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을 목사로 호칭하면 실례입니까?
감독을 목사로 호칭하면 실례입니까?
  • 민돈원
  • 승인 2018.10.30 09: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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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일전 감리회본부 사이트 게시판 글에 감독 호칭문제에 관해 뜨거운 댓글 공방을 접하고 난 소회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그 주요 요지는 감리회 교역자들이 공적 공간(회의, 감리회 교역자 모임등)에서 감독을 목사로 부르는 것이 실례라는 주장에 대한 견해 차이였습니다.

한번은 제가 속한 지역교회 목회자들 모임인 기독교연합회 월례회에 참석한 적이 있습니다. 그 때 모임에서 이 지역에 부임한지 얼마 안 된 목사(장로교)가 서기가 된 후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그가 회무순서에 따라 각 교회 목사님들을 호명하는데 이름 뒤에 '000 씨'라고 부르기에 대부분 참석자들이 좀 거북스럽게 여겨 그렇게 부르지 말고 자연스럽게 '000 목사님', 이렇게 호명하라고 해서 그 뒤로는 시정한 적이 있습니다.

이렇듯 호칭은 때와 장소에 따라 격에 맞게 사용함이 필요하긴 합니다. 목사란 호칭내지 존칭은 일반적으로 교회에서든지 사회에서든지 통용되는 지극히 평범한 호칭입니다. 반면에 감독은 믿는 신앙공동체 안에서나 좀 더 좁히면 그 감리회에 속한 교단에서와 같이 일부 국한된 곳에서 부르는 호칭에 지나지 않습니다. (교황처럼 감독회장 호칭을 보편타당한 대중화, 세계화했다고 볼수 있을까요?) 그런 감독을 향해 사석은 고사하고 설사 공식석상이라고 할지라도 목사라고 호칭했다 해서 실례가 될 정도로 격에 벗어나는 일일까에 대한 문제 제기입니다.

교장 선생님을 선생님이라고 불렀다고 실례가 되는 겁니까? 감독회장을 감독이라고 부르면 더욱이 실례입니까? 감리사를 목사라고 불러도 실례가 되는 걸까요? 목사를 형제라고 부른다 해서 크게 예의에 벗어난 일입니까? 복수 직함을 가진 분들이 선출직으로 인해 더 나은 호칭으로 불려 지지 않는다고 해서 예의까지 거론함은 지나친 반응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이런 논쟁은 비단 이번에 처음 대두된 것만은 아닙니다.

이미 오래전에 현직감독의 임기가 완료되면 목사로 부르자는 안건이 이곳 지상토론에서, 나아가 총회 때도 시비가 있을 만큼 다룬 적이 있었던 것으로 압니다. 그런 이후 한 동안 연회 주소록에 오래 전에는 감독직에서 물러났어도 감독이라고 표기하다가 수 년 전부터는 감독을 역임한 분들은 감독이라고 표기하지 않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현재 감독들도 최근 2018년 교회주소록을 보면 전직 감독들과 마찬가지로 '정" 또는 "원목"(은퇴목사)으로 표기되어 있습니다. 이 책자 펴낸 일을 본부가 한 일인데 일부러 그런 걸까요? 잘못 인쇄된 걸까요? 혹 본부 실무자가 문어체와 구어체를 구별 못한 표기라도 한 것일까요?

그러니 목사위에 또 다른 계급 같은 옥상옥을 만들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목사의 끝은 목사이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현직감독 호칭에 대한 무시, 무용론이 아닙니다. 다만 혼용, 즉 때론 목사라고 호칭했다고 해서 듣는 분이 불쾌해 하고 심지어 역정을 낼 이유까지는 없지 않느냐 입니다. 그것이 무례이고, 그 분의 격을 낮추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물론 공식석상에서 얼마든지 예우하여 존칭하는 것은 마땅한 일입니다. 그러나 사석에서까지 너무 감독이란 호칭을 집착할 필요가 있을까? 는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오히려 너무 사무적이고 회의용 호칭으로 부르기보다 사표(師表)가 되고 존경하는 분이라면 그 호칭이 무슨 그렇게 대수가 되겠습니까? 호칭과 존칭은 엄밀히 따진다면 부르는 사람의 선택에 달려 있다고 봅니다. 동일한 집단 안에서는 통용될 수 있는 호칭도 그 틀을 벗어난 다른 집단(세상)사람들에게는 다른 이름으로 불리어지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이렇게 부르라, 그렇게 부르지 말라 라는 성질이 아니라는 겁니다. 존경받는 사람이라면 사석이든 공식석상이든 호칭 따위가 하등에 문제 될 게 없습니다.

목사로 존경 받았다면 감독이 되도 존경받는 것 아니겠습니까? 더욱이 감독이 되려면 반드시 목사가 되어야 하고, 감독이 되었다고 그 목사에서 승진하여 직위 상승하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목사로 존경받지 못하고 부정한 사람이 감독이 되고, 뒤늦게 박사가 되고, 그 이상의 스펙을 취득했다고 해서 그 이전의 수치가 면제되고 인격이 급상승 되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군에서 떠도는 말 중에 별을 달면 (대우, 보장)이 100가지가 바뀐다는 말이 있습니다. 교계 높은 자리도 어쩌면 이와 무관해 보이지 않습니다. 사실 이것 때문에 어떤 면에서 작금의 감리회가 바람 잘 날 없지 않다고 어느 누가 부정할 수 있겠습니까? 이미 부정할 수 없이 세상의 동네북같이 되어 버린 교회의 아픈 현실을 우리 모두는 목도하고 있습니다. 이런 진흙탕 같은 속에서 여전히 ‘교권 헤게모니를 일단 잡고 보자.’ 라는 욕망의 근시안적 프레임에 갇힌 자들에 의해 그나마 희망으로 붙들고 있는 복음의 절대적 가치가 더 이상 상실되지 않기를 읍소합니다. 이를 위해 그토록 입버릇처럼 주장하는 살리는 감리교회 목회 현장이 되기 위해서는 종교 기득권을 가진 속칭 주류 세력부터 일말의 책임감을 통감하여 진정성 있는 본을 보여 주어야만 합니다. 평생 목사로 불리는 호칭에 만족하지 못하고 호칭 때문에 안색이 변할 정도로 여전히 소수 지배층의 이데올로기에 머물러 포기할 줄 모르는 분들의 책임은 누구보다 더 위중하다고 봅니다.

따라서 누릴 것 그래도 누려본 이런 분들이 현실인지능력을 가지고 먼저 자성하고 솔선수범함으로써 숨죽이며 따르려던 절대 다수의 비주류요 민초같은 목사들이 다시 심기일전하는 반전의 융합이 절실히 필요할 때입니다. 이렇게 됨으로써 “복음은 모든 믿는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기에 이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라.” 라고 한 바울의 위대한 그 정체성이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무색하지 않는 살아있는 말씀이 되어 더 이상 추락하지 않고 비상함으로써 세상에 희망을 주는 위대한 감리교회로 회복되기를 간절히 소망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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