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 인생의 두 길(마 7:13~14)
45. 인생의 두 길(마 7:13~14)
  • 주성호
  • 승인 2018.11.05 07:1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앞의 12절에서 황금률로 인간이 이웃과의 관계에서 지녀야 하는 가장 기본적인 행동원리를 제시하신 예수께서는, 오늘 본문에서 인간의 삶의 특성을 두 가지 길로 제시하셨다. 성경에는 대조적인 두 가지에 대한 교훈이 많다. 특히 마태복음 7장에서만도 두 문(넓은 문, 좁은 문), 두 길(넓은 길, 좁은 길), 두 나무(좋은 나무, 나쁜 나무), 두 집(반석, 모래)의 교훈으로 인생의 두 길을 제시하고 있다. 둘 중에서 어느 것을 선택할 것인가 하는 것은 자유롭게 할 수 있으나 각각의 결과에 대해서는 책임을 져야 하고 결코 그것을 회피할 수 없도록 되어 있다. 성도들은 힘은 돌고 때로는 외로워도 좁은 문과 좁은 길을 택한 사람들이고 꾸준히 그 길을 가야만 생명 즉 영생의 길로 인도된다. 누구든지 평안과 세상 욕구를 추구하게 되는 넓은 문과 넓은 길을 택해 가면 결과는 멸망뿐이다.

첫째: 통과해야 할 문

1) 좁은 생명의 문

이 세상에는 기독교보다 포용력이 있는 종교는 없다. 어떤 사람까지도 포용하는 넓은 아량이 있다. 기독교가 취하고 있는 개념 중에서 무한의 영력으로까지 확장되지 않는 것은 하나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는 독선적이요 교회의 문은 누구에게나 개방되어 있지 않다는 비난을 받는다. 아무리 사랑을 부르짖어도 쉽게 귀 기울이지 않고 예수님을 믿지 않는 이유는 도덕적인 면에서도 불편하며 악행을 결코 묵과하지 않기 때문이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야 한다. 좁은 문으로 들어간다 함은 예수님을 믿으려면 자존심도 버려야 하고 세상 욕구(육, 물질, 명예 등)는 물론 자기만을 사랑하는 이기심마저도 버리고 입문하되 겸손으로 통과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선 문이 좁기 때문에 군더더기를 가지고 통과할 수 없다. 물론 이것이 고행을 통해서만 구원 얻을 수 있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다만 그리스도를 따르기 위해서는 세상 사람들과 같은 편안만을 추구하는 생활이 아닌 고난의 길을 걸어야 하며 힘들어도 성결의 생활을 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눅 13:24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고 했다. 좁은 문을 통과하려면 때때로 고독과 고난을 경험하게 되지만 생명의 문을 거치게 되는 것이고 영생의 축복을 받게 된다.

2) 넓은 멸망의 문

위에서 말한 좁은 문과는 정반대의 모습이 전개된다. 무엇이든지 다 가지고 들어갈 수 있고 자유와 평안이 보장된 문이다. 그러므로 많은 사람들이 통과하는 문인고로 큰 노력 없이도 통과할 수 있고 자제할 이유도 없다. 많은 사람들이 들어가고 있다고 해서 함께 휩쓸려 들어가면 안 된다. 자신을 포기하지도 않고 희생할 필요도 없으므로 세상에 사는 동안 어느 정도의 본능도 충족시켜 주지만, 교만과 방종의 문이므로 멸망으로 인도된다

둘째: 두 갈래 길

1) 의로운 좁은 길

좁은 문을 통과해서 전개되는 길은 좁고 협착하다고 말씀하셨다. 좁은 문을 통과하기도 쉬운 일이 아니지만 일단 좁은 문을 통과해서 전개되는 좁은 길을 가는 것은 더더구나 쉬운 일이 아니다.

좁고 협착하다는 말은 마치 등산을 할 때 한쪽은 절벽이고 한쪽은 벼랑인, 그 사이의 위험한 좁은 길을 연상하게 된다. 계속 긴장을 하면서 조심해야 하고 고난을 감수하지 않고는 걸어갈 수 없는 길이다. 그러므로 찾는 이가 적다고 했다. 누구나 인생살이를 일부러 어렵게 살기 원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 된다고 하는 것은 아무 노력 없이 수월하게 되는 것이 아니고, 평안하게 살기를 원하는 자는 갈 수 없는 길이다. 천국은 유랑하다가 우연히 이르게 되는 곳은 아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천국은 침노하는 자가 소유한다고 하셨다. 천국은 우리의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노력 없이는 얻을 수 없는 곳이기도 하다. 키에르케고르는 "요즘 기독교인들은 너무 염치가 없다. 그들은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예수님을 믿는다 하면서 자신들은 잘 살려고만 애쓰기 때문이다"라고 말하였다. 참 성도가 되기 위해서는 믿고 축복을 받으려 하기 이전에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난에 동참하려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

2) 넓은 악의 길

누구나 좁은 길보다는 넓은 길을 좋아한다. 길이 넓으면 장애물이나 위험의 염려도 없으므로 다니기가 편하고 이용하기에도 편리하다. 아무리 많은 것을 가지고도 염려 없이 갈 수 있고 아무리 많은 죄악의 짐을 지고도 기분 좋게 달릴 수 있는 길이다. 그러므로 누구나 쉽게 들어가는 길이다. 이 길은 고난이나 희생도 감수할 이유가 없다. 좁고 협착한 길은 힘들고 외로운 길이지만 넓은 길은 친구들과 어깨동무를 하고 취한 기분으로 흥겨운 노래를 부르면서 기분 좋게 가는 길이기도 하다. 이 길을 가면 육체적인 많은 본능도 만족시켜 준다. 딛 3:3은 "우리도 전에는 어리석은 자요, 순종치 아니한 자요, 속는 자요, 각색 정욕과 행락에 종 노릇한 자요 악독과 투기로 지낸 자요, 가증스러운 자요 피차 미워한 자"였다고 말한다. 벧전 4:2~3은 "그 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쫓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쫓아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 취함과 방탕과 연락과 무법한 우상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좇아 행한 것이 지나간 때가 족하도다"라고 하였다.

이처럼 넓은 길은 육체의 욕구를 충족시켜 줄 수 있어서 들어가는 자가 많다고 했다. 그러나 그 길은 방종의 길이요, 죄악의 길이요, 멸망의 길임을 알아야 한다. 오늘 우리는 이미 그리스도를 믿고 생명의 문을 통과해 좁은 길을 가고 있지만, 완전히 보장되지 않은 길이므로 때때로 다가오는 넓은 문, 넓은 길의 유혹을 물리치는 강한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 수시로 전개되는 인생의 두 갈래 길에서 이 길이냐, 저 길이냐? 선택의 기로에서 죽을 것이냐 살 것이냐? 하는 결단의 마음가짐으로 힘들고 어렵지만 생명의 길을 택해 영생의 축복을 받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 성경은 인생의 두 갈래 길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신 21:8 "보라 내가 너희 앞에 생명의 길과 사망의 길을 두었으니." 신 30:9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으니."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