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가 되고 싶다
부자가 되고 싶다
  • 이구영
  • 승인 2018.12.07 07: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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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이 미덕이냐? 아닙니다.

기독교인은 가난해야 되냐?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이 넉넉하게 살면서 풍성한 중에 더 많은 것들로 구제와 선교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성경에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이 이 땅에 살면서 부유하게 살 수 있는 많은 방법들을 가르쳐주셨습니다.

가. 믿음입니다.

그중에 하나가 난 부자로 살게 될 것이라는 것을 믿으라고 말씀하십니다.

목회 초기에 어렵게, 어렵게 12인승 그레이스를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사정해서 목돈 조금 만들 어서 샀는데 보험료를 못 내었습니다.

그래서 차를 세워 놓고 운행을 못하고 있는데 속이 상했던 적이 있습니다.

왜 가난해서 차도 못 끌고 다니고, 애들 분유도 못 사주고 이래 살아야 하나...

감기에 걸리면 병원에도 못가고 보리차 끓여 먹고 콩나물국 매콤하게 끓여서 먹고 사는데,

어느 날은 또 아파서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30이 넘은 나이에 돈이 없어서 병원비도 못내고.. 뭐 인생이 이러냐?

늘 누군가에게 신세를 져야 살아가던 때 부자는 아니더라도 남 신세 안지고는 살고 싶었습니다. 그때 눈에 들어온 말씀이 하나 있습니다. 믿어졌습니다. 믿어야만 했습니다. 절박했습니다.

[고후 8:9]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

이 말씀이 믿어졌습니다.

아하! 내가 믿음이 없어서 가난하구나!

내가 가져야 될 믿음 가운데 하나가 뭐냐?

심령부흥이 일어나면서 믿음이 생기는데 내가 결코 가난하게 살 사람이 아니라 부자로 살 운명 임이 믿어졌습니다.

물려받은 것 없고, 특별한 기술도 아직 없고 실력도 대단하지는 않지만 이미 예수님께서 내 가난의 몹쓸 짐을 지시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 내 가난의 문제를 해결하시고 부유하게 살도록 작정하고 계심이 믿어졌습니다.

그래서 선포했습니다.

나는 부유하게 살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부유하게 살 것이 믿어지니까 더 열심히 기도해야 했고, 더 열심히 부지런히 살아야 했습니다.

가난이 싫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려는 복을 놓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부자가 되리라! 하셨으니 부자가 되니라! 라는 고백을 하고 싶었습니다.

나. 십일조 생활입니다.

말씀이 믿어졌습니다.

[말 3:10]

“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보라 “

얼마나 자신이 있으시면 하나님께서 시험해 보라고 까지 하셨을까요?

틀림 없다고 하십니다. 온전한 십일조! 의무감에서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넉넉하게, 계산하지 말고 모든 것이 주께로부터 왔으니까 자원하는 마음으로 감사함으로 늘 십일조보다 더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없는 살림에 십일조 상당히 부담스럽습니다. 그렇지만 드렸습니다.

청약도 포기하고, 적금, 보험 다 포기하고 십일조를 드렸습니다. 참 묘한 일들이 생겼습니다.

갑자기 들어가던 돈들이 안 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사고를 막아주셨습니다.

큰 돈 들어갈 일이 없어지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늘어나는 만큼 수입도 더 늘어났습니다.

다. 십의 구에 대한 현명한 사용입니다.

경제부흥의 세 번째 요소는 십의 구에 대한 바른 사용입니다.

십일조를 했다고 부유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십일조도 중요하지만 십의 구도 중요합니다.

여기에서 꼭 필요한 것이 청지기 신앙입니다. 맡은자의 삶!

세상의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이고 나는 맡아 관리하는 자입니다.

그래서 더 절약해야 하고 주님의 뜻에 맞게 돈을 사용해야 했습니다.

소유욕이 크면 죄가 됩니다.

나는 맡은자 답게 열심히 충성스럽게 사용하다가 가면 됩니다.

두달란트 맡은 자도, 다섯 달란트 맡은 자도, 한 달란트 맡은 자도 다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흔히들 말합니다.

십일조는 하나님의 소유권을 인정하는 외적인 표현이요, 구원받은 사람들의 고백입니다.

내 모든 소유가 하나님의 것이라고 하는 신앙의 고백이 십일조로 드러납니다.

어쩌면 십일조는 하나님을 인정하는 행위이고, 하나님께 경외를 표현하는 방법입니다.

구원과 관계가 있습니다.

반면 십의구조는 내가 청지기임을 고백하는 방법입니다.

내 것이 아니기에 헛되게 쓸 수 없습니다.

꼭 필요한 생활비를 쓰되 낭비나 헛된데 죄를 짓는데 사용하지 않습니다.

말씀이 이루어지기 시작합니다.

되리라! 의 말씀이 되니라! 의 고백으로 변했습니다.

부유함의 은사에 대한 믿음의 고백이 필요합니다.

십일조도 물론 정성껏 드려야 하지만, 십의구조에 대한 청지기적 사용도 중요합니다.

나는 과거보다, 부모님 시절보다 더 부유합니까?

우리의 자녀들에게도 이 비밀을 가르쳐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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