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을 이기는 사랑
두려움을 이기는 사랑
  • 이구영
  • 승인 2019.03.29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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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마귀가 심어주는 두려움이라는 감정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9년 2월 50대 실업자 수는 20만6,000여명으로 관련 통계를 작성한 1990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답니다. 지난달 구직단념자도 작년 2월보다 4만 1,000명 늘어난 58만 3,000명을 기록해 2월 기준으로 2014년 이후 가장 많았답니다. 경제활동을 하지 않고 특별히 하는 일 없이 그냥 쉬는 이들도 2003년 이래 가장 많은 216만 6,000명이었답니다. 경제적인 두려움뿐이 아닙니다. 안전에 대한 두려움도 커지고 있습니다. ‘묻지마 범죄’는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에 어떤 관계나 이유가 없이 그냥 전혀 예상치도 못한 상태에서 당하게 되는 범죄입니다. 불특정 다수를 향하여 그냥 행해지는 범죄들입니다. 한 통계자료를 보니까 국민 10명중 7명은 '묻지마 범죄'를 자신 또는 가족이 당할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느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과거의 죄가 드러날까 두려운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요즘 묻히어져 있던 죄들이 드러나서 곤욕을 치르는 사람들의 소식을 자주 듣습니다. 언제 내 대화의 내용이 범죄의 증거가 될지 모르는 세상이다 보니까 일단 흔적 지우기에 세심한 신경을 쓰고 있답니다. 치명적인 질병에 걸릴 것 같은 건강에 대한 두려움, 배신당하고 외롭게 될 것 같은 두려움, 심은 것이 없기에 거둘 것이 없을 것이라는 상황인식에서 오는 두려움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오늘 우리들의 상태를 두려움이라고 표현을 합니다. 그런데 이 두려움을 느끼게 되면 갑자기 자존감이 낮아지는 엉뚱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두려움의 결과로 찾아오는 것 중에 하나가 낮은 자존감입니다. 자신감을 잃습니다.

사울왕이 그랬습니다. 그는 굉장이 잘 나가던 사람입니다. 이스라엘의 초대왕이 된 사울왕! 다른 사람보다 명문가문에서 태어났습니다. 좋은 교육받았습니다. 체력도 좋았습니다. 체격도 좋았습니다. 건강했습니다. 용맹스러웠고 자신감이 넘쳤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울 왕 앞에 사울 왕 보다 더 굉장한 거구가 나타났습니다. 골리앗입니다. 그는 골리앗 앞에서 자신감을 잃었습니다. 자존감은 열등감으로 변했습니다. 그래서 숨어버렸습니다. 뿐이 아닙니다. 다윗 앞에서도 그는 자신감을 잃고 열등감에 시달렸습니다. 백성들의 민심이 사울에게서 다윗에게로 옮겨가자 그는 다윗 암살계획을 세우게 됩니다.

스스로의 가치를 높이려고 노력을 해야 할 사람이 상대방을 제거함으로 자신의 위치를 유지하려고 했습니다. 오늘날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경쟁자가 있음은 나를 발전시키시려는 하나님의 사랑임이 분명한데 나는 가만히 있고 그 경쟁자가 죽기를 바라고 실패하기를 바란다면 나는 얼마나 초라한 사람입니까? 우리들이 초라하게 사는 것을 원치 않으시는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아주 선명한 사랑의 고백을 해 주셨습니다.

[사 43:1]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내가 누굽니까? 하나님께서 정성들여 만드신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죄 가운데 빠져서 지옥에 가게 되었습니다. 마귀의 꼬임에 넘어가서 죄를 지었고 죄의 결과로 지옥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지옥의 왕인 사탄에게 아들 예수님을 내 주시고 나를 다시 사오셨습니다. 이중소유입니다. 만드신 분도 그분, 다시 사 오신 분도 그분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애착이 많으시겠습니까? 놓치실까요? 두려움속에 그냥 살게 하실까요? 아닙니다.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나를 두렵게 하는 그 모든 대적들을 부수어주시면서라도 나를 잡아 주시고 평안케 해 주실 것을 약속하고 계십니다.

[사 43:2-3]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요 네 구원자임이라 내가 애굽을 너의 속량물로, 구스와 스바를 너를 대신하여 주었노라“

하나님의 선포는 이런 것입니다. 너를 위협하는 애굽 사람들, 너를 속여 먹으려는 구스사람, 스바사람 그들을 다 잃어버릴지라도 나는 너를 잃지 않을 것이다. 혹 네가 물에 빠진다 하여도, 혹 네가 불 가운데 놓여 진다 할지라도 나는 너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왜 그렇게 하나님께서 별 가치 없는 나에게 집착을 하시는 것일까요?

그것을 성경은 하나님의 사랑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내가 잘 나서가 아니라 나를 사랑하시는 그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내가 살 것임을 성경은 선포합니다. 내가 가치 있고 보배로와 서가 아니라 그분이 나를 그렇게 여겨주심에 있음을 선포합니다.

[사 43:4]

“네가 내 눈에 보배롭고 존귀하며 내가 너를 사랑하였은즉 내가 네 대신 사람들을 내어 주며 백성들이 네 생명을 대신하리니“

그냥 이쁘시다고 하십니다. 내가 정말 이뻐서가 아니라 그분의 눈에 내가 그렇게 보이신다고 하십니다. 여기에 우리들 높은 자존감의 근거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 그리고 사랑받고 있는 나! 이게 믿어지는 사람들은 쩨쩨하지 않습니다. 강하고 담대합니다. 열심히 삽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웃을 수 있습니다. 저는 이게 믿어진 사람이고 지금도 변함없이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는 사람입니다. 내가 가난할 수 있습니다. 내가 실패했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얼마든지 일어설 수 있고 나름 행복할 수 있습니다.

그분의 사랑이 내 안에 두려움을 이기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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