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는 기술이 아닌 예술이라야 한다.
목회는 기술이 아닌 예술이라야 한다.
  • 민돈원
  • 승인 2019.01.15 09: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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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한 속회인도자가 그 속에 고령인 분의 가정을 심방했으면 좋겠다는 제안을 받고 그 인도자와 함께 저녁 무렵 방문했다. 연세가 94세가 된 분이었다. 잠시 병원에 입원했다가 퇴원하여 집에서 함께 모시고 있는 장남인 권사님(76)과 집사님(72)부부가 줄곧 지금까지 뒷바라지를 하고 있다. 예배를 마친 후 이야기를 나누는 가운데 쉽지 않은 며느리 되는 집사님의 노모를 봉양하는 모습이 희생적임을 듣게 되었다.

거동이 불편하기에 병원에서 사용하는 침상을 렌탈하여 그 위에서 생활하고 있다. 그러니 항상 옆에 대기하여 시중을 들어야 하는 상황이다. 마치 병원 침상을 집으로 옮겨 놓은 것과 같았다. 하루에 식사를 7번씩이나 하는데 죽을 드신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렇게 요구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자녀들이 와서 용돈을 그 노모께서 받으면 며느리에게는 한 푼도 주지 않고 몽땅 아드님에게 준다고 한다. 전통적인 시어머니 입장에서는 며느리가 하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우리나라에 예부터 남아있는 정서중의 하나이다. 그러면서도 집사님은 아직은 이렇게 모시고 싶다는 말씀에 무언가 가슴에 그 분에 대한 진한 감동이 밀려옴을 느낀다.

이 집사님은 인상이 참으로 밝은 분이다. 그러나 사실 몸이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다. 무릎 수술 한 후 아직도 완치가 되지 않은 상태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시중을 들고 있다. 이런 세월을 수 십 년간 해 온 집사님의 인생 여정속에는 아마도 내가 아직 들어보지 못한 적잖은 소설 같은 스토리들이 묻혀 있을 것으로 충분히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말하자면 전통적으로 옛날 우리 어머니들이 겪어 온 말로 표현되지 않은 숱한 애환과 쌓인 한들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 이런 일을 한 두 해, 또는 일 이 십년이 아닌 수 십 년을 한결같이 받들어 섬겨온 집사님과 같은 인생 여정이 한 편의 드라마처럼 다가왔다. 이것은 사랑의 기술이 아닌 사랑의 예술이다. 라는 고백이 내 마음 구석에서 터져 나왔다. 그 몸으로 직접 부대끼고 희노애락의 지나온 과정들의 파노라마가 기가 막힌 사연들이 아니었겠나 하는 생각 때문에서다.

기술 (技術,technology, skill, technique)이란 어떤 원리나 지식을 자연적 대상에 적용하여 인간 생활에 유용하도록 만드는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수단이고, 예술(藝術,art)이란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창조하는 일에 목적을 두고 작품을 제작하는 모든 인간 활동과 그 산물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따라서 사랑은 고도의 학문을 쌓은 스펙이나 숙련된 기교와 테크닉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은 자신의 몸을 내 주고 가장 선한 행위를 구현해 내고 사람들속에서 살아내는 극치의 표현이라는 점에서 앞에서 예술이라고 표현했다. 지진 현장에 100억을 기부한 어떤 분이 ‘돈을 버는 것은 기술이나, 그 돈을 잘 쓰는 것은 예술이다.’라고 한 말이 마음에 와 닿는다.

사진작가는 많아도 예술작품을 만들어 내는 사람은 극소수이다. 음악가는 많지만 그 음악을 예술로 승화해 내서 극찬받기까지는 쉽지 않은 일이다. 문학이 그렇고 미술이 그렇고 각종 공연활동이 그러하며 그 외 모든 분야가 다 그렇지 않나 싶다. 어느 크리스챤 성구를 만드는 성구사의 경영철학 역시 마음에 쏙 들어온다.

‘가구는 나무로 만들지만 성구는 기도로 만듭니다.’

나는 목회자로서 이번 심방을 다녀오면서 다시 새로운 사실 하나를 깨닫게 된다.

그건 목회가 단지 자본주의 사회의 생존경쟁의 일환으로 여긴 나머지 스킬과 테크닉 일변도의 일방통행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결국 한 영혼을 귀중히 여기고 구원의 대상으로 보는 창의적이고 하나님 나라의 예술작품을 이루어 내기가 어렵겠구나 하는 생각이었다. 이는 마치 의사가 환자를 볼 때나 변호사가 소송인이 의뢰해 올 때 돈으로 평가하게 되는 순간부터 그동안 쌓아 온 지식이 욕망의 도구로 전락될 수밖에 없다는 개념과 같은 동일선상에 머물러 지탄의 대상이 되겠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런 내면의 소리는 더 이상 설교이든 목양 전반에 있어서든 기교와 테크닉을 발달시켜 내 욕망을 채우려는 목회기술자로 전락해서는 안 된다는 양심의 고발을 듣는 것만 같았다. 그 대신 목회에 전문적 소양을 갖되 한 영혼을 최고의 걸작품 즉, 영원한 생명을 지닌 천국의 예술작으로 인도하는 사명에 충실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그것을 내 가까운 곳에서 찾았다. 수 십 년 묵묵히 노모를 모시며 온갖 아픔과 고통을 억제하느라 다 말 하지 못하고 살아온 그 집사님의 인생 여정을 잠시 들여다보면서 진정 내가 무엇을 위해 그들을 찾아가고 만나야 하는지 주님이 찾게 해 주시는 가치가 들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오늘 그 병약한 분을 위해 심방을 다녀오면서 도리어 그 집사님이 내게 준 교훈이고 가르침은 다음과 같았다.

목회는 기술이 아니라 예술이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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