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하필 나에게
왜 하필 나에게
  • 이구영
  • 승인 2019.01.18 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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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어떤 교회에 부흥회를 갔습니다.

첫날 안수기도를 하는데 담임목사님께서 나오시더니 저를 뒤줄 맨 끝에 계신 어떤 여자 권사님에게로 데리고 가시면서 이분을 꼭 안수 기도해 주셔야 한다고.... 간절히 기도하고 나왔는데 그날 저녁식사를 그분이 대접해 주셨습니다.

사연이 있었습니다.

나이가 60이 되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하반신 마비가 일어났습니다. 50견이 되면 팔이 안 움직이는 것처럼 다리가 마비가 되었습니다. 국내 최고의술을 자랑하는 병원들을 찾아다니면서 검사를 다 해보는데 7-8개의 병원에서는 똑같이 아무 이상 없다고, 심장도, 근육도, 뼈도 다 정상이라고! 그런데 다리는 안 움직여서 휠체어에 의지해서 살아야 하고, 매일 재활치료를 받으셔야 된답니다.

참 답답한 일입니다.

언제 그런 일이 나한테 닥칠지 모르는 불안함이 우리들에게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열심히 믿으신 분이십니다. 남편이 장로님이시고 아들도 권사님입니다.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이 내 앞에 펼쳐지기 시작한 때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나요?

왜 하필 나에게...

원치 않았던 상황이 현실이 될 때 우리는 많은 원망도 하게 되고, 죄도 생각하게 되고, 다른 사람과의 비교가운데 스스로 자괴감에 빠질때도 있습니다.

성경을 찾아보았습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하나님의 사람들, 그 믿음의 대선배들은 어떤 선택을 했을까?

첫째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원망대신 인정했다는 것입니다.

그 사실은 그냥 인정하고 받아들였습니다. 위대한 신앙인들의 특징은 원치 않는 상황에서 원망하거나 불평하거나 낙망하거나 불안해하지 않고 그 예상치 못한 상황을 그냥 받아들이는데 선수들이었습니다.

다윗은 환장할 경험, 다른 사람들이 해보지 않은 기가막힌 절망적인 경험을 합니다.

왜 하필 나에게...

한번은 집안에서 성폭력사건이 벌어졌습니다. 가해자는 암논이라는 큰 아들이고 피해자는 배다른 동생인 다말이라는 딸이었습니다. 다윗 입장에서 가해자가 아들이요 피해자가 딸입니다. 아들을 죽일 수도 없습니다. 참 답답한 지경입니다.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세월이 조금 흘러 암놈은 암논 대로 다말은 다말대로 잘 사는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다말의 오빠되는 압살롬이라는 사람이 어느 날 배다른 형 암논을 죽이고 말았습니다. 자기 여동생을 욕보였다고 형을 죽였습니다.

가해자는 둘째 아들, 피해자는 첫째 아들입니다.

아들들끼리 싸워서 한 아들이 다른 아들을 죽였습니다. 어떻게 해야 되나요? 차라리 남이 우리 아들을 죽였고, 차라리 남이 우리 딸을 성폭행했다면 복수를 하던지 용서를 하든지 어떤 대책을 세우기 쉬웠을 텐데 다윗은 어찌 해야 할 바를 몰라서 당황하고 있었습니다. 신하들의 수군거림이 들립니다. 점점 떨어져가는 지지율을 생각해 보게 됩니다. 왜 하필 이런 일이 나에게...

세월이 조금 흐르자 쿠테타가 일어났습니다.

신하 중에 한 사람이 일어서서 왕을 죽이고 자기가 왕이 되겠다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고 아끼는 아들, 죄 까지도 덮어주고 용서해 준 아들이 아버지를 죽이겠다고 사람들을 모아서 쿠테타를 일으켜서 아버지의 목에 칼을 들이대고 있었습니다.

이럴 때 어떻게 해야 됩니까?

