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하나님과 재물 (마 6:24)
36. 하나님과 재물 (마 6:24)
  • 주성호
  • 승인 2018.09.03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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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마태복음 6장에서 구제, 기도, 금식으로 세 가지 덕목에 대해 말씀하신 예수께서 19절 이하에서는 물질에 대한 교훈을 거듭 주셨다. 19~21절에서 성도의 재물에서 두 종류로 구분했다.

① 재물을 땅에 쌓는 사람은 결국에 가서는 그의 수고가 헛되다.

② 재물을 하늘에 쌓는 사람은 소멸되거나 상실할 위험성이 없다. 그러면서 두 가지 중 어느 것을 선택해야 되느냐에 대한 결단을 촉구했다. 22~23절에 "눈은 몸의 등불"이라고 했는데, 이 땅의 것 곧 물질보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눈을 떠야 한다. 오늘의 본문에서는 두 주인을 비유로 말씀하시는데, 많은 사람들이 하나

님도 잘 믿고 기왕이면 재물도 많이 소유코자 하지만 결국은 자기 기만에 빠지므로 본질적으로 두 주인을 모두 소유할 수 없는 것이므로 오직 하나님만을 바로 섬겨야 된다는 교훈이다.

첫째: 두 주인의 문제

1) 하나님과 재물(God and Mammon)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두 주인은 하나님과 재물을 가리키는데, 이 둘은 비슷한 상대가 아니고 본질적으로 명확히 다르다. 물론 믿지 아니하는 사람들에게는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은 상관없다.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만 벌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도들에게는 다르다. 본문은 성도들에게 주신 교훈인데 실상 성경에는 물질에 대해 구체적으로 가르쳐 준 교훈이 별로 많지 않다. 그런데 실제 신앙생활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신앙생활 하는 성도들로서는 두 주인을 항상 상대하고 공유해야 함에 있어서 중간의 길이 없다는 것이며, 그것이 우리를 때때로 고민하게 한다. 적당히 신앙생활 하는 이들에게는 별로 문제가 안 되는데 잘 믿으려 하는 사람들에게 두 주인은 문제될 때가 많다.

특히 재물 (mamwna", mammon) 은 히브리어로서 삽입된 단어인데, 신뢰한다는 뜻을 가진 수리아어로 소문자 'm'으로 쓰일 때는 단순히 '재물'이란 뜻이었는데, 그것이 대문자 'M'으로 바뀌면서 인격화한 재물 신으로 섬김의 대상이 되었다. 다시 말하면 재물(mammon) 이란 단어의 의미는 원래 '위탁된 것'이라는 수동적인 의미였는데, 그것이 "어떤 사람이 의지하는 것"이라는 능동적인 의미로 변화되면서 문제가 된 것이다. 사실 재물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고 사람은 재물이 없으면 살수 없다. 그러나 그것을 위탁된 것으로 여겨 청지기로서 관리하고 살면 큰 문제가 안 되는 재물이, 그것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신뢰의 대상이 될 때 "불의의 재물"이라는 용어로 불리게 되었다. 김 대통령이 과감하게 실명제를 실시하는 이면에는 소위 문제의 돈, 뒷거래하는 불의의 재물을 차단시키려는 의도가 있는 것인데, 요지경 속의 이 세상엔 불의가 뿌리 뽑히지 않고 갖가지 문제는 계속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오늘 날 사회뿐만 아니라 교회 내에도 맘모니즘(Mammonism)의 영향이 절대적이라는 심각성을 의식할 정도로 보편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2) 두 주인에게 예속될 수 없음

예수께서는 본문에서 섬긴다(douleuein)는 것을 특별히 강조하셨다. 당시 노예의 입장에서는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는 것은 불가능하다. 노예 매매 당시 두 주인이 한 노예를 공동 소유하여 억지로라도 섬기게 할 수도 있기는 하다. 그러나 공동으로 소사처럼 부릴 수는 있지만 실제로 섬기는 입장에서는 둘을 하나같이 섬길 수 없음은 명백하다. 그러므로 성도는 하나님과 재물 중에 어느 것이 내 생활에 보다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분명하게 물어 보아야 한다. 성도의 일상생활도 대부분 물질과 관계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다. 1주간을 볼 때 6일은 일하는 시간으로 직장이나 사업에 분주하게 보내며 하루는 주일로 지키며 예배 드리며 쉬기도 한다. 하루의 시간도 대부분 재물과 관계된 시간 생활을 한다. 그런데 우리의 관심의 초점이나 생활방법이 가정. 자동차, 휴가, 저금 통장, 옷, 패물 등의 증식이나 소유에 초점을 맞추는 생활을 한다면, 그것은 이미 앞에서 말씀 드린 땅 위에 보화를 쌓는 생활이며 결국 철저히 헛됨을 경험하게 될 공허한 삶으로 인생을 마감하게 되어있다.

