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쟁이 마태
욕쟁이 마태
  • 이구영
  • 승인 2018.10.19 10: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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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욕을 먹으며 살아온 레위입니다.

부자가 되고 싶어서 로마의 앞잡이 노릇을 했습니다.

친구들과 선/후배를 배반해야 했고,

친척들의 눈길고 곱지 않았지만 그는 돈을 가지고 싶었습니다.

동족의 재산을 착취해서 로마에 바치면서 살았습니다.

미스터 션샤인이라는 드라마에 나오는 일본 앞잡이들처럼 그렇게,

유대인들의 돈과 재산을 빼앗아 로마에 바치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원하던 많은 재물은 모았지만 사람을 모두 잃었습니다.

친구가 원수가 되었습니다.

지나다닐 때 마다 수도 없이 많은 욕을 먹었습니다.

얻는 게 많은 만큼 잃은 것도 많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찌 생각해보면 당연히 욕을 먹을 수밖에 없었지만 그래도 기분은 좋지 않았습니다.

욕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미안함과 답답함도 있지만 분노도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레위는 불행하게 욕먹으며 사는 자신의 삶을 마무리 하고 싶었습니다.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예수라는 분이 찾아와서 동행해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평소 흠모하던 스승님을 모시게 되었습니다.

레위는 모든 것을 나누어주고, 포기하고 예수님을 따랐고 참 행복한 세월을 지내었습니다.

예수님 승천하신 후 그는 기도모임의 리더가 되었고,

마태복음도 쓰면서 힘든 세월을 소망과 열정으로 이겨내었습니다.

마태복음을 써 내려가던 마태는 문득, 문득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과거의 자기와 같은 욕심쟁이들이 자꾸만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사랑도 없고, 헌신도 없고, 그저 육체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에 빠져서,

교묘하게 법 태두리는 빠져나가며 죄와 동거하고 있는 바리새인들 이었습니다.

서기관들이나 대제사장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분노하는 마태는 이들의 이야기를 적으면서 온갖 욕을 다 퍼붓고 싶었습니다.

자기는 그렇게 욕먹으며 싫었었는데,

오히려 이들은 그 욕을 먹으면서도 자신에 대한 사랑을 포기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문득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들이 휙휙 스쳐 지나갔습니다.

마태는 머뭇거리지 않고 그 내용들을 적어 내었습니다.

과거 세리시절 자기가 먹었던 그 욕들을 다 토해주어도 모자랄 것 같은 바리새인들에게

마태는 아주 정제된 언어를 통해서 욕지거리를 외쳐대었습니다.

그 구절이 바로 화 있을진저!입니다.

욕먹는 마태는 이제 욕을 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전혀 변화가 없이 일방적으로 욕심껏 사는 이들을 향한

그의 욕은 예수님의 입술을 통하여 적나라하게 표현되었습니다.

[마 23:13, 15]

1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15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한 사람을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

[마 23:23-28]

2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24 맹인 된 인도자여 하루살이는 걸러 내고 낙타는 삼키는도다

25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26 눈 먼 바리새인이여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27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28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 십일조는 하는데 정의롭지도 않고, 다른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지도 않고, 믿음대로 살지 않는 사람들이 싫었고 욕을 퍼붓고 싶었습니다.

주일성수는 하는데 탐욕과 방탕의 삶을 포기하지 않는 그들에게 온갖 욕을 다 주고 싶었습니다.

겉은 화려한데 마음에는 죄가 가득한 이들에게 자신이 먹을 욕을 다 퍼붓고 싶었습니다.

참고 참아온 마태의 욕이 화 있을진저 라는 한 마디 표현에 다 녹아 내리고 있습니다.

나아가 마태는 욕 먹을 짓을 하는 그들의 결말도 강조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좋아 보이지만,

지금은 편하고 재미있고, 행복한 것 같지만 끝은 그렇지 않음을 강조합니다.

[마 23:33]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마 23:38]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려진 바 되리라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과 대제사장들을 비난하신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형식은 있는데 마음이 없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외형은 있는데 내실이 없었습니다.

입술로는 존경하는데 마음을 그렇지 않았습니다.

심령을 감찰하시는 예수님의 눈에 볼 때 죄가 너무 많이 보였습니다.

사랑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사명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먼저 믿은 사람들이 감당해야 할 사명을 생각하지 않고 그저 먹고 편하게 사는 거,

놀고 즐기는 것에만 관심이 있음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그 사랑 없음에 예수님께서는 아파하시면서 말씀하십니다.

화 있을진저!!

우리는 그동안 세상을 향하여 많은 비난을 쏟아내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우리가 욕을 먹고 있습니다.

세리를 욕하던 바리새인이, 이제 세리에게 욕을 먹고 있는 모양입니다.

멈추어 서서 생각해봅니다.

난 지금 세리가 변하여 제자가 된 마태인가?

아니면 여전히 자기밖에 모르는 바리새인인가?

나는 남을 행복하게 해 주는 마태인가?

아니면 욕을 먹어도 마땅한, 자기 밖에 모르는 바리새인인가?

오늘 마태는 우리를 향하여 어떤 욕을 내뱉을까?
화 있을진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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