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해와 요단강
홍해와 요단강
  • 이구영
  • 승인 2018.12.21 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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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굽을 떠나서 가나안에 들어가기 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은 두 개의 큰 물을 건넜습니다.

홍해와 요단강입니다.

그런데 이 두 물을 건너는 방법에 큰 차이가 있었습니다.

우선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건너는데 그들이 한 일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준비하셨습니다.

홍해를 건너지 않을까봐 미리 애굽의 군사들을 동원하셔서 그들을 쫓아오게 하셨습니다.

죽어라고 도망해야 했습니다. 절대로 후퇴는 없었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뛰었는데 앞에 홍해가 나타났습니다. 절망도 이런 절망이 없었습니다.

절망은 곧 원망으로 바뀌었습니다.

모세에 대한 원망, 하나님에 대한 원망!

그런 그들이 탄식이 하늘을 찌를 때 하나님께서는 홍해를 가르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한 일은 없습니다.

그래서 홍해를 은혜의 바다라고 합니다.

은혜라는 말은 개역개정판 성경에는 291번, 개역한글판 성경에는 276번, 쉬운성경에는 234번 정도 나오는 말입니다.

은혜라는 말은 창세기에서 요한계시록 까지 고르게 퍼져있는 단어입니다.

레위기 / 역대상 / 아가 / 예레미야 애가 / 에스겔 / 호세아 / 아모스 / 오바댜 / 미가 / 나훔 / 하박국 / 스바냐 / 학개 / 마태복음 / 마가복음 / 요한 1서 / 요한 3서 / 에는 안 나옵니다.

66권의 책 중에서 17권에는 안 나오고, 49권에는 나오는 단어가 은혜입니다.

성경이 무척 강조하고 있는 단어 은혜!!

구약의 대표적 인물 다윗과 신약의 대표적 인물 바울이 공통적으로 강조한 단어가 은혜입니다. 은혜를 나타내는 히브리어에는 몇 가지 뜻이 있는데 두 가지만 설명을 해 드립니다.

- 왕들, 혹은 강한 자가 받을 것을 생각하지 않고 약자에게 무조건 적으로 베푸는 따뜻한 마음

저 사람 때문이 아나라 베푸는 이의 자유의지가 강조되는 단어입니다.

- 혼나야 되는데 용서가 되는 것, 이 용서가 그 사람이 불쌍하고 의로와서가 아니라, 용서해주는

사람이 사랑이 많아서 용서가 되는 것. 그것을 은혜라고 표현합니다.

은혜를 나타내는 헬라어는 카리스 인데 이 말은 ‘기뻐하다’는 의미를 가진 동사 ‘카이로’에서 유래됩니다. 흔히 카리스는 기쁨과 쾌락을 가져다 주거나 남의 호의를 얻을 수 있는 어떤 행위를 표현하는 의미이었습니다.

- 죄는 내가 지었는데 벌을 그분이 대신 받으신 것을 은혜라고 합니다.

- 가난하게 태어난 것은 난데, 가난은 그분이 짊어지시고 나에게 부유함을 주신 것

- 무지하게, 연약하게 태어난 것은 난데,,

그분이 기쁨으로 나에게 지혜와 강건함을 주시는 것이 은혜입니다.

- 죄로 인해 지옥가게 생긴 것은 난데, 당신이 대신 그곳의 문을 닫아버리시고 나를 천국으로 밀 어 올리신 것이지요. 이런 것들을 은혜라고 합니다.

갚을 수도 없는데 거저 받은 선물! 은혜입니다.

그런데 요단강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홍해를 건넌 후 40년을 광야에서 살아왔습니다.

전쟁에서 수도 없이 많이 이겼습니다.

물이 써서 먹지도 못할 만큼 나쁜 물이었는데 모세가 나무 가지를 던져 넣자 물이 달아지는 것도 경험했습니다.

만나가 매일 내려왔습니다.

반석에서 엄청난 양의 물이 나오는 것도 보았습니다.

그 속에서 그들은 하나님을 향한 믿음!

하나님에 대한 절대의존의 감정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별것 아니었는데 서서히 믿음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게 되었습니다.

힘든 순간, 어려운 순간 기도라는 무기를 사용하게 되었고, 그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과 가까워지기도 했습니다.

이제는 이유식이나 미음 혹은 죽을 먹는 사람들이 아니라 고기도 씹어 먹을 수 있을 만한 신앙의 성인들이 되었습니다.

신앙생활은 문제가 없이 편안한 삶이 아닙니다.

신앙생활은 나는 가만히 있고 하나님께서 홍해를 가르심같이 만병통치약을 내려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살아 계심음 믿고, 그분의 사랑을 믿는 사람들이 악하고 험한 세상을 믿음을 사용해서 살아내는 과정입니다.

문제없는 인생이 좋은 인생이 아니라 문제가 있어도 그 문제 앞에 포기하지 않고 그 문제를 하나 하나 풀어가며 즐기는 것이 인생입니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은 40년의 세월을 지내면서 믿음위에 믿음이 쌓이고 또 믿음위에 믿음이 쌓여서 요단강 앞에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그때는 곡식 거두는 시기이었기에 요단강 언덕까지 물이 차 올라있었습니다.

이 강을 건너야 가나안에 들어가는데 강을 건널 수 있는 배 한척이 없었습니다.

200만 명과 수많은 짐승들이 있습니다.

10명이 탈 수 있는 나룻배 20만 척이 있어야 합니다.

100명이 탈 수 있는 큰 여객선 2만 척이 있어야 건널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강을 건넌 때는 보리를 수확하는 시기이므로 3월이나 4월로서 봄이었습니다.

요단강은 평상시에는 폭이 약 27-30m이며 깊이는 약 1-3m이지만 봄에 늦은 비가 내리면 요단강 하류부근은 강물이 넘쳐 홍수를 이루게 되어 그 폭과 깊이는 더해지고 급류를 이룹니다.

물론 이때 강을 건너기는 불가능합니다.

바로 그때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에 도착합니다.

30미터 폭이 40미터 50미터로 불어나 있고 급류가 흐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십니다.

[수 3:8]

“ 너는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요단 물 가에 이르거든 요단에 들어서라 하라 “

그냥 들어가라고 하십니다.

너희가 이제 은혜가 아니라 믿음으로!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마음으로 흐르는 그 물에 네 발을 들여 놓으라고 하십니다.

은혜로 홍해를 건너서 40년 동안 믿음을 키운 바로 그 사람들이 요단강에 발을 들여 놓습니다

싫다는 사람 하나 없이 제사장들을 중심으로 일치된 순종으로 요단강으로 들어갑니다.

이미 그들은 충분히 믿음을 키웠습니다.

죽어도 좋았습니다.

내가 돈을 벌었다 안 벌었다. 내가 이겼다 졌다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순종 했느냐? 안 했느냐가 중요한 기준이 됨을 그들은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그게 믿음의 힘이고 그게 40년 동안 그들이 길러온 내공이었습니다.

구원은 은혜로 받는 거 맞습니다.

그러나 은혜로 구원받은 우리는 이제 믿음으로 힘차게 삶을 살아내야 합니다.

한 계단 한 계단 믿음의 계단을 올라야 합니다.

그래야 요단강을 건널 수 있는 믿음에까지 도달하게 됩니다.

이것을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엡 2:8]

“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

은혜와 믿음으로 구원의 길, 행복의 길을 이어가게 되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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