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비판하지 말라 (마 7:1~2)
39. 비판하지 말라 (마 7:1~2)
  • 주성호
  • 승인 2018.09.24 0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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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5~7장을 산상수훈이라 한다. 이 말씀을 하신 예수께서 구약의 약속들과 예언을 일단 성취하시고 새로이 인간 구속과 구원의 최종 실현인 천국 구원을 신약시대의 새로운 기준으로 주신 말씀이라는 의미에서 큰 의의를 갖는다. 이미 5장에서 천국 시민의 기본 자격을, 6장에서 천국 시민의 구체적인 생활내용을 밝힌 예수께서는, 7장에서는 천국 시민의 생활에서 삼가야 할 것 중, 다른 사람에 대한 것과(1~5절) 자신에 대한 것(6~14절), 그리고 교회에 내한 것(15~23절) 등으로 경계하셨다. 오늘 본문은 다른 사람을 대할 때 비판하는 것을 금하셨는데, 이 세상 사람들은 동서를 막론하고 윤리와 격언에 있어서 공통적으로 교훈들을 주고 있는데, 이것은 특히 유대의 기록에 흔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은 아니고 공적 의미에서의 비판은 당연히 있어야 한다.

첫째: 비판을 받지 않기 위해서(1~2상)

1) 비판의 의미

비판하다(crinw)는 '정죄하다, 심판하다' 등의 법정 용어의 뜻을 가지고 있다. 비판하지 말아야할 명령의 조건으로 제시된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의 시제가 어느 때로 쓰여졌느냐가 중요하다. 학자에 따라서는 이 때를 현세적인 것으로 보기도 하고(Chrysostom), 다른 한편 종말의 때로 보기도 한다(Carr). 본문이 문법적으로는 정확히 단 한번의 사건을 묘사하는 부정과거형으로 되어 있으므로 종말에 있을 심판의 때로 봄이 합당하다. 그러므로 비판하지 말라고 해서, 부모가 자녀를, 스승이 제자를,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상대방에 대해서 무엇이든 무조건 비판하지 말라는 것은 결코 아니다. 성경은 많은 부분이 의미를 무시하고 문자적인 해석을 가할 때 오류를 범하기가 쉽다. 성도라고 해서 공적인 비판까지 하지 않아서는 안 된다. 어디까지나 본문의 의도는 사적인 비판 즉, 함부로 독선적인 시각으로, 재판관의 입장에서 함부로 남을 비판하는 것을 금한 것이다. 이에 대하여 바울은 롬 14:10~12에서 인간은 남을 판단할 자격이 없다고 했다.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판단하느뇨?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뇨?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그 날에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자기한 일에 대해 직고(直告)하리라"고 했다. 약 4:11~12 "형제들아 피차에 비방하지 말라. 재판자는 오직 하나님이시니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벌하기도 하시느니라. 너는 누구관데 이웃을 판단하느냐."

2) 비판하지 말아야 함

왜 비판을 하지 말아야 하느냐? 예수님은 너희의 비판하는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게 되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들은 자기네들은 무죄하고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정죄하기를 좋아하므로 예수님의 책망도 많이 받았다. 예수님께서는 눅 6:37에서 비판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요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라고 하셨다. 바울도 롬 2:3에서 "이런 일을 행하는 자를 판단하고도 같은 일을 행하는 사람아 네가 하나님의 판단을 피할 줄로 생각하느냐" 라고 했다. 그러므로 비록 성도라 할지라도 타인에 대한 용서와 사랑이 없는 정죄 행위는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을 무시하는 것으로 자신도 그러한 심판을 받게 됨을 알아야 한다.

둘째: 헤아림을 받지 않기 위해서(2하)

1) 헤아림의 의미

헤아림은 숫자 계산이나 물건을 어떠한 척도로 측정하는 것 등에 사용되는 단어인데, 좀더 정확히 말하면 '헤아리다'(metrew)는 정해진 분량(마 23:32, 엡 4:7)이나 척량(계21:17)을 뜻하는 명사에서 유래한 동사이다. 계 11:1~2을 보면 일곱째 나팔 재앙 전에 "또 내가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며 말하기를 일어나서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척량하되 성전 밖 마당은 척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 이것을 이방인에게 주었은 즉 저희가 거룩한 성을 마흔 두 달 동안 짓밟으리라"고 했다. 척량하다(계 11:1~2)는 '비판하다'(마 7:2) 또는 '정죄한다'는 의미를 가진다. 또한 한 인간이 다른 사람의 삶이나 인격을 비판하거나 점수 매기는 것을 가리키기도 하며, 더나아가 마음의 자세, 신앙의 자세라는 의미로도 번역된다. 사람은 어떻게 마음먹느냐에 따라 전혀 새로운 깨달음과 그 것으로 인한 이익과 결실을 얻게도 되지만, 반대로 마음먹기에 따라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을 당하게도 되고 많은 것을 잃어버리기도 한다(잘못된 헤아림). 그러나 바른 헤아림의 자세는 인생을 윤택한 삶으로 인도한다·

월리암 바클레이(1907~1960)는 폭넓은 신학지식을 통해 많은 성경주석서를 남긴 영국의 신학자였다. 그는 심한 청각 장애를 앓고 있었다. 보청기를 빼면 전화벨 소리도 들을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그는 이 장애를 신학 정신으로 승화시켰다. 그는 어떤 사람으로부터 "훌륭한 저술의 비결이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을 받고 귀에서 보청기를 뺀 후 이렇게 말했다. "이것을 빼면 세상의 소리와 차단되죠. 그래서 더욱 열심히 책을 읽을 수 있었고 성경을 연구할 수 있었습니다!'

2) 헤아림을 받지 말아야 함

오늘 본문의 핵심은 남을 함부로 비판하지 말라, 남을 자기 생각대로 헤아리지 말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비판이 법정적인 용어라면 헤아림은 경제적인 용어로 결국 둘 다 행한 대로 하나님께서는 갚아 주신다는 것이다.

삿 1:7을 보면 "아도니베색이 가로되 옛적에 칠십 왕이 그 수족의 엄지가락을 찍히고 내 상 아래서 먹을 것을 줍더니 하나님이 나의 행한 대로 내게 갚으심이로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사람은 다른 사람에 의해서 헤아림의 대상이 될 때 전에 당했던 몇 갑절의 보복도 당하게 된다. 하물며 하나님의 헤아림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가장 큰 불행이요 소망이라고는 전혀 없는 영원한 저주를 받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의 생활은 무엇을 행할 때 하나님의 눈을 의식하고 헤아림을 받을 대상이 되지 않도록 삼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믿음의 생활이 되도록 해야 한다. 다윗은 시 32:1~2에서 "허물의 사함을 얻고 그 죄의 가리움을 받은 자는 복이 있도다. 마음에 간사가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치 않는 자는 복이 있도다"고 했는데. 참으로 이것은 인생의 가장 큰 복이다. 예수께서는 눅 6:37~38에서 "비판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요 정죄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요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요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회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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