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루가 실력이 될 수 없는 이유
신기루가 실력이 될 수 없는 이유
  • 민돈원
  • 승인 2019.04.30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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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문득 설교를 준비하면서 비슷한 것 같지만 전혀 의미가 다른 두 단어가 머리에 맴돌았다. 그것은 ‘신념’과 ‘신앙’이란 단어였다. 신념은 내 의지요 내 신조로써 나를 믿는다. 와 같이 내가 그 중심에 서 있다. 반면에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은 인생의 주인이 하나님이다. 라는 고백으로써 신념에서 내가 주인인 것과는 달리 주님이 내 삶의 주인이기에 신념과는 대조적인 의미를 지닌다.

그러면서 이와 같은 맥락으로 또 다른 두 비슷한 단어를 가지고 주일 밤 설교에 대한 영감이 떠올랐다. 바로 그 단어는 열정과 욕심이란 단어였다. 이 두 단어를 사전적인 의미를 최대한 살리면서 나름대로 이렇게 정리를 하게 되었다.

열정이란 어떤 꿈을 이루고 비전을 향한 선한 노력이요, 거기에 소요되는 연료와 같다. 따라서 비전 없이 열정 없고, 열정 없는 비전은 이루어 질 수 없을 것이다.

그에 반해 욕심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욕망을 채우려 하고 탐내는 이기심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신앙생활에 있어 주의할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열정과 욕심의 경계선이 분명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모호하면 자신도 힘들고 다른 사람, 특히 교회 공동체의 평안을 저해하는 우려를 가져올 수 있다. 즉 열심은 좋으나 다만 아래에 제시한 다음 것을 갖추지 않으면 욕심이나 다름없는 잘못된 열심으로 전락하고 만다. 그런 욕심의 다양한 모습을 나름대로 몇 가지 생각해 보았다.

_.회개 없는 열심 - 죄를 지으면서도 성취욕으로 결과만을 중요시한 나머지 자기과시로 사회 적 물의를 일으키는 경우

_.기도 없는 열심 -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거나 하나님을 인정하기보다 자기공로를 내세우고 인간적 생각과 방법을 앞세우고 사는 경우

_.순종 없는 열심 - 자기 의에 도취되어 내 프레임에 갇혀 살고 결정하는 경우

_.예배 없는 열심 - 하나님 경외함이 없기에 희생이나 헌신이 없고 자신의 야망을 위한 세상 일에 분주하여 사느라 예배는 형식일 뿐 예배와 삶이 불일치한 경우

_.말씀 없는 열심 - 일정한 지식과 올바른 진리에 근거한 신앙이 아니기에 그릇된 길로 빠지 는 경우

_.드림 없는 열심 - 섬김이나 나눔 없는 열심인지라 너무 계산적인 사람으로 자기이익만 채우 는 경우

_.사랑 없는 열심 - 역시 자기목적 달성을 위해 사람을 사랑의 대상이 아닌 수단으로 여길 만 큼 돈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용하는 경우

_.지식 없는 열심 - 일정한 지식체계나 객관적인 기준이 없기에 감정에 흐르기 쉽고 오래가지 못하는 경우 등이다.

그래서 성경은 “...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히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롬10:2-3 )라고 말씀하고 있다.

이런 열정과 욕심이 혼돈된 모습으로 나타나는 곳 중에서 교회도 예외가 아니다. 더군다나 욕심을 축복이라고 미화하는 경우도 없지 않다. 여기에서 더 발전하다 보면 허위의식에 사로잡히게 된다.

한 때 한국교회 병폐에 대한 귀담아 들어야 할 뼈있는 일침의 소리 중에 3허(虛數)-허수(虛數), 허세(虛勢), 허상(虛像)-의 신기루를 지적받아 왔다. 신기루가 결코 실력이 될 수 없는데도 삶의 일부처럼 친근한 적이 되어 온 것을 부인하기 힘들다. 그러다보니 여전히 이런 허풍과 거품의 3허라는 가면을 벗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 속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거짓이 숨어 있다.

이제라도 이런 신기루에서 깨어나려면 우리 스스로가 3실(實)-진실(眞實), 성실(誠實), 신실(信實)-의 내적 품성있는 교회 모드로 하루속히 전환되어야 한다. 즉 말과 행동의 진실함, 매너리즘에 빠진 형식적인 마음이 아니라 깊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온전한 마음, 그리고 충성스럽고 신뢰할 만한 진정성으로 허상을 걷어 내는 일이 교회 성장에 앞서 정신적 민족 계몽운동에 앞장 선 기수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자존감이 낮다보니 이것의 보상기재로써 허세를 부리고 잘못된 열심가진 욕심으로 교회나 교단 안에 낯 뜨겁게 지도자로 버젓이 활개 치는 한 ‘허 허 허!’하며 자조(自嘲) 섞인 실소(失笑)만 자아내게 할 뿐이다. 이에 허상이 아닌 실력으로 증명하는 교회되려면 실(實)을 숭상하는 위에서 언급한 진실, 성실, 신실 외에, 충실, 착실, 확실, 내실 있을 때 명실상부(名實相符)한 교회되리라.

그렇게 되면 ‘교회가 좀 성장하여 교인수가 좀 늘어났다고 해서 그 수를 방패삼아 하나님보다 그 수를 더 의지하거나, 신앙이란 미명하에 어느 순간 도리어 하나님의 자리에 올라가 허세를 부린다.’ 라고 하는 쓴 소리도 양약이 되어 비난과 원망이 사라질 것이다. 아울러 최근 역사를 외면하고 있다는 질타와 뭇매를 맞은 한국교회가 희망의 새 역사를 다시 쓸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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