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부연회 삼일운동백주년기념대회 강화대회
중부연회 삼일운동백주년기념대회 강화대회
  • 이길극
  • 승인 2019.03.21 22:3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19년 3월 18일(월)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강화중앙교회에서 기념예배와 용흥궁터 길 만세운동재현과 기념식과 강화삼일운동 시작 장소인 길직교회 역사기념관 기공예배가 있었고 이 자리에는 강화 삼일운동의 핵심 인물이었던 유봉진 권사의 아들 유재열 선생과 이진형목사의 후손 이두영 장로가 선조들의 삼일 만세독립운동의 뜻깊은 100주년 기념대회 자리에 행사 참가자들과 함께 하였다. 이 날 기념행사에 2000여 명이 참가하였다.

이 기념대회는 중부연회에서 2018년 11월 28일 실행부위원회에서 결정되었다.

100년 전 1919년 3월 18일은 강화읍 장터에서 서울 3월 1일 이후 지방단위로 전국 최대 규모 20,000여명이 일제에 항거하여 독립과 자유를 위하여 만세 시위를 하였다.

<2019년 중부연회 3·1운동 100주년 기념대회 조직>

▪고문 : 전명구 이춘직 고용봉 최세웅 이호문 이종복 권용각 전양철 이규학 김승현 가흥순 고신일 김상현 윤보환 (전직 감독)
▪대회장 : 박명홍 감독
▪부대회장 : 남강현 황규진 이선목 정연수 백덕기 한상일 이형재 이길극 손광필 유재구 최병재 김영순 김광문 안재홍 김정근 신인호 고현석 김장열 민경효 박찬명 김주석 박승옥 이경섭 유철현 유영종 장영철 고재석 김재근 김용헌 박의수 박동수(31개지방 감리사)
▪준비위원장 : 이길극
▪준비위원회 : 안재홍 김주석 김현기 김낙호 문영배
▪공동실무준비위원장 : 장영철 고재석 김재근 김용헌(강화 4지방 감리사)
▪실무기획위원장 : 이은용
▪공동실무준비위원회 : 이태형 김영만 신중희 박영철 류기돈 전영훈 이교직 고영덕 나재석 김유순 방정임 조혜련 김용일 사승진 한종원 류갑열 고기진 조규남 서영빈
▪진행위원장 : 조인현▪진행위원회 : 곽태권 이충호 김용학 김홍식 조창일 이종범 이승근 최영규 윤석영 최영준 박병권 문세득 서정진 김현기 최윤영 김복기 조병식 유재성 김낙호 김경덕 양인모 유영화 오지석 장석동 백정열 박경식 구자형 김홍록 문영배 이형재 전상태 박영식 김순성 김진열 조규남 최명석 박돈주 한재구 윤형모 김철호 이찬호 배영자 왕성식 이관익 이상호 신현관 정효순 이성인 맹익재 백승훈 이경복 이재숙

<1부 예배>

감리회본부에서 제작한 예배 3∙1운동100주년 기념영상이 스크린에 올려지며 시작되었다.

미문의일꾼교회 김도진 목사가 ‘한결 종’ 아홉 번 타종하였는데, 아홉 번 타종은 삼일운동 독립선언 33인 중 개신교회 16인 가운데서도 감리교회 9인을 뜻하였다.

성부와성자와 성령의 삼위일체 하나님 이름으로 준비위원장 이길극 감리사가 기독교대한감리회 중부연회 3∙1운동100주년 기념대회 개회를 선언하였다.

이후 남동서지방 안재홍 감리사의 사회로 진행되어, 국민의례, 애국가 제창, 조용한 기도, 580장 삼천리반도 금수강산 찬송을 다같이 하였다. 강화서지방 고재석 감리사의 기도, 이길극 준비위원장의 환영사, 남선교회 연합회장 신현관 장로가 마태복음 5:14∽16 성경봉독, 중부연회 사모합창단, 특별찬양, “3∙1운동과 기독교” 제하의 중부연회 박명홍 감독 설교, 강화 3∙1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 이은용 장로의 3∙1운동만세운동역사보고가 있었다. 3∙1운동100주년 감리교회의 고백과 선언의 다섯 가지 선언문을 여선교회 연합회장 정효순 장로와 청장년선교회 연합회장 이성인 권사가 낭독하였다. 삼일절 노래를 다같이 불렀으며 장로회 연합회장 이경복 장로가 만세삼창을 이끌었다. 진행위원장 조인현 연회총무가 내빈소개 및 광고를 하였다. 설교자 박명홍 감독, 강연자 이덕주 교수, 31개 지방 감리사, 준비위원장, 단체장, 등 소개하였다. 기독교관계 기자들이 참석하여 사진 촬영을 하였으며, 황규호 인천기독교총연합회 총회장과 강화삼일운동의 핵심 유봉진 권사의 아들 유재열 선생과 기념예배장소를 제공한 강화중앙교회 장영철 감리사를 소개하였다. 이번 3∙1운동100주년 기념 선물 서책 저자 강인태 목사와 기독교대한감리회 군선교회 전 총무 박종규 목사와 ‘고양지역 3∙1운동 및 고양출신 독립운동자 유적지 탐방 걷기’ 회장 및 ‘이가순 전도사 3∙1운동 기념사업회’ 회장 유재덕 목사 등이 자리하였다.

