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목사님과 장로님이 필요합니다
AI목사님과 장로님이 필요합니다
  • 송근종
  • 승인 2019.04.27 17:4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난 21일 한 일간지에 눈에 띄는 기사가 있어서 즉시 읽어 보았다. <사법부 신뢰 추락으로 떠오른 ‘존경하는 AI판사님>이 그것이다. 요즘 사법부 농단으로 인해 사법부의 신뢰가 떨어지면서 그 대안으로 AI판사가 도래 할 수도 있다는 취지의 글이다. 판사에 대한 불신이 얼마나 크면 언제 있을지 모르는 로봇 판사 이야기가 벌써부터 나올까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이러한 안타까움이 비단 사법부뿐일까? 교단이나 개체 교회에도 AI지도자가 도래할 날이 다가오지 않을까? 교회지도자들이 점점 더 이기심과 탐욕에 눈이 멀게 되면, 교인들이 이에 좌지우지되지 않고 객관적 사실과 공공의 유익을 위해 프로그램 된 AI목사님과 장로님을 세우자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까 우려된다.

그런 생각이 요즘 들어 더 깊어지는 것은 어떤 목사님이 전해 준 이야기처럼 ‘자기 친구는 절대로 성범죄를 저지를 사람이 아니다. 그는 교단 정치에 의해서 희생된 사람이다.’고 자기 확신을 가지고 항변하는 모습을 보면서이다. 자신이 직접 목격한 것도 아닌데 어떻게 확신을 가지고 이야기 할 수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곤경에 처한 친구를 위해서 안타까운 마음으로 항변해 주는 모습이 멋져 보였다.

하지만 문제는 그 친구 목사 외에 다른 사람을 대하는 태도는 정반대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그 목사님은 자신이 두 눈으로 직접 목격하지 않고 전해들은 이야기만 가지고 ‘절대로 그런 사람이 지도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변(强辯)하는 모습을 보면서, 제 3자가 보기에는 너무 형평성을 잃고 한쪽에 편향된 주장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소위 ‘내가 하면 로맨스요 다른 사람이 하면 불륜이다’는 말처럼, 객관적 사실과 자료를 근거하지 않고 자기 경험과 생각을 중심으로 선입견과 편견을 가지고 판단하는 것처럼 위험한 것은 없다는 것이다.

이것이 비단 그 목사님 뿐일까? 우리 주변을 유심히 살펴보면 그런 모습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개인 또는 그가 속한 단체의 이기심을 위해서 악의적인 소문을 만들어내고, 나쁜 여론을 조장하여 다른 사람을 곤경에 빠뜨리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자신들만을 위해 세운 질서에 반대하면 어제의 친구도 오늘의 적으로 간주하여 매장시키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이것이 일반 사회의 이익 단체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교회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다. 그렇게 섣부른 판단과 선입견, 자기중심성과 탐심 등을 극복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어려움을 준다면 어쩌면 교회에 AI지도자의 등극은 그리 멀지 않으리라 생각된다.

목회하면서 다시 한번 깨닫게 되는 것은 주님이 미워하시는 것을 멀리하는 것이다. “주님께서 미워하시는 것, 주님께서 싫어하시는 것이 예닐곱 가지이다. 교만한 눈과 거짓말하는 혀와 무죄한 사람을 피 흘리게 하는 손과 악한 계교를 꾸미는 마음과 악한 일을 저지르려고 치닫는 발과, 거짓으로 증거하는 사람과, 친구 사이를 이간하는 사람이다.”(잠언6:16-19, 새번역성경)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