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이 아닌 사랑
두려움이 아닌 사랑
  • 윤미애
  • 승인 2018.10.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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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17

해도 해도 표가 나지 않는 일이 있어요. 바로 집안일이지요. 헌데 신기합니다. 할 때는 표가 나지 않는데 안 하면 금방 표가 나니 말입니다. 그와 비슷한 일이 또 있어요. 교회에서 목회자의 아내가 하는 일이 그러합니다. 큰 교회의 상황은 좀 다르겠지만 작은 교회는 비슷한 상황일 겁니다. 사모들이 하는 일이 많지요. 그 일들은 마치 집안일과 같습니다. 하면 표가 안 나는데 안 하면 금방 표가 나거든요.

며칠 전, 안 하면 표가 날 어떤 일이 하기 싫어 마음이 불편합니다.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왜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남편에게 투덜거립니다. 아~ 불쌍한 남편, 20년 넘게 살았지만 그는 단순한 진리를 잊어버리고 또 실수를 합니다.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사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고 하네요. 그렇다면 전투 모드, 질수는 없지요. 어깃장을 놓습니다. 적긴 하겠지만 그런 사람들도 있다고 응수합니다. 사실 그런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만.

서로의 감정을 살짝 건드리는 선까지 가지만 곧 싸움을 멈춥니다. 싸워봤자 별 유익이 없음을 잘 알고 있는 까닭이지요. 그가 잊어버린 ‘단순한 진리’에 대해서만 말해 줍니다. 내가 원한 것은 문제 해결이 아닌 공감이라고.

남편과의 말다툼을 멈추고 생각해 봅니다. ‘나는 정말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고 있는 것일까?’ 어느 면에서는 맞는 말입니다. 그 일을 하고 싶지 않으니까요.

그런데 잠깐, 생각을 조금 바꾸어 볼게요. 나는 그 일을 왜 하는 것일까요? 혹시 그 일을 하지 않으면 생길 일을 미리 염려하는 것은 아닐까요? 마음고생을 하느니 차라리 몸으로 고생하자는 생각이 있는 것은 아닐까요?

생각을 조금 바꾸어 보니 또 다른 진실을 마주하게 됩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는 나, 쉬운 일을 하고 있는 내가 보이네요.

겉으로는 하고 싶지 않은 일로 보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 일을 하는 것이 더 쉬워서 하고 있는 거네요. 하지 않으면 마주할 상황을 견딜 내면의 힘이 부족한 거지요.

어쩌면 우리는, 제가 그러하듯, 생각 혹은 에고가 시키는 일을 하면서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네요. 더 나은 쪽으로가 아닌 더 쉬운 쪽, 더 안전한 쪽으로.

이 예화는 한 번쯤 들어보셨을 겁니다. 성전을 건축하는 데 쓰일 돌을 다듬고 있는 세 명의 석공이 있었습니다. 모두 땀을 뻘뻘 흘리며 열심히 일을 하고 있었지요. 왜 그렇게 열심히 일하냐는 질문에 한 사람은 이리 말했습니다. “죽지 못해 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이는 이리 말했지요. “돈을 벌기 위해 일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사람이 말했습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릴 성전을 짓는데 쓰일 돌을 만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 명의 석공이 드러내는 모습은 같습니다. 그들은 모두 돌을 다듬고 있지요. 하지만 그들이 돌을 다듬는 이유는 저마다 다릅니다. 먹고 살기 위해 일하는 사람도 있고, 그 이상의 의미를 실현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일을 하지 않으면 돈을 벌 수 없을 거라는 두려움 때문에 일하는 사람이 있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돌을 다듬는 사람도 있습니다.

‘두려움이 아닌 사랑’, 언젠가부터 간절해진 말입니다. 무엇을 하든 안 하든 그 이유가 두려움이 아닌 사랑이길 바라는 마음인 것이지요. 사도요한의 말씀을 기억해 봅니다.

‘사랑 안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온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내쫓습니다.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고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합니다.’(요한1서 4장 18절)

내 생각의 틀에서 파생하는 두려움을 이기게 하는 힘인 사랑, 어쩌면 사랑은 내 생각보다 나와 더 가까이 계시는 하나님의 음성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내 삶의 이유가, 내가 하는 행동이나 말이나 선택의 이유가 두려움이 아닌 사랑이면 정말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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