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기도가 주는 유익 (마 7:9~11)
43. 기도가 주는 유익 (마 7:9~11)
  • 주성호
  • 승인 2018.10.22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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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구하라, 찾으라, 문을 두드리라"로 기도하는 자의 자세에 대하여 말씀하신 예수께서, 오늘 본문에서는 그처럼 기도할 때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에 관하여 가족관계를 예를 들어 설명해 주신다. "너희 중에 아들이 아버지에게 떡을 달라하면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악한 아버지라도 자식에게는 좋은 것으로 주려고 하지 않겠느냐?" 하물며 하나님은 이 세상의 어떤 아버지보다 더 자녀들에 대해서 자상하게 아시고 잘못을 고쳐 주실 뿐 아니라 죄악가운데서도 구원해 주심으로, 육신의 부모가 할 수 없는 일들까지 하시는 영혼의 아버지이시다. 이 하나님께 기도하면 응답해 주신다고 한다면, 실제로 기도가 우리에게 주는 유익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하고 바른 자세로 기도하는 생활이 되어야 한다.

첫째: 떡과 돌, 생선과 뱀(9~10절)

1) 떡과 생선

'떡'과 '생선'은 아들이 아버지에게 필요한 것을 구한 내용인데, 이는 갈릴리 해변에 사는 사람들의 일상생활에 가장 필요한 음식물이다. 예수께서 오병이어로 5,000명이 넘는 사람을 배불리 먹인 기적을 일으킨 재료도 바로 이 떡과 생선이었다. 마 14:13~21을 보면 예수의 말씀을 들으러 온 많은 사람들이 해가 저물어도 갈 생각을 안 하고 있어서 제자들이 걱정을 하고 있었다. 이 때 어린 소년이 가지고 온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이것은 소년의 도시락이었는데 그것을 내놓았다. 예수께서는 무리를 명하여 잔디 위에 앉게 하신 후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무리에게 나누어주도록 하셨다. 이에 5,000명 이상의 무리가 먹고 남은 것을 모았더니 12광주리였다. 인간에게는 갖가지 욕구가 많으나 무엇보다 기본적이며 시급한 것은 먹는 문제로 일반적인 기본 욕구에 비해 가장 많이 기도하게 된다. 오늘 이 세상엔 떡으로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어가고 있으며, 김일성이 사망한 이북을 각본대로 김정일 체제로 시작은 하지만 얼마 못가 개혁과 개방이 불가피하게 될 것인데 여기에 가장 크게 작용하는 것이 떡 문제이다.

2) 돌과 뱀

아버지에게 떡과 생선을 달라고 하는데 돌과 뱀을 줄 부모는 이 세상에 한 명도 없을 것이다. 돌은 무익한 것이고 뱀은 유해한 것이다. 한편 눅 11:11에서는 알을 달라고 할 때 전갈을 주는 이가 없다고 했다. 뱀은 아무리 예쁘게 보려고 해도 예쁘게 보아지지 아니하고, 성서적으로 볼 때 사단의 상징이므로 언제나 적의를 품게 되어 있고 친할 수 없도록 되어 있다. 마 4:1~11에서 예수님의 공생애를 위해 40일 금식 기도하신 직후에 마귀의 시험부터 당하셨는데 첫 시험은 돌로 떡을 만들라는 것이었다. 40일 동안 굶주린 사람에게 무엇보다 시급하게 필요한 것은 떡일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람의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리라는 신 8:3의 말씀을 인용하심으로 유혹과 시험을 이기셨다. 오늘 성도들이 이기기 어려운 시험이 물질이요 경제 문제인데 때때로 떡으로 시험해 온다. 오늘 이 시대는 오히려 떡을 돌로 만드는 자들이 많다.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죽은 말씀으로 전하는 이들도 많다. 엉터리 신학 사상, 잘못된 해석으로 생명 없는 돌기둥으로 만들어 버린다. 세계 도처에는 옛날 신앙의 근거들이 한낱 돌기둥으로 남아있는 곳이 너무 많으며 구라파에는 그 많은 돈을 들여 지어놓은 예배당들이 텅 비어 있어 역사적 유물로 나아가고 있는 곳도 허다하다. 뿐만 아니라 살수 있는 생선을 주지 않고 해만 주는 뱀을 주는 거짓 세력들도 점점 많아가고 있다. 정신 차리지 아니하면 언제 어떤 해를 입을지 알지 못한다.

둘째: 육신의 어버이와 영의 아버지(11절)

1) 육신의 어버이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금단의 열매를 먹으므로 범죄한 이후 이 땅의 불완전한 인간은 도덕적인 면까지 타락하여 선을 행할 능력을 상실하고 말았다. 그러므로 인간은 근본적으로 악하고 악에서 결코 벗어 날수 없었음에도 하나님은 인간으로 하여금 악한 상태로 내버려두시지 만은 않으시고 부분적으로는 선을 행할 수 있는 선한 의지를 남겨 두셨다. 그 중에서 그러한 악한 본성과는 달리 부모로서 그 자녀에게만은 어떻게 하든지 좋은 것을 주려는 의지를 들 수 있는데 흔히 이것을 부성애 또는 모성애라고 한다.

이 세상에서의 사랑 중 가장 숭고한 것을 모성애로 말하지만, 육신의 부모들은 혈연에서 나오는 감정을 가지고 독특한 사랑을 자식에게 베푸는 것은 틀림없지만, 극히 감정적일 수 있고 부족함이 많고 이기적이므로 불완전한 애정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과욕일 때 문제만 남긴다(과보호).

2) 영의 아버지

육신의 부모들은 자식의 요구를 무엇이나, 언제든지 들어줄 수 있는 위치에 있지 못하다. 언제나 공간적으로도 함께 할 수 없고(요즈음은 더구나 극심하다) 사랑하고 돌보다가도 일단 죽으면 모든 것이 불가능해지고 단절되고 만다. 그러나 영의 아버지는 다르다. 언제나 가까이에 계신다. 예수님의 말씀대로라면 아버지가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어 언제나 동행하게 되어 있다. 그의 사랑은 변덕이 없고 잘못이나 과욕으로 인해 문제될 것도 없다. 오히려 우리의 필요와 요구를 아시고 우리가 기도로 무엇인가 요구하면 더 좋은 것을 주시기 원하신다.

어거스틴의 어머니 모니카는 자기 아들이 로마에 가는 것을 막아 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하였으나 그 기도는 이루어지지 아니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녀의 소원보다 더 큰 것을 주시었으니 "어거스틴이 이탈리아에 여행하게 되어 회개의 기회를 갖게 된 것이다"라고 했다(어거스틴 고백록). 완전하신 우리 영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은 자녀인 성도들이 기도를 통해 무엇을 요구할 때 더 좋은 것을 주시기를 원하신다. 문제는 더 좋은 것을 주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오늘 내 안에 성취되기 위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기도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도를 흔히 영적 호흡이라고 하는데 영이 하나님과 끊임없이 생명력이 지속되기 위해서도 기도를 소홀히 하거나, 게을리 해서도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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