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개 달아주기
날개 달아주기
  • 윤미애
  • 승인 2018.09.19 07: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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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 전에 들은 친척 오빠의 얘기입니다. 정확하게 무슨 일인지 잘 모르겠지만 오빠는 금형을 제작하는 일을 했었습니다. 계단을 오르며 제품을 배달하고 있던 어느 날, 어떤 분이 말을 걸어왔다고 해요. 키가 작은 오빠는 몸이 좀 왜소한 편이거든요. 일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는지 일에 대해 이것저것 묻더랍니다. 한참 이야기를 한 후에야 그분이 자동차 회사에서 일하는 분임을 알게 되었다고 해요. 그 인연으로 자동차 회사에 납품을 하게 되었고, 그것이 토대가 되어 성공적으로 사업을 일굴 수 있었답니다. 오빠에게는 그분이 은인인 셈이지요.

이건 최근에 경험한 저의 얘기입니다. 얼마 전, 대학교 총동문회가 있었습니다. 저도 대학원을 졸업하긴 했지만 동문회는 저보다는 남편에게 더 의미 있는 행사입니다. 하지만 가까운 곳에서 열리기에 오랫동안 보지 못한 벗들을 만나러 저도 가기로 했습니다.

행사를 며칠 앞두고 갑자기 한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출판한 책들을 행사장에서 팔고 싶다는 생각 말입니다. 그 생각을 하니 여러 가지 상황들이 머릿속에서 펼쳐졌습니다. 여러 감정들도 물결쳤습니다. 부정적인 기운이 긍정적인 기운을 압도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기도 했습니다. 고민 끝에 바자회에서 같이 팔아도 되겠냐고 여동문회에 물으니 흔쾌히 허락을 해주셨지요. 그래서 수익금 일부를 기부하기로 하고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드디어 그 날이 왔습니다. 도착하니 여동문회에서는 의류와 간식거리를 판매하고 있었습니다. 한쪽에서는 남편의 친구가 교회이전을 위해 커피를 팔고 있었지요. 떨리는 마음으로 출판한 책 2종을 펼쳐 놓고 팔기 시작했습니다.

책이 쉽게 팔리지는 않았습니다. 무엇인가를 판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알아갑니다. 우리 부부는 아는 얼굴들을 불러 세웠습니다. 남편은 아내가 쓴 책이라고 강매를 했습니다. 미안함과 민망함이 스멀스멀 올라왔습니다. 잠깐 들리신 선배 목사님께 부탁을 드렸습니다. 대신 팔아달라고. 목사님께서는 아끼는 후배 사모가 쓴 거라며 또 강매를 하셨습니다.

그렇게 몇 시간을 팔았지만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습니다. 긴장한 탓인지 어깨가 뻐근했습니다.

책을 팔면서 가장 많이 올라온 느낌은 부끄러움이었습니다. 책을 팔러 갈 거라고 말했을 때 딸아이가 걱정한대로 사람들에게 무엇인가를 판다는 것이 좀 부끄러웠습니다. 그 다음 느낌은 미안함이었습니다. 알려지지 않은 시골 아줌마의 책을 그저 아는 사람이라는 이유로 사라고 하는 것, 칼 안든 강도가 따로 없습니다. 고마움도 많이 느꼈습니다. 어떻게든 도와주시려는 분들의 마음이 참 고마웠습니다. 불편한 느낌도 들었습니다. 왜 책을 파냐고 묻는 분들도 있었거든요. 어떠하든 책은 정성들여 쓴 것이고 정당한 노동의 산물입니다. 헌데 그런 질문 앞에서 작아지는 느낌이 들어 화가 나기도 했습니다.

책을 팔러 간 것이 잘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본인들도 넉넉하지 않을 텐데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들을 도우려는 모습을 보며 또 하나를 배워갑니다.

여담인데요. 제가 아는 한 지인이 과일 가게를 한 적이 있어요. 보통은 5일장에서 과일을 구입하곤 하는데 가끔 그 집에 들러 과일을 사기도 했습니다. 시장보다 비쌌지만 그 가게가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던 까닭입니다. 어떻게든 그를 돕고 싶었거든요.

은인, 은혜를 베푼 사람. 친척 오빠에게 그분은 분명 은인일 겁니다. 사업이 잘 되도록 도와준 은인, 사업에 날개를 달아준 은인 말입니다.

과일 가게를 한 지인에게 제가 은인이라 말할 수는 없습니다. 책을 팔아주신 분들이 저의 은인이라고 표현하지도 않지요. 허나,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도와주는 사람들이 어쩌면 은인은 아닐까요?

곁에 있는 누군가가 성공하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도와주는 것, 그 사람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훨훨 날아올라 꿈을 펼치라고 달아주는 날개 말입니다. 크든 작든 사랑하는 마음으로 날개를 달아주는 사람들, 수많은 그들이 있어 오늘의 우리가 있는 것은 아닐까요?

딸아이가 말합니다. 주변에서 좋다고 하니까 다 팔지도 못하면서 자꾸 책을 낸다고. 아이 말처럼 겁도 없이 또 책을 낼지도 모르겠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그건 내가 날아오르기를 바라며 날개를 달아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은인들 덕일 겁니다.

혹시 그날 강매하셨다면 이 글을 대신해 인사드릴게요. “미안합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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