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성도의 삶의 자세 (마 6:30~34)
38. 성도의 삶의 자세 (마 6:30~34)
  • 주성호
  • 승인 2018.09.17 0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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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는 갖가지 욕구가 너무도 많다. 현대 심리학에서는 욕구보다는 본능(충동)이라는 말을 더 즐겨 쓴다. 동물의 본능 행동은 동물에 따라 다르며 유전에 의해 어버이로부터 새끼에 전해진다. 새 새끼는 알에서 막 깨어나자마자 어미를 향해 입을 벌리고 먹이를 찾는다. 포유류의 새끼는 태어난 날부터 어미의 젖을 빤다. 꿀벌 중 일벌은 꽃의 꿀을 모아 집에 가져오고 거미는 줄을 쳐서 먹이를 기다리며 걸리면 잡아먹는다. 본능이란 배우지 않아도 일성하게 나타나게 되어 있다. 그러나 인간의 본능은 동물과는 다르다. 물론 태어나면서 기능을 발휘하는 것도 있으나, 경험의 반복이나 학습에 의하여 차츰 형태를 달리하여 나타나는 본능도 있고, 성적 본능처럼 어느 정도 성숙하지 않으면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는 본능도 있다. 인간에게는 갖가지 욕구 중 의식주가 가장 기본적이고 큰 것이며, 지식, 명예, 권세, 성 등 육신적인 욕구와 정신적 또는 영적 욕구도 있다. 그런데 육신적인 욕구로만은 만족하지 못하며, 영적인 욕구의 충족으로만 만족이 가능하다.

성도들의 생활은 육보다 영적인 면에 우선하는 신앙적인 삶의 자세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오늘 본문이 교훈이다.

첫째: 염려하지 않는 삶(30~32절)

1) 믿음이 적은 자들(30절)

대부분의 사람들은 세상 살아가는 걱정을 우선적으로 하는데, 믿는 성도들도 믿지 아니하는 사람들처럼 살면 곤란하다. 만약에 주님을 믿는 생활을 하면서도 세상 염려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신앙생활에 문제가 발생한다. 예수님을 믿으면서 세상 염려를 버리지 못하고 계속 지고 있는 이유는 무엇 때문인가?

① 믿음이 없거나 적기 때문이다(마 17:17). 예수님께서는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를 참으리오"하고 말씀하셨다. 본서에 거듭되는 예수님의 책망의 말씀은 "믿음이 적은 자들아"라는 것이었다. 본문을 보면, 믿음이 적으니까 세상 염려를 한다. 8:26~에서 예수님은 풍랑을 당한 제자들에게 믿음이 적으니까 무서워한다고 책망하셨다. 14:31에서는 물에 빠져 들어가는 베드로를 향해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느냐?"고 하셨다.

16:8에서는 떡을 준비하지 못하여 걱정하는 제자들에게 "믿음이 적은 자들아 어찌 떡이 없으므로 서로 의논하느냐?"고 하셨다. 또 17:20에서는 귀신을 내쫓지 못한 제자들에게 그 이유가 그들의 믿음이 적은 연고라고 하시며, 겨자씨만한 믿음이 있으면 산을 옮길 수도 있고 못할 일이 없다고 말씀하셨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거듭 거듭 염려하게 되는 중요한 이유는 믿음이 적기 때문이라고 책망하셨다. 그러나 ~15:28에서 귀신들린 딸의 병 고침을 위해 어떤 수모도 감당하는 이방 여인을 향해서는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고 하셨다. 염려하지 않아도 될 이유에 대해 예수께서는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입히시는데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라고 말씀하신다.

