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염려하지 말라 (마 6:25~29)
37. 염려하지 말라 (마 6:25~29)
  • 주성호
  • 승인 2018.09.10 08:0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사는 방법은 시대와 종족에 따라 각양각색이다. 동양 사람이 사는 방법이 있고 서양 사람이 사는 방법이 있다. 그런가 하면 흑인들이 사는 방법도 있다. 지구상에는 아직도 식인종이 있는가 하면 문명의 새로운 혜택을 받는 많은 민족도 있다. 그러나 크게 나누면 둘로 구분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음식과 의복에 관계된 일반적인 염려로 풍속을 따라 살면서 자기 주관대로 살아가지만, 다른 부류의 사람들은 오히려 소수이지만 보다 가치 있는 중요한 일에 목적을 두고 사는 사람들이다. 전자가 불신앙의 사람들이 사는 방법이라면 후자의 경우는 믿음으로 살아가면서 하나님을 전적을 의지하고 어떤 문제들이든지 믿음으로 해결함을 받으며 사랑과 감사의 마음가짐으로 그에게 위탁된 삶을 사는 사람들이다.

첫째: 육체를 위해 염려하지 말라(25, 27절)

1) 일반인의 염려(음식과 의복)

의식주는 인간생활에 있어서 기본적인 욕구이므로, 사람은 누구나 육체를 위해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게 되어 있다. 본문의 음식과 의복은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므로 걱정을 안 할 수도 없는 것들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런 것으로 염려하지 말라고 했디 염려란 '분열, 근심'이란 뜻인데, 사람이 무엇에 대해 염려하면 그 마음이 분열하여 갈라지게 되어 있으므로 염려가 지나치면 육체와 영혼 모두를 병들게 한다. 지난주에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는 말씀에서, 하나님과 재물 중 하나를 택해야 되는 이유가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길"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한 순간에 하나의 일을 해야지 두 가지로 마음이 갈리면 제대로 일할 수도 없고 문제가 생긴다. 더구나 성도들은 일심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함에도 불구하고 세상 염려에 마음을 빼앗기거나 마음이 갈라지면 제대로 신앙생활을 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을 생활에서 너무나 많이 경험한다. 가정생활, 주일성수, 헌금. 봉사 등 각 분야에서 비록 작은 일이지만 두 갈래 길에서 방황하다가 하나님 편보다 세상일 때문에, 육신이 약하므로 보다 중요한 일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27절에서 예수님은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자나 더할 수 있느냐."라고 말씀하셨다. 키 (h;likia)는 '키'로도(눅 19:3, AV) '생명'으로도(히 11:11, RSV) 번역할 수 있는데, 본문의 뜻은 누가 염려한다고 해서 한 자(尺)거리 정도의 시간만큼이라도 생명을 연장할 수 있느냐고 반문하는 의미로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사람이 염려를 안 할 수는 없으나 염려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이 아니므로 육신을 위한 염려도 온전히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 신앙석이다. 빌 4:6~7에서 바울은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고 하였다.

2) 보다 중요한 염려(목숨과 몸)

염려하지 말라고 했다 해서 자기가 마땅히 해야 할 책임마저 하나님께 들리고 게으름을 피워도 된다는 말은 아니다. 우리의 아버지 하나님은 우리들의 모든 생활을 책임져 주시지만 우리들 스스로의 삶에 대한 책임과 의무는 최선의 방법으로 감당해야 한다. 예수께서는 요 5:17에서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고 말씀하셨고, 바울은 살후 3:10에서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도 너희에게 명하기를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고 했다고 말한다. 사람에게는 음식과 의복보다 더 중요한 목숨과 몸이 있으며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영혼이 있다. 성도는 육을 입고 있으나 육신의 욕구대로 살아서 안 되고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영혼의 욕구를 따라 살아야 한다. 그러므로 세상적인 걱정 즉 의식주 수준의 염려는 초월하고 신령한 것으로 만족하며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는 생활이 될까를 염려하며 살아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세상 염려보다 신령한 것으로 충족된 삶을 택하여야 한다. 고전 10:3~4 "다 같은 신령한 식물을 먹으며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저 회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둘째: 염려하지 말아야 할 이유(26,28~29절)

1) 공중의 새를 보라(26절)

예수께서는 사람이 염려하지 말아야 될 이유에 대해 육신의 음식 문제와 관련시켜 공중의 새를 예로 들었다. 공중의 새는 나뭇가지에 앉아 지저귀는 새와는 다르다. 한 날의 양식을 위해 열심히 날아다닌다. 물론 씨를 뿌리거나 추수하여 창고에 양식을 쌓아 놓는 일을 아니해도 염려 없이 살고 있지 않은가. 시 11:50은 "산의 새들도 나의 아는 것이며 들의 짐승도 내 것임이로다"라고 했다. 인간은 참새보다 귀한 존재이니 조금도 염려할 것 없다. 눅 12:7 "너희에게는 오히려 머리털까지도 다 세신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보잘것없는 공중에 나는 새 한 마리도 하나님께서 먹이시는데 하물며 존귀한 인간 즉 성도인 너희를 방치하지 않으시니 필요 이상의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된다는 보장의 교훈을 주셨다.

2) 들의 백합화를 보라(28~29절)

사람이 염려하지 말아야 될 두 번째 이유에 대해 사람이 입고 자랑하기를 좋아하는 의복과 관련시켜 보잘것없는 들의 백합화를 예로 늘었다. 물론 꽃에 대한 해석은 구구하다. 대부분 성지에 있는 아네모네라는 꽃으로 보기도 하지만, 들에 피어있는 한 송이 꽃을 주의 깊게 생각하며 보면 그 아름다움에 신비함마저 느끼게 하는 것이 꽃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영화를 누렸던 솔로몬 왕이 입은 옷을 들의 한 송이 꽃에 비교하여 인위적으로 만들어 입은 솔로몬의 영광보다 더 아름다움을 묘사했다. 인간이 책임과 의무를 다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입으며 사는 생활에 대하여, 물도 주지 않고. 거름도 주지 않고, 가꾸지도 아니하지만 아름다움을 나타내는 꽃을 보면서, 너희는 믿음으로 아름답게 꽃피는 삶을 살수 있지는 않느냐는 귀한 교훈을 주셨다. 생각하여 보라(katamaqete)는 철저하게(kata) 배운다(maqete")의 합성어로 깊고 정확하게 생각하라는 뜻이다. 염려는 깊이 신앙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데서 흔히 나온다. 우리 주변에는 염려해야 될 일이 너무도 많고 계속 도전해 오지만 매사에 신앙과 관련시켜 깊이 생각하기만 하면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고 믿음으로 하나님을 의탁하게 되고 믿음에 의해 해결을 받게 된다.

공중의 나는 새나 들의 한 송이 백합화도 염려하지 않지만 하나님께서 먹이시고 입히시는데 생명까지 온전히 하나님께 위탁한 너희를 못 본 듯이나 나몰라라 할 하나님은 결코 아니다. 필요 이상의 염려는 신앙의 장애 요인이 되는 고로 최선의 삶을 살면서 모든 염려는 온전히 하나님께 맡기는 아름다운 신앙생활이 되기 바란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