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로남불
내로남불
  • 김재용
  • 승인 2019.03.28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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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목회 칼럼 51

노화를 막고 싶으나 노화를 막고 불로장수를 누린 사람은 없다. 그러나 지금도 불로장생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은 많이 있다. 피부 비용을 비롯해서 건강 보조 식품과 다양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우리는 언론과 정보를 통해 알고 있다. 신병교육대 입소하였을 때 곳곳에 기록된 글귀는 “피할 수 없는 고통을 즐겨라”였다. 처음에는 어색하였으나 체득되어 고통스러울 때 마다 서로에게 격려하는 말로 나누고는 했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피할 수 없다는 마주하는 지혜가 얼마가 위대한 것인지 새삼 깨닫게 된다. 노인 목회를 위한 칼럼을 50여 주간 진행해 오면서 노인의 일상에 대해 말하고 목회에 적용하기 위해, 그리고 노인 목회를 해야 하는 젊은 교역자들은 일상적인 경험을 나누면서 학습하기 위해 글을 써 보았다. 그러면서 끝없이 도전 받는 것은 노화라는 피할 수 없는 문제를 즐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것을 거부하는 삶이 있어서 노인 목회의 어려움을 경험하게 되었다.

노화는 피할 수 없는 고통일 수 있다. 그리고 죽음은 인생이 통과해야 하는 통로이다. 그러나 이것을 강하게 거부하면 거부할수록 우리 자신이 힘들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안다. 그러나 그렇지 않는 분들이 계시니 우리는 어떻게 도울 수 있는지 조심스레 살펴보아야 한다.

고사 성어에 아전인수(我田引水)라는 말이 있다. 자기만 생각하고 자기에게 유리하게 행동하는 삶에 대해서 빗대어 말한다. 최근에는 ‘내로남불’이 있다. 내가 하면 로맨스이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말을 줄여 일컫는다. 공통적인 것은 ‘나는 되는 것이지만 너는 안 되는 것’이라는 공식을 갖고 있다. 즉, 지극히 개인주의적이며 이기적 행동이다.

예배 후에 밥상에 둘러앉아서 은빛 지혜자들과 식사를 할 때 다른 분들에게 반찬을 더 드시라고 덜어주시거나 밥을 더 퍼 주시는 분이 계셨다. 처음에는 섬김 정신이 좋아 보였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자기 혼자 밥을 더 뜨거나 반찬을 갖고 오면, 사람들이 많이 먹는다고 할까봐 누구랑 누구랑 나누어 먹게 갖고 간다는 논리로 갖고 오시는 것이었다. 실제로 자신 양 만큼 드시는 분들에게 한 숟가락, 한 젓가락 더 올려지는 것들이 불편하신 분들이 많았다. 주방 봉사자들도 뿔이 났다. 드실 분만 갖고 가면 되는데 다른 분들은 못 드시고 남기시니 오히려 음식물 쓰레기양이 늘어나고 아깝다는 반응이다. 그런데 이분이 다른 분이 드실 때면, 옆에서 많이 드신다고 핀잔을 주기도 한다.

목회 중에 젊은 선교회 내에서 비롯된 회원들 간의 문제는 조정하기가 쉽다. 서로 대화하고 오해한 것을 풀면 서로 인정하고 돕게 된다. 그런데 연세 드신 분들은 화해가 잘 되지 않아 어려움을 겪을 때가 종종 있었다. 이유가 무엇일까? 주로 두 가지로 말씀하셨는데, 자신이 지금까지 사람들에게 이렇게 대접 받으며 살아오지 않았다는 주장과 저 사람이 전에는 이렇게 말했는데 지금은 언제 그랬냐고 한다는 것이었다. 다른 분들에게 물어보고 일전의 내용을 살펴보면 기억력이 좋지 않아 외곡된 것을 사실 인 양 머리에 기록하고 살아온 경우가 있었다. 이유는 자기 편하게 해석하고 인식했기 때문이다.

원로 목사님 사모님이 계셨다. 그분은 청년부 학생들이 모자 쓰고 오면 모자 쓰고 교회 온다고 말씀하시고, 주일을 빠지면 다음에 온 청년에게 그러면 벌 받는다고 우회적으로 말씀하셨다. 그런데 정작 자신의 아들도 교회 출석을 못했으나 그런 사실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다.

우리가 성숙해 진다는 것은 타인의 삶에서 티를 발견하려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들보를 제거하는 훈련을 계속하는 것이 우선 아닐까? 아전인수, 내로남불 이런 모습으로 내 삶을 돌이켜 볼 수 있을까? 지적 노화보다 더 무서운 것은 인성의 노화, 영성의 노화일 것이다. 용납하고 사랑하셨던 예수님의 사람을 배우고 실천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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