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두 사람의 승려
내가 만난 두 사람의 승려
  • 민돈원
  • 승인 2018.11.20 09: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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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전쯤으로 기억되는 진주에서의 목회 여정 중에 그리 흔치 않은 일을 경험했다. 그것은 한 달에 한 번 병원환자들을 방문하여 말씀을 전하고 환자들을 위해 기도해 주는 사역이었다. 그날도 가는 날이어서 병원에 갔는데 승려 한 사람이 환자예배에 참석한 것이다.

설교 후 안수기도까지 해 주었다. 그랬더니 자기 명함을 건네는데 김세근이란 이름과 함께 법명이 기록되어 있었다. 나는 그에게 ‘당신은 앞으로 세상에 뿌리를 둔 세근(世根)이라 부르지 말고 오늘부터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뿌리를 내리고 살라.’ 라고 하는 뜻에서 김신근(金信根)이란 새 이름을 지어 주었더니 흔쾌히 그리하겠다고 해서 이후 그렇게 이름을 불렀다.

그 다음 주에 그는 교회 예배에 잠시 출석하게 되었다. 종종 술을 먹은 날에는 나에게 전화를 하곤 하면서 자기 일부 사정을 털어놓기도 하는 등 한동안 친분을 유지했다. 그런 그가 어느 날 갑자기 소식이 끊겼다. 그런데 몇 날이 지났을까 부산에 있는 어느 병원 직원으로부터 전화를 받게 되었다. ‘김신근씨 아시죠?’ 라고 묻는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가 아파서 병원에 입원했는데 병원비 얼마가 나왔는데 내 이름과 교회를 알려주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황당한 전화이긴 했지만 한편으로 생각해 보니 한 영혼, 그것도 흔치 않는 승려와의 만남은 예수님 믿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지 않을 수 없었다. 더욱이 그가 목사에게 이런 부탁을 할 수 있다는 게 뻔뻔하긴 하지만 고마운 마음이 든 것은 그래도 목사가 자기를 도와줄 수 있다고 해서 나를 찾은 것을 좋게 보았다. 그래서 직원에게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고 했더니 반반씩 부담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그 병원비를 송금한 적이 있다.

한편 최근 자료를 검색하던 중 유 튜브영상에 떠도는 의외 영상을 본 적이 있다. 방송에 인기스타가 되어 척척박사처럼 물음에 답을 풀어내는 모 승려에게 인생 상담을 하는 경우이다. 여기에는 교회를 다니는 기독교인마저 신앙적인 상담까지 그에게 묻는 그런 영상이었다. 그는 놀랍게도 이런저런 인문학적인 접근을 나름대로 제시하면서 기독교인들에게는 맞춤형으로 반드시 성경 몇 구절을 인용하여 답변해 주는 모습을 보면서 일반 대중들이 모인 강좌에 일부 기독교인들이 신앙 문제를 타종교 인기스타를 통해 대리만족 얻으려 하는 것 같아 씁쓸함을 금할 길 없었다.

결국 주님의 양들이 인생문제로 갈등할 때 해결의 실마리를 자신의 담임목사에게 찾아가 상담과 권면을 받는 것이 아니라 어떤 사람들은 언제든지 타종교인중의 인기스타를 통해서 자신의 인생 고픔을 채우고자 하는 기독인들도 있다는 사실에 목회자의 책임이 크다고 여겨져 어깨가 한층 더 무거워진다.

승려가 성경을 적재적소에 인용하여 상담의 재료로 삼기위해 그들도 성경을 읽고 있다는 노력만큼은 긍정적인 측면에서 환영할만하다. 다만 성경을 그들의 필요를 위한 상담재료로 이용하기에 그리 달갑지만은 않아 보인다.

그런데 오늘 또 다른 재미나는 광경 한 장면을 목격했다. M. Div총동문회 총회 참석차 서울을 다녀오는 중이었다. 전철로 귀가하는 중에 도착 직전 승복을 입은 남성이 스마트 폰을 이어폰을 착용 않고 보고 있는데 매우 낯익은 성경말씀이 들려와 가까이 다가가 쳐다보았다. 놀랍게도 그것은 요한계시록 19장11절부터 나오는 말씀이었고 그 본문을 중심한 설교를 보고 있던 것이 아닌가! 하도 어이가 없어서 물었다.

‘어떻게 목사님의 설교를 보세요?’

그의 답변이다.

‘여러 종교 두루 다 알아야죠...’

나와 그는 더 이상 대화가 이루어지지 못했다. 저녁시간이고 도착역에 내려 집에 가기 바빴기 때문이 핑계에 지나지 않은 이유였다.

내리고 나 돌이켜보니 한 두 마디로 짧게 끝내 버린 것이 무척 후회스럽다.

좀 늦게 귀가하더라도 그 승려에게 그런 계시록 설교를 듣게 된 동기를 좀 더 이야기 나누어 보아야 하는 건데...

내 호주머니에 넣어 둔 복음이 잘 제시된 티슈 전도용품으로 복음을 전했어야 했는데...

그리고 나아가 기왕 배우려면 우리교회 예배도 초청할 테니 와서 배우라고 말을 건넸어야 하는 건데...

하는 못내 아쉬움이 지금도 남아있다.

이에 쉰들러 리스트에 나오는 명대사의 장면이 떠오른다

“왜 이 금 뱃지를 팔지 못했지. 최소한 한 명은 더 구할 수 있었을텐데...”

이와 함께 유대인들이 쉰들러에게 선물한 반지에 새겨 준 ‘누구든지 한 사람의 생명을 구하면 그는 곧 세상을 구하는 것이다’(Whoever saves one life, saves the world entire)라는 글귀를 되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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