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미애
  • 승인 2019.04.24 0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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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맘.”

딸아이가 자주 하는 말입니다. 아이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아 왜인지 물으면 돌아오는 답이지요. 엄마는 ‘갱년기’를 무기로 딸은 ‘고3’을 무기로 맞섭니다. 하지만 엄마의 숙명은 져주는 것, 하여 아이가 그렇게 맞서면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섭니다.

맘이라... 아이가 말한 ‘맘’은 도대체 무엇일까요? 맘, 마음... 많이 쓰는 만큼 그 의미도 다양하네요. 아이가 말한 ‘맘’은 ‘뜻, 의지’ 정도의 의미를 가지고 있겠지요.

마음이 뜻이라는 의미를 가진다고 할 때 세상에는 참 여러 마음이 있네요. 그 많은 마음을 나를 기준으로 세 가지로 나누어 봅니다. 내 맘, 네 맘 그리고 하나님 맘. 달리 말하면 나의 뜻, 너의 뜻 그리고 하나님의 뜻.

이 세 마음이 늘 혼재해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때론 그 마음들이 서로 싸웁니다. 어느 마음이 이기느냐에 따라 살아가는 모습이 달라집니다. 내 맘대로만 할 때도 있습니다. 내 맘대로 하고 싶지만 네 맘을 따라야 할 때도 있습니다. 내 맘인 줄 알았는데 실은 나도 모르게 숨어들어온 네 맘을 따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따르겠다고 다짐하지만 내 맘대로 살아가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내 맘과 네 맘이 같을 때는 기분이 좋지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때는 하나님 맘과 내 맘이 하나가 될 때이지요.

내 맘과 하나님 맘이 하나가 되는 곳, 어쩌면 에덴동산이 그런 곳이었는지도 모르겠어요. 그곳에서 사람은 하나님과 거리낌이 없었지요. 있는 그대로 하나님 앞에서 살면 되었어요. 하지만 벌거벗음을 알게 되면서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선악과를 먹은 아담과 하와는 “네가 어디 있느냐?”라고 부르시는 하나님 앞에서 숨어버립니다. 벗은 것이 부끄러워서 말입니다. 결국 그들은 에덴에서 쫓겨나지요.

더 이상 하나님의 마음을 알 수 없게 된 사람들은 의지할 것을 찾습니다. 하나님을 대체할 그 무엇을요. 우상이라 일컫는 것들이지요. 그리고 그 우상들을 하나님의 자리에 앉힙니다. 그리고 그것들이 주인 노릇을 하게 합니다.

‘내가 주인 삼은 모든 것 내려놓고’라고 시작하는 찬양이 있습니다. 그런데 무엇이 우리의 주인 노릇을 하고 있을까요? 물질이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권력에의 의지도 떠오릅니다. 미움이나 질투, 두려움, 염려 등을 주인으로 만들며 살기도 하지요. 그것들이 폭군이 되어 나를 지배하도록 내버려두면서요.

얼마 전에 어떤 사람과 얽혀 불편한 일이 있었어요. 화가 나서 아무 것도 못하고 있는데 갑자기 머리가 멍해집니다. ‘나를 미워하는 것은 그 사람의 문제인데 내가 왜 이러고 있지? 왜 내 문제로 만들고 있지? 내 삶의 주도권을 왜 넘기고 있지?’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그와 그 일이 주인 행세 하도록 내버려둔 것에 약이 올랐습니다.

그래요. 나를 미워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건 문제가 아닙니다. 하지만 미움이라는 것에 삶의 주도권을 넘긴다는 것, 그건 심각한 문제입니다. 삶에 대한 두려움과 염려가 생긴다는 것, 돈을 많이 벌고 싶다는 것, 성공하고 싶다는 것은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들이 주인이 되어 삶을 지배하는 순간 심각한 문제가 되는 거죠.

지난 주일은 부활주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서 벗어난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살아나신 분을 기억하는 날이지요. 그 예수를 우리는 주님이라고 부릅니다. 주님이 우리의 주인이라는 고백이지요. 그런데 과연 그분을 진정한 주인으로 섬기고 있느냐고 묻는다면 할 말이 없습니다.

단지 소망할 뿐입니다. 내 맘과 하나님 맘이 다투는 일이 적어지기를. 내 맘이 온전히 하나님 맘에 포개지기를. 그래서 하나님이 주인이신 하나님 나라가 내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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