<2부 기념강연회>

강화북지방 김용헌 감리사 사회로 시작되었으며, 이길극 준비위원장이 강연자 이덕주 교수에 대하여 강화 기독교100사 등 다수 저작을 소개한 후 강연자 등단을 박수로 청중이 맞이하였다. 이덕주 교수는 이번 3∙1운동100주년 기념대회를 앞두고 강화군청 등에서 강화 3∙1운동 기념사회가 주관하는 심포지움에 여러번 강연하기도 하였었다.
강연 후에 장영철 감리사(강화중앙교회)가 식사 장소와 만세운동 재현 진행을 소상히 설멸한 후 축도로 2부 순서를 마쳤다.

<점심 시간>

강화 4개 지방에서 500명, 그 외 중부연회 27개 지방에서 500명을 예상하여 중부연회 예산으로 준비한 도시락 1000개를 강화중앙교회 내부와 바깥 교육관 등에서 강화중앙 교회 교인들의 봉사로 점심을 하였는데, 강화중앙교인들은 교회 외부에서 온 손님을 우선으로 하였으며 참가자 본인들의 자비로 점심식사한 분들도 여러분 있었다. 기념엽서 2만장을 제작하여 참가자들에게 선물하였다.

<3부 3∙1운동 재현 행사>

유봉진 권사가 백마를 타고 20,000여 명의 당시 삼일만세 운동을 인솔하는 과정을 강화중앙교회에서부터 작은 장터 이어서 큰 장터와 용흥궁터까지 태극기를 날리며 연설을 하여 인도하였다. 강화지역 초등학생과 주민들도 동참하였으며 재현 행진 중에 있었던 일경의 군중 포박, 참가자들의 구출장면을 재현하였다. 용흥궁터에서는 박명홍 감독, 도성훈 인천시교육감, 유천호 강화군수, 이은용 이사장 등이 헌화를 하였으며 이어서 진행된 용흥궁터 행사에 2∙8독립선언기념사업회 이사장 이종걸 국회의원도 참석하였다.

중부연회와 강화3∙1운동기념사업회 주관으로 국민의례, 애국가 제창, 풍물놀이와 강화동지방 참사랑교회 정세광 목사의 신앙공동체 공연이 계속되었다. 강화동지방 강화중앙교회에서 20분 정도 차량으로 이동하여 강화남지방 강화초대교회로 이동하여 4분 순서가 있었다.

<4부 순서>

1919년 3월 6일 길직교회에서 시작된 강화삼일독립만세운동이 길직교회에서 2019년 100주년 행사로 성료되었다. 강화남지방 「ㄱ자 모양 길직교회」복원 3∙1운동 역사기념관 기공예배가 오후 5시, 김재근 강화남지방 감리사 사회로 시작되어, 강화초대교회(길직교회) 18대 담임 오세주 목사 기도, 시흥남지방 문영배 장로 시편 84:4∽7 성경봉독, 강화아버지 합창단, “선조들의 역사를 통한 교훈” 제하의 중부연회 박명홍 감독 설교, 강화남지방 선교부총무 이희섭 목사 헌금기도, 헌금특송 김선영권사, 이길극 준비위원장의 강화3∙1운동만세운동 초기역사 보고, 이태형 강화초대교회 담임목사 역사기념관 건립사업보고, 조인현 중부연회 총무, 광고 및 내빈소개, 애국가 제창, 이두영장로(이진형목사 훈손)의 만세삼창(대한민국 만세), 신경하26대감독회장 축도 순서로 예배를 마쳤다. 이어서 기공식을 교회 앞뜰에서 유재소 권사가 진행하여 박명홍 감독, 유천호 군수, 이은용 이사장, 강화출신 교계지도자들 신경하 감독 대한성공회 김성수 대주교, 길직교회 역대 담임자들, 이두용 장로, 이태형 담임목사 등이 복원기공식에 참석하였다. 강화 초대교회는 그 동안 복원사업을 계획하여 추진하던 중에 강화군에서 군 사업비로 3억 원을 지원하기로 하였으며 「 ㄱ자 모양 길직교회」는 강화 삼일운동 역사의 명소로 자리하게 되었다.

<강화 3·1운동 초기 간략 기술>

1919년 삼월 초하루,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온 민족이 일어나 외친 ‘독립만세’. 서울의 3·1만세운동 소식이 강화에 전달된 것은 3월 6일. 탑골공원과 서울역 학생대연합 시위에 가담하였던 연희전문학교 학생 황도문이 독립선언서를 가슴 옷 속에 품고 고향 강화로 돌아왔다.

