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멘토 모리
메멘토 모리
  • 윤미애
  • 승인 2019.01.09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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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손 좀 꽉 잡아봐.”

할아버지의 손을 잡으며 할머니가 말씀하십니다. 할머니의 마음이 그 말에 고스란히 담겨 깊은 여운을 줍니다. 할아버지는 지금 폐암으로 호스피스 병동에 누워계시거든요. 60년 넘게 함께 살아온 팔십대 후반의 노부부, 세월의 무게인가 봅니다. 할머니의 작은 말, 행동 하나하나에 깊은 정이 묻어납니다.

“그래도 오늘은 눈도 뜨네.”라며 좋아하십니다. 밥도 조금 드신다는 간병인의 말이 위로가 되는지 표정이 좋아지십니다. “이렇게 아무 말도 안 하고 눈도 안 뜨고, 그러면 나 이제 안 올 거야.”라는 애교 섞인 협박은 젊은 아내의 것과 닮아있습니다.

두 분의 모습을 보는 제 눈가가 촉촉하게 젖어갑니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여러 가지 감정이 오르락내리락 합니다. 죽음 앞에서 우리는 모두 솔직해지고 겸허해지고 간절해지는 것 같아요. 죽음이라는 절대권력 앞에서.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라는 말이 있어요. 라틴어로 ‘죽음을 기억하라.’ 혹은 ‘너는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라는 뜻이에요. 아주 오래 전 로마에서 행하던 풍습에서 유래한 말이랍니다.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온 장군을 위한 시가행진, 행렬 맨 끝에서 노예들이 외치던 소리가 있었으니 그게 바로 ‘메멘토 모리’죠. 승리로 우쭐할 수 있는 순간, 겸손을 일깨워주는 소리, ‘죽음을 기억하라.’

죽음을 기억한다는 것, 그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장례식에 다녀오면 마음이 숙연해집니다. 차분해집니다. 삶에 대한 태도를 새롭게 합니다. 그건 아마 죽음 그것이 곧 나의 일임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 아닐까요?

전도서의 말씀이 딱 들어맞습니다.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모든 사람의 끝이 이와 같이 됨이라. 산 자는 이것을 그의 마음에 둘지어다.’ (전도서 7:2)

허나 ‘사람의 끝’을 기억하며 산다는 것이 쉽지가 않습니다. 장례식에 가서 잠시 뿐, 잊어버리기 일쑤입니다. 하여튼 저는 그러합니다.

그런데 저만 그런 것 같지는 않아요. 어떤 사람들은 죽음이 없는 듯이 살아갑니다. 어떤 사람들은 어차피 죽을 유한한 존재라며 허무하게 삶을 보내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죽음 이후의 삶에만 관심을 집중하며 살아갑니다.

잠시 이런 생각을 해 보았어요.

‘영적인 존재인 우리를 굳이 이 땅에 보내신 이유는 무엇일까?’

‘몸을 입고 살며 경험할 그 무엇을 선물하려 하신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천국을 기억하며 지금을 잘 살아야하는 것은 아닐까?’

“죽음이 억압당하면 시간은 죽게 된다.” 독일의 영성가 안셀름 그륀 신부의 말입니다. 역설적이게도 죽음이 살아나야 시간이 살아나는 것이지요. 생명과 죽음이 반대말처럼 들리지만, 생명을 더욱 생생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바로 죽음인거죠.

시간이, 삶이 무한하지 않음을 기억합니다. 죽음을 통해 생명을, 삶을 새롭게 바라봅니다. 꿈꾸는 것을 멈추고 무엇인가 할 일이 있다면 시작해야겠어요. 몸을 입은 내가 할 수 있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랑의 일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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