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 있는 유아세례
의미 있는 유아세례
  • 민돈원
  • 승인 2019.04.23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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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가 함께 한 유아세례

70-8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 가족제도는 흔히 볼 수 있던 한 가구 안에 함께 살던 대가족사회였다. 하지만 요즈음은 아예 찾아보기 힘든 시대이다. 노인 평균수명이 옛날보다 크게 연장 되었기에 만약 대가족 사회가 그대로 유지되고 있었다면 한 집안에 3대조(증조부)는 물론 4대조(고조부)까지도 같이 살 수 있는 시대가 되었을 거라는 산술적인 계산이 나온다. 다시 말해 보통 평균 결혼 연령 30년을 기준으로 할 때 오늘 날 80~90세 가까이도 장수하는 추세에 비추어 보면 나-부모-조부모-증조부모는 충분하고 결혼이 좀 더 빠른 가정은 고조부모까지 한 지붕 안에 살 수 있게 되었을 거라는 추론이다.

그러나 빠른 속도로 변화된 현실은 그렇게 살았던 시대와는 격세지감을 느끼게 된다. 다만 집안에 애경사나 있을 때 정도 행사용으로는 가능할지 모르나 일상생활용과는 거리가 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대 나아가 4대가 매주 한번이라도 온 가족이 동시에 그리고 한 곳에 모일 수 있는 근거와 자리가 있다. 바로 교회 예배드리러 오는 시간이다. 즉 예배는 세대차이가 없다. 내가 아버지라 부르는 하나님을 내 자녀도 아버지라 호칭하며 조부모도 그리고 증조부모도 다 같이 하나님을 아버지라 호칭하는 이른바 하늘 가족에서만 볼 수 있는 일이다.

이에 대해 성경은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즉 살아계신 하나님’이라 일컫고 있다.(마22:32)

자녀 및 후손에게 길이길이 역사에 남을 자랑스런 무언가를 물려줄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가문의 영광이 되는 일이요, 축복임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렇다면 없어지지 않을 그런 유산이 무엇일까? 보이는 물질적인 유산일 수 있다. 정신적인 가치체계일 수도 있다. 아니면 어떤 탁월한 기능보유자로서 물려주는 그 어떤 기능이나 문화예술 유산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 부활주일 한 가정의 유아세례를 집례하면서 가졌던 생각이 있다. 그것은 우리 자녀들에게 자자손손 물려주어야 할 최고의 유산이라 말하고 싶은 그것이다. 그것은 바로 끊어지지 않고 세대를 타고 이어가야 할 ‘믿음의 유산’이다.

이번 주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최고의 절기로 빼놓을 수 없는 부활절에 바로 그런 의미 있는 한 가정의 유아 세례식을 거행했다. 이제 태어난 지 3개월째 접어든 영아 하임이다. 결혼 후 3년 만에 첫 공주를 선물로 받은 부부는 모두 우리교회 출석하여 찬양대원으로, 중창단으로도 신실하게 섬기고 있는 좋은 인재들이다. 더욱이 세례받을 하임이를 위해 세례기를 들고 보좌하도록 한 할머니 역시 권사로서 교회 이런 저런 일을 묵묵히 섬기고 있다. 그리고 증조모 역시 매주 출석하고 있다. 그런데 하임이 할아버지가 아직 주님을 믿지 못하고 있어 마음에 걸렸다. 그러다 주일 전날인 토요일 그를 만나서 주일에 있게 될 손녀 유아세례 소식을 알리고 설명해 드렸다. ‘그토록 귀여운 손녀가 세례 받는 날이니 다른 때는 못 왔지만 이 날만큼은 할아버지가 세례식에 참석하여 세월이 흘러 훗날 사진 속에 들어있는 모습을 보면 얼마나 좋아하겠는가?’ 라고 권면했더니 즉답으로 약속하고 그 약속한대로 함께 예배를 드리며 기념사진까지 찍은 매우 뜻 깊고 은혜로운 시간이었다.

유아세례 받은 무척이나 귀여운 하임이로 인해 온 가정이 함께 한 자리에 모여 세대차이 없이 동일한 말씀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축복이요 은혜다.

무엇보다 한 영혼의 영적 탄생을 기념하는 시간에 3대에 걸친 가족 모두가 사진에 담긴 모습을 보면서 이런 가정들이 줄을 이어 가기를 소망하게 되었다. 이에 무엇보다 교회는 이 사회 어떤 제도도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이런 일들이 계속되기 위한 거룩한 사명감과 책임감을 소홀히 할 수 없음을 아울러 새기는 계기를 갖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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