2) 염려하지 말라(31~32절)

예수님은 6:25에서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다. 31은 그 말씀의 반복이다. 34절은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고 했다. 예수께서 자신을 믿는 사람들이 지녀야 할 기본자세에 대해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다. 사람은 태어날 때 울면서 태어나며, 특별히 주먹을 꼭 쥐고 태어난다. 손을 움켜쥐는 것은 소유욕의 표현이다. 반면에 죽을 때는 손을 펴고 죽는다. 여의도에 살던 윤명애 권사의 시어머니는 돌아가실 때 신앙이 없으니 손에 천 원짜리 지폐를 꼭 쥐고 있었다. 그렇게 한 이유는 허전해서였다. 사람의 일상생활의 염려 대부분은 물질에 관계된 것이다. 그러나 염려한다고 해서 해결될 것은 실 하나도 없다. 특히 의식주나 물질로 인한 염려는 이방인 곧 이방 종교를 신봉하는 자들이나 믿음이 없는 자들의 특징임을 알아 성도들은 염려의 어리석은 생활을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필요한 것, 요구까지 다 아시고 계시므로 그를 신뢰하고 순종하기만 하면 된다

둘째: 신앙을 우선으로 하는 삶(33~34절)

1) 그의 나라와 그의 의(33절)

예수의 교훈 중 두드러지고 가장 많이 주신 말씀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대부분 인간들의 사는 방법과 욕구는 땅의 일, 즉 물질에 관계된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나라는 하나님 나라를 뜻하는데 성도들의 삶은 세상 염려보다는 보다 고상하고 바람직한 하나님 나라를 추구하는 신앙을 우선으로 하는 삶이어야 함을 강조하셨다. 그러나 그의 나라는 유형의 통치 체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때때로 이단의 무리들이 이 땅에 이룩되는 하나님 나라를 선포했고 실현코자 하였으나, 이것은 소위 가시적인 지상천국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 나라는 이 땅에 이룩할 나라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생활하면서 그 말씀이 이루어지므로 그의 통치가 실현되도록 하는 삶을 뜻한다. 또한,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하는 생활이 되도록 하는 것이 바로 이 땅에서 경험 되어지는 하나님 나라이고 하나님 나라의 생활이다. 그럴 때에 마음의 평안과 기쁨이 있고, 남을 사랑하고 싶어진다. 미 갤럽 조사는 행복의 여부가 신앙의 여부에 있음을 보여준다.

예수께서 하나님 나라가 여기 있다 저기 있다 할 수 없고 너희 안에 있다고 하신 것은, 현재 내 마음속에 이룩되는 하나님 나라의 중요성을 강조하신 것이다.

'그의 의'란 하나님의 의를 가리키는데,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우리에 의해서 그의 보편적 공의가 실현되기를 갈망하는 의를 뜻한다. 이 세상이 화평하게 잘 살려면 하나님의 의가 실현되어야 한다.

2)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하라(34절)

거듭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의도는, 성도는 이 땅에 사는 동안 염려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인데, 그럼에도 실상은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염려를 떨쳐 버리지 못하고 염려 속에서 생활한다. 하루하루 주어진 여건에서의 염려도 부족해서 내일 염려, 내년 염려, 아니 평생 염려에 죽을 때의 염려까지 하는 사람도 많다. 물론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말라는 것이 미래를 위한 준비나 비전까지 금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앞당겨 염려한다고 해서 실상 해결되는 것은 분명히 아닌데도 염려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6월 7일' 하나님의 교회 신학교 전체 학생 채플(Chapel)에 설교하라는 부탁을 받고 갔었다. 채플이 끝나고 난 후 몇 명의 교수들과 차를 나누며 대화를 했다. 나는 솔직히 요즈음 큰 교회 목사가 안 된 것 감사한다고 했더니, 옆의 다른 교수의 말은 유명한 교수가 안 된 것도 감사하고 돈이 없는 것도 감사해야 된다는 말이었다. 작은 교회 목사는 때때로 돈이 없어 답답할 때도 많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염려하거나 불만불평 없이 감사의 생활을 함은 큰 복이다.

인생의 여정엔 괴로운 일들이 많아 일일이 고개 박고 걱정하다가는 한이 없다. 한 날 괴로움(kakia)을 '악'으로 번역하기도 하지만, 한 날 당하는 괴로움을 뜻하는 것이다. 성도라고 해서 괴로운 일이 없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예수 잘 믿으려면 이 땅에서 더 큰 괴로움을 당하는 때도 있다. 그러므로, 한 날 괴로움을 그 날에 믿음으로 해결하고 자족하며 그날그날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고, 내일 일을 앞당겨 염려하지 말고 하나님의 장중에 맡기고 믿음으로 살기만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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