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세 영웅’을 기다린다
‘난세 영웅’을 기다린다
  • 송근종
  • 승인 2019.02.16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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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사전에 의하면 ‘난세 영웅’은 “평화로울 때는 진가가 드러나지 않지만, 전쟁 따위의 위기 상황이 발생했을 때 그 진가가 드러나 그 상황을 해결하는 인물”을 말한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과 같은 이를 말한다. 이들은 하나 같이 세상이 어지러울 때 의로운 마음으로 분연히 일어나 나라를 구한 이들이다.

하지만 ‘난세 영웅’이 나타나는 것은 출세가 목적이 아니다. 백의종군일지라도 나라를 지킬 수 있다면 목숨도 아끼지 않고 던진다. 그렇기에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난세 영웅'을 따르는 또 다른 영웅들이 그치지 않는 것이다.

이런 ‘난세 영웅’들과 겉무늬만 비슷한 이들이 있다. 그들은 난세에 대의를 표명하지만 실제로는 난세를 이용하여 사익이나 자기만족을 추구한다. 기회를 엿보아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드러냄으로 스스로의 가치를 높여보고자 하는 것이다. 결국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해 영웅이 되려는 것이다.

이런 거짓 영웅들은 어떻게 분별할 수 있을까? 그 속을 다 알수는 없지만 그 주변에 몰리는 사람들을 보면 알 수 있다. 진정한 충신이 모여드는지 아니면 똑같은 기회주의자가 몰려드는지를 말이다. 혹시라도 영웅이 낙마하면 그 주변에 그들이 그대로 남아 있는지를 보면 그가 진정한 '난세 영웅'인지를 알 수 있다. 더불어 남아 있는 사람들의 진면목도 엿 볼 수 있게 된다. 위기 속에서 진실한 친구를 찾아 볼 수 있듯이 말이다.

요즘 우리 교단이나 사회 또는 여야 정당을 보면 자신이 마치 ‘난세 영웅’이나 되는 것처럼 분주한 이들을 종종 보게 된다. 자신이 선각자요 해결사인 양 목소리를 높이며 여기저기 언론에 그 이름을 노출시킨다. 자신 밖에는 문제를 해결 할 적임자가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런 지는 좀 지나봐야 아는데 말이다.

아무튼 전반적으로 혼란의 시기인 것은 분명하다. 교회든 사회이든 간에 공평과 정의에 입각하여 상식이 통할 수 있는 '난세 영웅'이 필요한 것만은 분명하다. 누구든지 믿고 따를만한 영웅이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하다는 것이다.

얼마 전 서울남연회에서 만난 선배 목사님은 주변 사람들의 강력한 권유에도 불구하고 감독 출마를 아예 생각지 않는다고 선을 그으셨다, 평신도 지도자들에게도 존경받는 그는 출마만 하면 얼마든지 감리교 최고 지도자가 될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현재 목양지가 최선이라고 돌아서는 것이다. 다만 꼭 필요한 일군이 세워지는 데 도움이 된다면 얼마든지 돕겠다는 말을 남기며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셨다.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지 않는 것, 그러나 선한 일을 위해서는 물심양면으로 돕는 것, 그래서 공동체를 더욱 공고히 세워 가는 데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헌신하는 이, 바로 그가 '난세 영웅'이 아닐까?

목회도 그렇다. 성도들은 영웅을 좋아한다. 그래서 '우리 목사님 최고'라고 자랑질을 해댄다. 그러나 그 말은 우리가 기회주의적인 영웅이 되라는 것이 아닐게다. 성도들이 진정 믿고 따를만한 그들의 영웅이 되어 달라는 말이다. 이런 영웅이 우리 주변이 많아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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