했습니다. 적어도 10키로미터, 30키로미터를 걸어야 예배를 드릴 수 있었습니다. 먼 곳에 사는 사람들의 믿음이 점점 식어졌습니다. 그러다가 이스라엘 이라는 나라가 둘로 갈라지게 되었습니다. 북쪽은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명을 사용했고, 남쪽은 유다라는 나라명을 사용했습니다. 예배의 장소인 예루살렘 성전은 남쪽 유다에 속해 있었습니다. 그때 예배를 드리고 싶었던 일부의 북쪽 사람들이 예배를 드리러 남쪽 예루살렘을 향하게 되었습니다. 북쪽의 왕 여로보암은 이 꼴이 보기 싫어서 자기 마음대로 예배의 처소를 새로 정해주었습니다. 북쪽 나라의 북쪽 도시인 ‘단’과 남쪽 즈음인 그리심 산 부근 ‘벧엘’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금송아지를 만들어 두었습니다. 이 금송아지가 하나님이니 너희는 이 금송아지에게 예배하라고 강요를 했습니다.[왕상 12:27-29]

하나이었던 예배의 장소가 셋으로 늘었습니다. 이렇게 우상을 숭배하며 사람들의 마음이 하나님에게서 떠나니까 하나님께서 진노하셨습니다. 앗수르라는 나라가 쳐들어왔습니다. 북쪽 이스라엘이 멸망당했습니다. 바벨론이라는 나라가 쳐들어왔습니다. 남쪽 유다도 멸망당했습니다. 이제 모든 성전이 다 파괴되었습니다. 그 소중한 예배의 장소가 없어졌습니다.

그로부터 70여년의 세월이 지난 후에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성전복원운동이 일어났습니다. 학개 선지자, 스룹바벨 총독등이 중심이 되어서 성전재건운동을 벌였고 성전이 새로 지어졌습니다. 사람들은 다시 성전을 찾아와서 예배를 드리며 하나님의 자녀임을 확인했습니다. 세월이 또 500여년 지난 후에 헤롯이라는 사람이 이스라엘의 왕이 된 후에 그는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아서 정치를 쉽게 하고 싶은 마음에 성전 재건공사를 시작합니다. 그렇게 시작한 공사가 그 아들이 왕이 되었을 때 완성이 됩니다. 70여년이 걸렸습니다.

그 즈음에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당시는 모든 삶이 성전중심이었습니다. 그래서는 안 되는데 솔로몬 이후로 사람들은 꼭 성전에서 기도해야 하나님이 들이시고, 성전에서 예배드려야 하나님께서 들으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거리상의 이유로 신앙생활이 온전히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물론 동네마다 자그마한 회당들이 있어서 자녀들의 신앙교육과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의 처소로 사용되기는 했지만 왠지 예루살렘에 가서 예배를 들려야 할 것 같아서 모든 20세 이상의 남자들이 일 년에 세 번 예루살렘에 모여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믿음의 온전히 자랄 수 있었을까요? 장소중심의 예배를 사람중심의 예배, 마음중심의 예배로 바꾸어 놓으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장소중심의 예배, 장소중심의 신앙생활을 강조하던 당시에 예수님께서 수가라는 동네에 들어가시자 한 여인이 이런 질문을 하였습니다. 우리 동네 사람들은 이 그리심 산에서 예배를 드려야 하나님께서 받으신다고 하고, 예루살렘 근처에 사는 사람들은 아니라고 예루살렘에 꼭 와서 예배를 드려야 한다고 하는데 어떤 것이 맞습니까?

그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그 유명한 요한복음 4장 24절입니다.
[요 4: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장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배는 장소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예배드리는 사람의 마음속에 하나님을 향한 깨끗한, 진실한, 거룩한 영이 있느냐를 물으십니다.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고 있느냐를 물으십니다.

성령님이 인도하시는 예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높이며 그분의 이름 의지해서 드려지는 예배를 말씀하고 계십니다. 과거 구약성경과 초기신약시대의 사람들이 성전중심의 예배를 강조했다면, 예수님께서는 그 장소, 그 성전이 아니라 사람들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과 상태를 강조하셨습니다.

예수님 부활하신 이후에 교회가 생겨납니다. 오순절 축제 기간에 그들이 함께 모여 기도할 때 성령님께서 강하게 임하신 후 그들은 흩어져서 또는 모여서 함께 예배중심의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그게 교회이었습니다. 그 교회는 건물이나 장소, 성전의 개념이 이미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언제부터인가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모임이었습니다.

교회를 말하는 희랍어는 에클레시아! 이 에클레시아는 ‘함께 불러내서 만난 사람들’ 이라는 뜻입니다. 이제 교회는 단순한 모임의 차원을 넘어서 하나님께서 불러내어주셨다고 하는 소명의식이 있는 사람들의 모임이 되었습니다. 이후에 하나님께서는 성전의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들 속의 하나님이 되셨습니다. 그래서 역대하 7장 16절의 말씀은 새롭게 해석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대하 7:16]
“ 이는 내가 이미 이 성전을 택하고 거룩하게 하여 내 이름을 여기에 영원히 있게 하였음이라 내 눈과 내 마음이 항상 여기에 있으리라 “

여기서의 성전은 보이는 솔로몬 성전만이 아니라, 공간적 의미의 교회만이 아니라 모임의 의미가 강해졌습니다. 오늘 우리들의 속회모임이나 가정예배처소, 불러내 자녀삼아 주신 사람들의 모든 모임 가운데 하나님의 눈과 마음이 항상 머물고 계심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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