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돌보기
나를 돌보기
  • 윤미애
  • 승인 2019.01.23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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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톡 카톡’

오후 3시 20분쯤이면 어김없이 카톡 알림음이 울립니다. 마치 알람처럼. 4시 30분에 귀가하는 딸아이가 보내는 카톡이에요. 카톡의 내용은 주로 저녁 메뉴에 관한 것입니다. 오늘은 곱창이 먹고 싶다거나, 아주 매콤한 것이 먹고 싶다거나. 혹 떠오르는 음식이 없으면 “오늘 뭐 먹지?”라고 물어요.

딸은 엄마 밥을 별로 좋아하지 않고, 그 엄마는 밥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카톡을 은근히 기다립니다. 저녁 메뉴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되니까요. 그리고는 어떻게든 딸이 먹고 싶은 것으로 저녁을 준비하려고 합니다. 딸이니까요. 그걸 잘 아는 딸은 가끔 아빠에게 묻습니다. “아빠 뭐 드시고 싶어요? 내가 엄마에게 말할게요.”

전 원래 쇼핑을 좋아하지 않아요. 게다가 인터넷 쇼핑은 더합니다. 그건 더 큰 피로감을 주거든요. 그런데 아들이 롱패딩이 필요하답니다. 인터넷 쇼핑을 주로 담당하던 남편의 반응이 시큰둥하여 어쩔 수 없이 폭풍 검색에 들어갔습니다. 눈이 빠져 나갈 것만 같고, 머리가 지끈지끈 아픕니다. 속이 다 울렁거립니다. 종류는 왜 이리 많은지, 물건에 대한 평가도 너무나 다양합니다. 가격을 맞추는 것도 쉽지가 않습니다. 그 힘든 짓을 내가 하고 있습니다. 객지에서 추운 겨울을 날 아들이 부디 따뜻하게 지내면 좋겠다는 그 마음 하나로.

남편은 아이들에게 참 자상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엄마인 저와는 결이 다릅니다. 남편은 저를 이해하지 못하죠. 아이들이 원하는 것은 어떻게든 해주려고 하면서, 자신에게는 인색한 저를요. 엄마니까 그런 거라고, 그게 좋다고 말하곤 하는데...

그런데 요즈음 드는 생각, ‘그렇다면 나는 누가 돌보지?’

얼마 전, 아들 이름으로 보험회사에 의료비를 청구할 일이 있었어요. 지금까지는 남편 통장으로 입금이 되었는데 이젠 본인 통장이어야 한답니다. 아들이 성인이 되었기에 생긴 변화인 거죠. 더 이상 아들의 보호자가 될 수 없음을 깨닫는 순간입니다.

아직 부모 손 갈 데가 많지만, 아들은 이제 스스로를 돌볼 준비를 해야 합니다. 성인이 된다는 것은, 스스로 서서 자립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간다는 것을, 자신을 돌볼 줄 아는 사람이 되어간다는 것을 의미할 테니까요.

그렇다면 나를 돌본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내가 아이들을 어떻게 돌보는지를 찬찬히 생각해 봅니다. 아이들을 돌본다는 것,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보살핌을 의미하네요. 그 중 몇 가지를 추려봅니다. 올해엔 아이들을 돌보듯 그렇게 나를 돌보아주려고요.

느낌과 생각을 헤아려 주겠습니다. 무엇을 하고 싶은지 자주 묻겠습니다. 몸을 건강하고 예쁘게 잘 돌보겠습니다. 예쁜 옷도 입혀주겠습니다. 결정한 것을 후회하지 않고 지지해주겠습니다. 상처받지 않도록 보호하고, 상처받으면 위로하겠습니다. 영혼을 살피며 쉬지 않고 기도하겠습니다. 아~ 그리고 아이들이 제일 싫어하는 비교, 비교하며 자책하는 일도 삼가야겠네요.

돌아보니 나는 나를 돌보는데 참 게으른 사람이었어요. 진정한 성인이 못된 거죠. 예수님께서는 영생을 얻는 방법에 관해 묻는 이에게 하나님 사랑과 더불어 ‘자신과 같이 이웃을 사랑하기’를 명하시죠. 나를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이웃도 사랑할 수 있을 테니까요. 그래서 새해엔 진정으로 나를 돌보고 사랑하는 연습을 하려고 합니다. 품이 넉넉한 진짜 어른이 되기를 꿈꾸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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