고로 성도는 두 주인 즉, 하나님과 재물 중에 섬겨야 할 대상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임을 알고 하나님을 주인으로 선택하여, 재물의 신을 섬기는 것을 포기하고 하나님만 섬기며 하늘에 보물을 쌓는 일에 적극성을 가지고 생활해 나아가야 한다.

둘째: 두 주인을 섬길 수 없음

1) 두 주인을 섬겼을 때

원칙적으로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으나 많은 사람들이 두 사이에서 방황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실제로 하나님보다는 물질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다.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 눈을 뜰 때 첫 생각은 어디에 있는가? 체크해 보기를 바란다. 하나님이냐? 재물이냐? 어떤 사건에 접했을 때도 하나님이 먼저냐? 재물이 먼저냐? 우선순위에 따라 생각뿐 아니라 생활에도 절대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우선순위가 불분명할 때 이기적인 자기 생각으로 판단하고 결단을 내리므로 비신앙적이 된다. 로이드 존스 박사가 든 예화 중에 이런 것이 있다. 한 농부가 키우던 암소가 어느 날 새끼를 두 마리 낳았다. 한 놈은 붉은 놈이고 다른 한 놈은 흰 놈이었다. 농부는 너무 기뻐하면서 아내에게 "여보, 우리 두 마리 가운데 한 마리는 주님께 드리십시다"라고 말했다. 아내가 어느 놈을 주님께 바칠 생각이냐고 물었을 때, "잘 키워 팔 때 결정해도 되지 않느냐"고 대답했다. 두 놈을 잘 키웠다가 동시에 팔아서 한 마리 분을 바치면 되지 않겠느냐는 말은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곧 문제가 생겼다. 몇 달 뒤 농부는 아주 슬픈 표정을 하고 부엌으로 달려들어왔다. "여보, 주님의 송아지가 죽었소." "여보, 당신은 어느 것이 주님의 송아지임을 결정하지 않았잖아요." "물론 그랬었지, 그러나 나는 항상 마음속으로 흰 놈이 주님의 것이라고 생각했단 말이요. 그런데 그 놈이 죽었단 말이요." 오늘 우리도 예외일 수가 없다. 평상시 분명한 태도로 주님을 섬기지 않으면 죽은 놈은 언제나 주님의 것이 되고 말기 때문이다. 하나님도 잘 믿으면서 재물도 많이 모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물론 그럴 수도 있고, 그런 사람들도 많지는 않지만 극소수가 있다. 그런데 오늘의 본문에서 주님은 불가능을 선포하셨다. 하나님과 재물은 동시에 섬길 수 없다고....... 왜냐하면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기기 때문이라고 했다. 성도를 하나님과 재물을 동시에 섬길 수 없으므로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신 자는 재물로 인하여 염려하지 않는다고 하셨다(23~34절).

2) 섬겨야 할 분은 오직 하나님

그렇다고 예수께서 물질이 인간생활에 불필요하거나 무조건 부정적 시각으로 본 것은 결코 아니다. 물질이 없으면 살 수도 없고 물질이 없으면 선교도 못한다. 하나님의 사업에도 물질이 중요한 고로 물질을 하나님의 뜻대로 잘 사용하고 책임 있는 관리를 통해 하나님께 영광 돌리도록 하여야 한다. 사도 바울은 재물에 대해 자유함을 얻는 비결을 빌립보서에서 소개했다. 빌 4:10~13에서 자신이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한다고 전제하면서 "내가 궁핍함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나니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품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하였다. 이 같은 믿음을 가지게 되면 물질을 섬기는 일이 있을 수 없고 물질의 신에 결코 사로잡히지 않으면서 하나님만 섬기는 멋진 신앙생활을 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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