강화 길상면 선두교회 출신 황도문은 바로 길직교회 유봉진 권사를 찾아가 서울 상황을 전하고 강화 만세 운동을 건의하였다. 강화만세운동 논의 시작한 곳은 길직교회였다. 당시 길직교회 예배당은 남녀가 함께 예배드리기 어려운 유교사상에 따라서 ‘ㄱ’자 모양의 예배당 건물이었다. 3월 8일, 유봉진 권사는 길직교회 이진형 담임목사에게 건의, 이진형목사, 선두교회 본처전도사 황유부, 유봉진 권사 그리고 황도문 네 사람이 었다.

3월 9일 주일예배 마치자 길상지역 교회지도자들의 비밀회합을 가졌다. 10사람이 더하여 14명이 되었다. 서울 만세운동이 개성에서 3월 3일, 인천에서 3월 9일 일어나자 강화에서도 만세운동이 일어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3월 11일 모임에서 3월 18일 강화읍 장날, 강화군민 전체의 참여 만세시위운동 하기로 결정하였다. 비밀리에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인쇄 배포하고 만세 참여를 홍보하였는데, 황도문의 출석교회 선두교회에서 본처전도사 황유부가 교회 등사기로 인쇄물을 대량 만들었다. 황도문은 독립선언서와 국민회보를 인쇄하여 배포하였다.

3월 18일 오후 2시, 강화읍 장날, 2만여 군중만세시위는 서울 만세 시위 후 전국 최대 규모였다. ‘결사대장’(決死隊長) 어깨띠를 두른 유봉진 권사가 백마를 타고 만세시위 군중을 이끌었다. 그 외에도 시위 횟수가 11회, 총 참가인원은 14,000-24,000명. 부상자 3명, 체포된 98여명 체포 43명 재판회부, 수많은 가담자가 옥살이나 태형을 받았다. 만세시위 계속 이 운동을 하기 위하여 유봉진 염성오 유희철 황도문 등이 탈출하였다.

유봉진 권사는 처음엔 강화중앙교회(잠두교회) 교인이었으며, 초기 내리 마리산자락 니산학원 교사였었으며 길직교회 권사로 봉사하게 된다. 삼일운동을 주도한 후에, 마리산에서 금식 기도하던 중에 일경이 그의 부모를 체포하여 악형을 가하므로 결국 자진 출두하여 체포되었다. 염성오는 장봉도에 피신하였다가 체포되었고, 유희철은 장봉도에 피신해 있다가 강화 화도면 내리로 돌아와 피신했으나 체포되었다. 황도문만 제물포를 거쳐 제주도까지 갔다가 3년 동안 강원도 산골에 숨어 지내서 체포를 면했으며 황도문은 계속하여 독립운동을 하였다.

※ 만세시위 운동 요약

1919년 3/6 황도문이 서울 삼일운동에 참가하고 고향 강화로 돌아와 유봉진을 만나 소식을 전함

3/8 길직교회 이진형 목사관에서 유봉진 황유뷰 황도삼이 모여 만세 시위 계획

3/9 길직교회에서 길상 교인들이 모여 모의 유봉진 황유부 황도문 지도부 구성

3/11지도부 거사 계획 확정

3/11-13 황유부 집에서<독립선언서> 등 유인물 인쇄

3/14 강화읍 김유의 에게 유인물 전달

3/15 염성오 집에서 거사 계회 점검

3/16 유봉진 준문도에서 거사 참여 권유 강연

3/17 장윤백 집에서 결사대원 모임, 태극기 제작

3/18 강화읍 장날, 만세 시위 2만명 참가 63명 체포 됨

3/21-24 교동 읍내리 만세 시위 35명 체포 됨

3/27 온수리 마세 시위, 2천명 참가

4/1 송해, 하점, 양사면에서 봉하 시위

4/7 석모도에서 봉화 시위

4/8 냉정리, 인산리 등 강하 9곳에서 봉화 시위

4/11 길정리에서 만세 시위

4/13 두문리에서 만세 시위

4/22 솔정리에서 봉화 시위

강화 삼일운동 역사적 사건에도 인물과 인프라 이야기가 있습니다.

인물과 이야기는 전해오는데 그 배경이 되는 인프라, 길직교회 강화초대교회 ‘ㄱ ’자 모양 예배당이 멸실되었다가 100주년을 맞는 시간에 복원 기공예배를 드리게 되었으니, 강화 삼일운동의 시작을 여기서 보게 됩니다. 황도문의 마음속에 품은 소망과 꿈은 이루어졌습니다. 독립이 되었습니다. 교회의 일이란 살아계신 하나님의 일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교회에 모이고 시작하게 되는 겁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