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취임식 격려사가 남긴 여운?
어느 취임식 격려사가 남긴 여운?
  • 민돈원
  • 승인 2018.11.13 09: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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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를 하는 분들이라면 누구랄 것도 없이 교회가 평안하고 건강하게 성장하는 것은 물론, 성도들이 큰 은혜와 복을 받아 성경적 세계관을 가지고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실천하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최고의 소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러기에 할 수만 있으면 영적으로 능력 있고 실력 있는 분들을 모셔서 믿음의 공동체가 함께 그 은혜를 나누었으면 하는 것이 목회자의 심정입니다. 이에 수년 전 대형교회를 담임하고 있다는 외적존재감보다 영성과 지성을 고루 갖춘 은혜가 넘치는 분으로서 성령의 기름 부으시는 임재의 역사가 강하게 나타나는 목사님과 이 방면에 나 역시 매우 관심이 많았기에 친분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후 그 목사님에게 주신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가 나와 우리 성도들에게도 부어지기를 원해 부흥회에 초청을 하게 되었습니다.

집회기간 내내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뜨거운 성령체험의 역사가 있었고 그 목사님도 우리교회 열기에 감동하여 몇 주 후 그 교회 주일 저녁 설교에 초청받아 대형버스 한 대로 다녀 온 좋은 기억이 있습니다. 그리고 평소 목회 고수로 여겨 교분을 가끔 나누기도 했고 지지난 총회 회기 때는 그 연회 수장을 거친 전직 감독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번 주 최근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서울 남 연회 감독 취임식에 격려사차 참석하여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감리교회는 감독제다.

감독이 넘어지면 우리도 넘어지고,
감독이 망가지면 우리도 망가지게 되고
감독이 찢기면 우리가 찢기는 것과 같다....'

이 말을 접하는 순간 감독의 프레임으로 감리회를 보는 것 같은 안타까움이 듭니다. 오랜 감독선거 과정에서 펼쳐지는 보고 듣고 하는 적지 않은 불편한 진실들을 여전히 청산하지 못한 채 그 한계성을 드러내고 있는 감리회 현실입니다. 게다가 이번 경우는 목회자의 지도자로서의 심각한 사회문제까지 걸러지지 않은 감독의 자격여부가 총회석상에서 큰 쟁점사안이었으나 결국 다음날 말과 다른 행보를 함으로써 무마된 것처럼 석연치 않은 미제로 남아 있는 상태입니다.

이런 형국(形局)에 감독의 실존적 위치가 주장하는 자리는 아닐진대 자숙보다는 최근 감독자격에 대한 원성과 그 위상의 실추를 겨냥한 듯 그 누군가에게 책임을 돌리려는 어조와 그 신분을 착각하고 있다는 씁쓸한 인상-감리회 구성원들이 마치 감독을 위해 존재해야 하는 것처럼- 의여운을 못내 떨쳐 버릴 수 없게 만들고 있습니다.

뒤돌아 보건대 감독이 없었더라면 있지 않았을 감리회의 지나온 십여 년간 지속되어 오는 동일한 이 고통스런 자격론 시비의 현실을 인지능력 결핍으로 잊으셨나 하는 기우마저 들게 합니다. 깨어있는 시민의식보다도 더 우위에 서서 세상을 향해 위로부터 주신 엑수시아의 권세로써 하늘의 대의(大義)를 위해 선포해야 할 영혼의 파수꾼인데 말입니다.

이 시대 최후 양심으로서 그리스도인이 외쳐야 할 복음이 있습니까?

목회자로서 양보할 수 없고 굽힐 수 없는 생명이상의 존재양식(보루)은 무엇입니까?

감리회 목사인 우리가 따라야 할 감리회의 뚜렷한 정신가치는 어떤 것입니까?

그러기에 적어도 위에 언급한 그의 격려사 일부를 책임을 통감하는 마음으로 이렇게 바꾸어야 적합한 표현이라고 여겨 옮겨 봅니다.

감독이 넘어졌기에 감리회가 넘어져 버렸고
감독이 망가졌기에 감리회가 망가져 가고 있으며
감독이 찢어졌기에 감리회 구성원들이 찢어져 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라도 멸사봉공(滅私奉公)의 정신으로 감리회를 세울 자가 필요합니다.

더 망가지기 전 새롭게 보수할 할 자가 필요합니다.
찢어진 마음을 봉합할 진정한 치유자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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