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 있는 교인 외 두 방문
의미 있는 교인 외 두 방문
  • 민돈원
  • 승인 2019.04.16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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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두 군데 뜻있는 방문을 하게 되었다.

그 한 곳은 최근 강원도 동해안 큰 산불로 피해를 입은 고성의 원암교회 방문이었다. 방문한 그곳은 산불현장의 최초 발화지점과 매우 가까운 곳으로 거의 전소나 다름없는 피해를 입은 곳이었다. 원래 팬션이었던 2층짜리 건물을 매입하여 2017년 교회로 리모델링하게 되었고 불과 개척한지 2년밖에 안된 교회였다. 교회 바로 앞에 있는 팬션을 비롯해 창고로 보이는 몇 동의 건물 역시 시꺼멓게 전소가 된 상태를 보면서 그 당시 화재가 얼마나 심각했는지를 한 눈에 알 수가 있었다. 더욱이 그 교회와 인접한 마을 주택들 중 거의 반 정도가 소실되었다고 한다.

이런 화재 소식을 최초 보도를 통해 접한 나는 바로 다음 주일 낮 광고시간에 주일 밤 예배 때 특별헌금을 하도록 미리 광고를 함으로써 피해 입은 교회와 이웃의 아픔에 조금이라도 동참하도록 권면했다. 이에 그 드려진 헌금과 교회 재정에서 일부를 더 추가하여 애당초 피해를 당한 사전 정보를 입수한 두 교회에 복구비로 전달하되 한 교회는 직접 방문하지 못하고 계좌로 송금을 했다.

다만 피해가 훨씬 심한 다른 한 교회였던 고성 원암교회는 직접 현장을 방문하고 싶었다. 그 참혹한 현장을 직접 목도함으로써 그들의 고통에 다소라도 공감을 갖고자 하는 마음에서였다. 그 교회 담임전도사님을 통해 보내온 사진을 주일 밤 예배시간에 영상으로 보여주기도 했지만 이마저도 피상적인 것 같았다. 이에 2시간 남짓 걸리는 거리였지만 생생한 그 현장을 찾아가서 보는 것이 아픔을 당한 교회와 주민들의 마음을 단지 몇 푼 복구비 전달만이 아닌 피부적으로 고통의 현장을 이해할 수 있다고 마음먹었다. 현지에 도착하여 사진으로 담지 못한 주위의 시꺼멓게 타버린 산들과 군데군데 전소된 건물들을 보고 전도사님을 만나 피해상황을 설명을 들으면서 턱없이 부족한 작은 정성이었지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도록 위로의 마음을 담아 전달을 했다.

또 한 분은 파주에 사는 90세이신 사촌 되는 친척집을 다녀왔다. 직업군인으로 22년 복무하다 상사로 전역하신 분이다. 항상 만날 때마다 오랜 군 생활이 몸에 배어서인지 말씀 하실 때도 군대 지휘관 때의 절도 있고 박력 있는 억양은 현역 때와 거의 다를 바 없을 정도로 흐트러짐이 없을 만큼 강직한 분이셨다. 그런 모습이 지난 6년 전 찾아뵈었을 때만 해도 자세가 꼿꼿했는데 6년이 지난 이번에 만나 뵈었을 때는 전혀 달랐다. 전체적으로 많이 여위고 허리도 구부정한 약해진 모습을 보면서 세월의 무게 앞에는 녹록하지 않다는 것을 실감했다. 그 어르신도 5년 전과 5년 후가 이렇게 다르더라고 고백했다. 자그마한 아파트 거실 탁자와 벽에는 역대 두 분의 대통령 이름이 새겨진 훈장과 함께 옛날 수 십 년 전의 군대사진 등 60여장이 크고 작은 액자에 담겨져 가지런히 진열되어 있었다. 외로우면 사진을 보면서 그 속에 담긴 과거 추억을 되새기는 낙으로 사신다고 했다.

우리부부는 고령의 친척 어르신을 뵙고 식사대접과 함께 미리 준비한 선물 두 가지와 약간의 용돈을 드리고 돌아왔다. 다녀온 이후 그 어르신은 다음 날 아내에게 그리고 또 내게도 전화로 진심으로 고맙다고 몇 번이나 반복하면서 우리부부가 다녀간 것이 그렇게도 큰 힘이 되었다고 말씀 하신다. 우리 부모님도 멀리 떨어져 계셔 거의 찾아뵙지 못하는 가운데 부친과 거의 형님 아우사이로 가깝게 지내온 분이셨기에 부모님 찾아뵙는 심정으로 방문한 것이었다. 연세가 이 쯤 되면 언제 세상을 떠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처럼 뜻하지 않은 일을 당한 개인이나 지역을 방문하거나 누군가를 찾아뵙는다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고 방문을 받는 분에게는 힘이 나고 위로가 되는 만남이다. 교인 외 두 가정에 대한 의미있는 방문은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라고 한 말씀처럼 뿌듯했다. 아무 조건도 없고, 아무 이해관계도 없는 순수한 방문과 만남이었기에 더욱 그리했고 쌍방에게 모두 기쁘고 감동이 되고 좋은 여운으로 남기에 충분했다.

이번 산불 피해를 당한 교회방문은 단지 교회목사로서 그 아픔의 현장을 몸소 경험하고 헌금한 정성을 나누려고 한 것뿐이다. 그것은 슬픔은 나누면 줄어들고 기쁨은 나누면 커진다는 말도 있지 않던가? 그런데 실제 그 말을 실천해 볼 때 실천해 본 사람의 보람과 기쁨은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그 피해당한 지방과 직접적인 관계도 없고 그렇다고 내가 감리회에 책임적인 부서를 맡은 직위를 가진 것도 아니다. 다만 있다면 신대원 같은 후배(한 번도 만난 적 없음)라는 소문만 듣고 간 것이다.

친척 방문역시 마찬가지이다. 그저 나를 수 십 년 전부터 기억하신 분이기 때문이었다. 누구든지 사랑하고 존경하고 좋은 기억으로 남는 사람들은 이처럼 오랜 세월이 흘러가도 한 번 만나만 봐도 그 고마움 때문에 생기가 솟고 삶의 의욕까지 생기게 되는 것 같다. 그리고 그 여운은 오래 남기도 한다. 이런 방문자가 되는 것과 이런 방문자를 환영하는 살가운 만남을 만들어가는 세상이 되어 갔으면 하는 바람은 비록 나만의 바람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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