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꾸고 바꾸어
바꾸고 바꾸어
  • 윤미애
  • 승인 2018.09.05 00:0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아침부터 짜증이 몰려왔습니다.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하는 것이 참 싫습니다. 사람들에게도 화가 납니다. 하나님도 밉습니다. 왜 하나님은 나의 바람대로 해주지 않으시냐며 투덜거립니다. 나의 짜증과 싫음과 화를 입 밖으로 내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난 계속 투덜거리고 있습니다.

모임이 있어 서울에 가야한다는 아들을 터미널에 데려다 줍니다. 피부가 건강하지 않은 아들 녀석, 피부가 간질간질해지니 집이 자기랑 맞지 않다며 투덜대기 시작합니다. 검은 바지에 묻은 하얀 먼지들을 보며 또 투덜댑니다. 왜 천천히 달리냐며 투덜댑니다. 과속단속카메라가 있다고 하니 언제 그런 거 지켰냐며 투덜댑니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습니다. 터미널에서 내린 아들에게 눈길도 주지 않습니다.

‘아~~~~ 하나님도 이런 마음이실까?’

아들이 차에서 내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갑자기 스쳐 지나간 생각입니다. 아들에게 더 이상 화를 낼 수가 없습니다. 아들의 모습에서 나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나를 깨닫게 하시려고 아들을 사용하신 것 같습니다.

투덜거리는 아들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는 나처럼 만약에 하나님이 그러셨더라면, 하나님이 그런 하나님이라면 나는 어찌될까를 생각하니 아찔합니다.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민수기 14장 28절의 말씀이 마음에 스칩니다. 내가 한 말대로 하나님이 행하셨다면, 정말 그랬다면 어떠했을까요? 나는 지금 여기 이렇게 있을 수 있을까요?

바울이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에 인상적인 구절이 있습니다. ‘구리 세공업자 알렉산더가 내게 해를 많이 입혔으매 주께서 그 행한 대로 그에게 갚으시리니.’(딤후 4:14)가 그것입니다. 알렉산더가 그를 얼마나 힘들게 했으면 그렇게 썼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바울이 알렉산더에게 한 방 먹였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2천년이 지나도록 알렉산더는 그러그러한 사람으로 전해지니 이보다 강한 복수가 있을까하는 생각도 듭니다. 바울도 나와 같은 사람이라는 생각에 묘하게 기분이 좋아지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과연 하나님은 바울의 바람을 이루어주셨을까요?

투덜거릴 일이 왜 이리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나에게도 알렉산더가 있기에, 힘든 상황이 있기에 투덜거립니다. 그런데 투덜거리다가도 그게 또 죄가 되는 것 같아 맘대로 투덜거리지도 못합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니 답답할 뿐입니다.

어떻게 이 난관을 뚫을 수 있을까요? 괴로움이 커져가는 어느 때, 내 안에서 올라온 말이 있어요.

‘나를 축복합니다.’가 바로 그 말이지요.

나에게 떠올랐으니 무슨 뜻이 있겠지 하며 그렇게 말해봅니다. 상황이나 사람에 지쳐 부정적인 기운이 나를 사로잡으려 할 때마다 반복해 봅니다. 반복할수록 기분이 달라지고 마음이 가벼워지네요.

힘든 상황에서 감사하려고 애써보기도 했었지요. 사람을 미워하지 않으려 애써보기도 했었지요. 모두 나 살자고 하는 것들이었습니다만 쉽지는 않았습니다. 허나 나를 축복하는 것은 한결 쉽습니다.

반복하다보니 알게 됩니다. 그 말은 바꾸고 바꾸어주는 힘을 가졌다는 것을요. 그 말은 방향을 바꾸어주고 태도를 바꾸어준다는 것을요. 밖으로 향하던 방향을 나에게로, 투덜거리던 부정적인 태도를 축복하는 긍정적인 태도로 말이지요.

세상을 어찌할 수는 없습니다. 그나마 나를 어찌하는 것이 쉽지요. 세상과 이웃을 향해 부정적인 에너지를 쏟는 대신 나를 향해 긍정적인 에너지를 쏟게 해주는 말, ‘나를 축복합니다.’ 그 말이 얼마나 힘 있는 말인지 함께 실험해보지 않으시렵니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