다윗은 이런 고백을 하나님께 드린 적도 있습니다.

[시 6:2-4]

2 여호와여 내가 수척하였사오니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여호와여 나의 뼈가 떨리오니 나를 고치소서

3 나의 영혼도 매우 떨리나이다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4 여호와여 돌아와 나의 영혼을 건지시며 주의 사랑으로 나를 구원하소서

[시 6:6-8]

6 내가 탄식함으로 피곤하여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 내 요를 적시나이다

7 내 눈이 근심으로 말미암아 쇠하며 내 모든 대적으로 말미암아 어두워졌나이다

8 악을 행하는 너희는 다 나를 떠나라 여호와께서 내 울음 소리를 들으셨도다

다윗이 일단 급한 마음에 도망을 하는데 다윗을 향하여 욕을 퍼붓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시므이라는 사람은 다윗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사울이 왕이었을 때 시므이는 왕의 곁에서 부귀와 영화와 권세를 누렸습니다. 그런데 다윗왕이 등장하면서 그 좋았던 자리에서 물러나게 되었습니다.

어느날 들으니 다윗이 죽게 생겨서 성을 버리고 도망가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시므이는 너무 기뻤습니다. 자신을 내친 다윗이 망하는 것을 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시므이는 도망가는 다윗을 보려고 뛰어나갔습니다. 그리고는 다윗의 가슴에 못을 박는 소리를 외쳐댑니다.

[삼하 16:7]

이것을 현대인의 성경으로 읽으면 이렇게 됩니다.

“ 시므이는 또 다윗을 보고 저주하였다. "살인자여! 악한이여! 여기서 사라져라! 여호와께서 사울과 그 가족을 죽인 죄를 너에게 갚으셨다 “

이 욕을 들은 다윗도 마음이 아프지만 다윗의 신하들이 화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그중에 아비새라는 장군이 다윗에게 말합니다.

임금님! 저 죽은 개 만도 못한 놈이 왕을 모욕하는데 어찌 그냥 두십니까? 지금 비록 급한 상황이기는 하지만 저놈 하나 정도는 제가 충분히 목을 베어올 수 있습니다.

가서 저놈을 죽여 저 입을 다물게 허락해 주십시오..

그때 다윗이 그 분노하며 절망하는 어두움 가운데 아주 유명한 말을 합니다.

[삼하 16:10]

“ 왕이 이르되 스루야의 아들들아 내가 너희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그가 저주하는 것은 여호와께서 그에게 다윗을 저주하라 하심이니 네가 어찌 그리하였느냐 할 자가 누구겠느냐 하고 “

다윗은 이야기 합니다.

‘ 그냥 내 버려두어라! 저 사람이 저렇게 저주를 하는 것이 혹시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를 저주하라 명하신 것이라면 어떻게 하겠느냐’ 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욕 먹을 짓을 했고, 불행한 일을 당할 만한 죄를 지었으니 이렇게 된 것 아니겠느냐면서 다윗은 그 아픔과 슬픔의 시기를 회개의 날들도 채우고 있습니다.

믿음의 선배들은 원치 않는 상황에서 그 상황에 대한 평가나 원망이전에 일단 그 상황을 인정하고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여기에는 분명히 하나님의 뜻이 있다!! 고 믿었습니다.

이해되지 않고 받아들이기 힘든 내 상황가운데서 일단은 신앙인답게, 하나님의 자녀답게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며 하나님을 인정하는 사람들!

[롬 8:28]

“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

둘째로, 이 인정위에서 그들은 그 기간을 침묵, 기도, 회개 등의 시간으로 만들어가고 있었습니다.

욥도, 요셉도 마찬가지입니다.

살다보면 왜 하필 나에게.... 원망의 사건들이 충분히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때 나는 어떻게 합니까?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하나님을 인정할 수 있습니까?

그리고 그 아픔과 어두움의 시간 속에서 침묵, 기도, 회개와 같은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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